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건축,
‘벽’의 시대에서 ‘연결’의 시대로

by 원용진
데카르트 이분법을 넘어

2026년의 첫 태양이 떠올랐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지만, 올해 우리가 마주한 공간의 풍경은 유독 사뭇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지난 세기 동안 건축은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벽을 세우고 안과 밖을 엄격히 구분해 왔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생태적 격변을 통과하며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에 닿고 있다.


인간만이 이 땅의 유일한 주인공이 아니며, 우리가 세운 그 견고한 벽들이 도리어 우리를 고립시켜 왔음을 반성하고 있다. 이제 2026년을 기점으로, 건축 또한 인간을 중심에 두던 낡은 설계를 넘어 사물과 자연, 기술이 대등하게 어우러지는 공존의 네트워크로 나아가야 한다 (위의 머리 긴 아저씨를 넘어서자는 말이다).

질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혜


신유물론으로 건축 사유하기

오랫동안 건축에서 재료는 인간의 의지를 투사하는 수동적인 도구였다. 콘크리트는 단단하게 굳어야 했고, 철골은 인간이 계산한 수치에 복종해야 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재료를 죽은 물건이 아닌 살아있는 파트너로 대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네덜란드의 더 베이커(The Growing Pavilion)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균사체(버섯 뿌리)를 이용해 벽체를 스스로 성장시킨 이 건축물에서, 인간은 더 이상 명령자가 아니다. 식물의 생장 조건을 조율하는 조력자가 된다. 2026년의 건축은 이처럼 재료가 지닌 고유한 생명력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고 낡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건축의 일부로 수용하는 겸허함을 익혀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고립된 방에서 진동하는 감각의 장으로


28713872511_add9fd3515_h.jpg 정동(affect)으로 건축을 고민하다

그간 우리는 건축을 시각적인 화려함이나 평당 가격으로만 재단해 왔다. 그러나 공간의 본질은 인간의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신체가 먼저 느끼는 미세한 에너지의 교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위스의 건축가 피터 줌토르가 설계한 발스 온천(Therme Vals)(위 사진)은 돌과 물, 빛과 어둠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통해 인간을 공간의 주인이 아닌 환경의 일부로 녹여낸다.


새해에 우리가 꿈꾸는 공간은 단순히 편리한 방 이상이어야 한다. 빛의 산란과 공기의 흐름이 우리 신체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감각의 장이어야 한다. 건물 자체가 내뿜는 비인간적인 에너지가 인간의 고립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건축은 단순한 부동산을 넘어 치유의 장소가 된다. 정동(affect)을 전하는 사물이 되어 인간과 흐름을 이루는 네트워크의 결절점이 된다.


기계와 생명이 결합된 새로운 생태계


사이버네틱스와 건축

현대의 건축물은 이미 거대한 센서와 에너지 순환망이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이 되었다. 이제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는 인공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능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하나의 ‘생명체’처럼 진화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BIQ 하우스는 외벽에서 미세 조류를 배양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건축물이 마치 도시의 폐처럼 스스로 대사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보그적 건축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대신 우리가 기술과 생태계라는 거대한 순환 고리의 일부임을 일깨워준다. 브루노 라투르의 이론적 설계가 현실화되고 있다. 2026년은 이처럼 인간과 기계, 자연이 서로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유기적인 결합이 보편화되는 해가 되지 않을까.


2026년, 모든 <존재의 의회>를 꿈꾸며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며 사유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일이다. 인간을 위해 짓되 인간만을 위하지 않는 건축, 땅 밑의 미생물부터 지능화된 기계 시스템까지 모든 존재의 지위를 인정하는 건축. 나는 이것이 2026년 우리가 그려나가야 할 새로운 설계도라고 확신한다.


올 한 해,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타자를 배척하는 차가운 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여 대화하는 따뜻한 연결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인간과 사물, 자연이 수평적으로 조우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삶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6년, 더 이상 군림하지 않고 공존하는 건축의 원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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