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안해’ 말 대신 가슴으로 말한다.

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by onseol
아들에게 보내는 글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 전부를 너희에게 주고 싶은데, 새벽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내 피곤한 육체를 편히 쉬기 위해 너희와 대화할 시간이 없구나.
발바닥이 아프도록 뛰어다니고 머리가 아프도록 정신을 쓰며 바쁘도록 지나야 하는 것이 아빠의 일과란다.

'아빠! 회사 가지 말고 우리랑 놀아줬으면 좋겠다.'
티 없이 맑고 거짓 없이 진실만이 담긴 너희들의 음성이 내 뼛속에 스며들 때 정신이 몽롱해져 가고 온몸에 나른한 기분이 전신을 맴돈다. 너희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야 오죽 답답하겠니.

젊음이란 항상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거야. 내 기력이 쇠약해지면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야.
그런 아빠의 마음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남들보다 훌륭한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지금은 아빠의 마음 이해할 수 없겠지. 너희들이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가 늙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조금은 이해할 거야.

아빠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거야.
일할 때, 잠잘 때, 먹을 때, 놀 때, 걸어갈 때, 공부할 때, 웃을 때, 이야기할 때, 울 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죽을 때도 열심히 성실하게 죽을 수 있는 우리가 되자.

정신도 건강, 마음속도 건강, 육체도 건강하게 열심히 자라다오.

-1982. 4. 26 아버지 일기장 중에서-


세상을 살다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부모 자식 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길을 가다 행인과 부딪히거나 하는 등 작은 실수를 하면 "미안합니다"라고 반사적으로 나오지만 가족 사이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때론 주말도 없이 일하셨고, 야근에 야간 근무도 많으셨다. 간혹 일주일에 얼굴 몇 번 못 보던 때도 있었다. 가족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대신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다.

대학 입시를 앞둔 큰 아들을 위해 새벽 몇 시가 됐든 아들의 하교를 책임졌고, 한 여름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을 위해 직접 끓인 삼계탕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수능을 앞두고 독서실에 살다시피 하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출근길 수 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함에도 아침 도시락을 챙겨 주셨다. 그런가 하면 군대라는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아들에게 밥 한 끼 먹이겠다고 밤새 운전해 면회를 가셨다.

당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희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어려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 것이 종종 있다.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나누는 감정이 많아지고 깊어진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처럼... 하지만 우린 어느 순간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게 된다. 대신 행동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미안해'라는 백 마디의 말보다 사랑이 담겨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듣고 나면 잊히는 한마디 표현 대신 최선을 다해 각자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림태주의 책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가슴어라는 외국어가 있다. 필수과목인데 학교나 학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배우는 모든 언어는 머리가 주관한다. 머리로 기억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말한다. 가슴어는 머리로는 이해되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오직 가슴으로만 전해지고 가슴으로만 해석된다… 가슴에 못 박히고 가슴이 미어지고, 가슴이 아려오는 일들이 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 때문에 생긴다.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가슴어를 가슴으로 듣지 않으려 할 때.


이제 미안한 감정을 머리와 입이 아닌 가슴으로 전하고, 가슴으로 느껴보자. 조금 더 우리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