3월엔 멘토링의 완성도를 높여 보기로 했다. 지난 멘토링 CBT를 통해 발견된 개선점은 멘토의 전문성 확보였다. (아래 링크글 참고) 자소서를 어떻게 쓰며, 면접시 유의사항을 짚어주는 류의 전문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어떤 준비 과정이 필요한지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전문성. 거기에 현장감까지 더할 수 있는 멘토. 즉, 현직 종사자를 섭외해야 했다.
어떤 업종에서 누구를 데려올까에 대한 답은 금새 나왔다. 카카오에서 밥벌어 먹고 있는 나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IT 업종 중 문과, 이과 대학생을 각각 겨냥할 수 있는 서비스 기획과 개발을 타겟으로 삼았다. 여기에 누굴 모셔올까에 대해선 업무 전문성과 멘토로서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 배려심, 사교성 탑재 여부를 고려해 아래의 두 지인을 멘토로 (혼자) 정했고, 바로 꼬득이기 작업에 착수했다.
카카오페이지, 그가 살렸다.
카카오에 입사해 내가 맡은 첫 업무는 카카오페이지 마케팅였다. 지금은 박보검도 즐겨본다며 TV광고까지 할 정도로 성장한 서비스이지만 카카오페이지는 오픈 당시 폭망였다. 2013년 카카오게임의 성공으로 카카오가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시점에 '콘텐츠 유료화'라는 시대의 사명을 안고 출시된 카카오페이지는 원래 사업자, 일반인을 막론하고 좋은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모토로 기획된 플랫폼였다. 근데 돈을 지불할만큼 고퀄의 콘텐츠가 유통되지 않았다. 그러니 소비자는 발길을 끊고, 소비자가 없으니 생산자도 외면하는 서비스로 전락했다.
그때 그가 등판했다. 서비스 기획자 이두행. 카카오식 영문이름으론 JED. 그가 광범위했던 카카오페이지의 커버리지를 웹툰, 웹소설에 집중시켜 기능 개선을 주도했고 이에 맞춘 고퀄의 콘텐츠 소싱과 제휴가 진행되었다. 이로서 서비스에 엣지가 생겼고,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일매출 몇십만원대에서 고전하던 서비스가 곧 일매출 억대로 치솟는 기염을 토했다. 기획자 한명이 주도한 기적였다.
그러니 서비스 기획 멘토로 그가 떠오른 건 당연지사. 지금은 카카오를 퇴사해 영미권을 타겟으로 하는 웹소설 플랫폼 Radish의 기획 총괄을 맡고 있는 이두행(이하 제드) 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강남역에서 큐가츠를 구워 먹으며 남의 집 프로젝트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이런저런 걸하는 거고 요렇고저런 일들을 저질렀다고 분위기를 몰아간 후 "제드가 필요합니다." 며 구애했다. 그리고 덧했다. "강연료는 못드려요..." 이에 제드는 흥쾌히 응해 주었다. 고마운 사람.
"근데 무슨 얘기를 하면 되죠?"라는 제드의 질문에 바로 인터뷰 모드로 전환. 그의 카카오 퇴사 후 이야기를 들었다. 글로벌 서비스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에서 세계를 무대로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온 그의 이야기는 내가 옆에서 지켜본 카카오페이지 때의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했다.
"이걸로 갑시다!"며 그의 글로벌 서비스 기획 경험을 토대로 서비스 기획 지망생들의 마음을 불질러보기로 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컨셉의 멘토링 상품 페이지가 완성되었고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만석으로 마감했다.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70711
카카오톡을 만든 남자
카카오에는 사조직이 있다. 혈연, 지연이 아니라 나이로 뭉친다. 경력직들로만 모여 있으니 다른 조직에 있는 입사 동기라는 개념이 전무하다. 탓에 쉽게 말을 놓고 편히 지낼 이들이 동갑내기를 찾아 나이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고 이를 띠모임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82년생인 난 개띠 모임에 속했고 운좋게도 이곳이 카카오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사조직이다. 여기서 그를 만났다.
한윤진, 카카오식 영문 이름으론 하워드다. 5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윈도우폰 개발자였다. 카카오톡의 윈도우폰 버전을 그가 만들었다. 전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개발했으니 그만큼 윈도우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다. 사내외로 실력을 인정받아 국내에서 손꼽히는 윈도우폰 개발자로 자리잡아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주최하는 해외 컨퍼런스에도 초청받는 귀빈였다. 하지만 윈도우폰에 대한 시장 점유율이 점차 떨어짐에 따라 고민도 많았다.
윈도우폰 점유율 하락으로 결국 전사차원에서 카카오톡의 윈도우폰 개발 운영업무가 종료되었다. 이에 하워드는 과감히 그의 개발 경력을 배팅하게 된다. 아이폰 개발자로의 전향. 새로운 언어와 OS를 처음부터 배워가며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였음에도 2년여가 흐른 지금. 카카오톡 아이폰 버전의 신기능은 그의 손을 거치고 있다.
재밌겠네!
나의 멘토 제안을 그는 흥쾌히 받아주었다. 그러며 덧붙여 말한다.
"평소에 개발 초년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와 OS를 공부해야 개발자로서 기회도 많아지고 하는데 다들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더라고. 그리고 개발자는 실력으로 승부를 보기 때문에 학력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데 지레 본인은 스펙이 부족하다며 포기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참 안타까웠어."
하워드는 이미 멘토로서의 자격 뿐만 아니라 콘텐츠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참석하는 멘티들 선정 역시 본인이 의견을 더하고 싶다는 적극성까지 내비쳤다. 내가 멘토 하나는 기가 막히게 모셨구나 싶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하워드의 멘토링 상품 페이지는 오픈과 동시에 참가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글을 끄적이는 지금도 하워드의 멘토링은 접수 중이니(3월 17일 마감)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신청해 보시라.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70703?area=bns
이 둘에게 멘토링 참가 신청 현황을 공유해 주니 "진짜로 모집이 되는군요!" 라며 놀라고 "신청 동기를 보니 다들 고민이 많아 보이시는구만." 하며 멘토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기기도 했다. 아직 멘토링이 진행되기 전이여서 실제로 이들이 멘토링에 참여했을 때 어떤 콘텐츠를 내뿜을 것이며 그들 스스로 어떤 내적 감흥 혹은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멘토링을 받는 멘티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가이드하는 멘토들에게도 영감과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워드와 제드, 이 둘을 섭외하고 멘토링 상품 페이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흡사 연예 기획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다. '너 가수해볼래?' 대신 '멘토링 해보실래요?' 정도의 변주랄까? 그들에겐 일상이 되어 무덤덤해진 일들을 멘토링이라는 프레임으로 끄집어 내서 다른 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막막함을 풀어주는 촉매제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판을 짜고 보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걸 왜 남의 집에서 해야할까? 멘토링을 진행할 장소는 얼마든지 많다. 그럼에도 남의 집 거실에서 진행하는 명분과 효과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해봐야 알 것 같다. 이번주부터 남의 집 멘토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