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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Nov 19. 2021

아니, 여자가 해병대를?

나는 6남 2녀의 형제 중에 다섯째이다. (할머니를 포함하여 11명의 대가족이었다)

위로 줄줄이 형들만 있는 상황에서 나를 다섯 번째로 나으신 부모님은 나부터 “어휴 또 아들이야.” 하셨단다.

나는 당시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 환영받던 아들로 태어났건만, 우리 가족은 내가 아들이라는 사실이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만 또 예쁜 손자가 생겼다고 싱글벙글하셨단다.)

나의 이름은 형들의 돌림자 용용(龍) 자에 구슬 주(珠)를 붙여 최용주(崔龍珠)가 되었다.

이름 자체를 해석하자면 높은 곳(崔)에 여의주(珠)를 물고 있는 용(龍)이다.

저 높은 하늘에서 요술을 부릴 수 있는 여의주를 안고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용이다.

참 멋진 이름이라 생각하면서 자라왔다.

여의주를 소유한 용


나의 유아시절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이라 한 집안에서 출산한 아이들이 몇 명씩 사망한 것은 흔한 일이었다.

 돌을 갓 지난 나는 홍역을 않았는데 체열을 몸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여 시들시들하면서 사망 직전까지 갔었다.

갖은 약을 다 써 보고 지척에 있는 성당에서 새벽·낮·저녁 기도를 정성껏 드려도 낫지를 않으니 부모님은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시고 나를 거의 포기하셨다.

아랫목에 두고 갖은 정성을 다 들이셨건만 차도가 없으니 윗목에 옮겨놓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온 동네 돌아다니면서, “아이고, 우리 용주 죽게 생겼는디,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요? 머시라도 다 줄텐게 우리 용주 좀 살려주소.”라고 울부짖으셨다.

한 집에 가서 하소연하고 있으니, 안방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용주 할무이, 성당 뒷골목 어귀에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 사람이 곰쓸개를 파는디, 거그 가서 그 곰쓸개 사다 먹여보소.”라는 말을 듣고, 좌판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곰쓸개를 달라고 하니 많은 금액을 부른다.

“나 돈은 없응게, 무엇으로 답례하면 되겄소?”하고 할머니가 물으니 좌판 상인은, “참깨, 서말 반 가져오소.” 하였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창고 열쇠를 받아 창고에 있는 참깨를 꺼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서 말리셨다.

“엄니, 용주는 희망이 없어라. 하느님께서 부르신게 그만 보내줍시다.”하니, 할머니는 “아녀야, 용주는 살 수 있어야. 어제 예수님께서 살 수 있다고 나한테 야그 하셨당게.” 하면서 참깨 세말 반을 꺼내서 좌판 상인에게 주고서, 성냥알 만하게 뭉친 곰 웅담 3개를 받아와 어머니의 젖에 으깨서 나에게 먹이니 반은 먹고 반은 뱉었다 한다.

곰 웅담을 먹은 나는 엄청 많은 양의 대변을 배출 후 새근새근 잠에 빠졌다.

대변은 많은 열기를 품고 있어 수증기를 모락모락 내뿜고 있었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나를 아랫목으로 옮겨놓으셨다.


어린 시절  빠꿈이라는 나의 앙칼진 험담에도 내가 원했던 흰 고무신 대신 저렴한 검정고무신을 사주셨고, 양념으로 참기름을 음식에 넣어야 할 때, “용주야, 거짓깔로 쳐라.”하시면서 구두쇠 정신으로 평생을 사셨으면서도, 나의 생명을 구하실 때 참깨 세말 반도 아끼지 않으셨던 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깨 세말 반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놓으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큰 사랑으로 나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간직하고 자라서 고등학교의 사춘기 시절에 이르렀다.

하루는 집에 오니 할머니께서, “용주야, 동사무소에서 니한테 주라고 쪽지 왔는디, 이거 모냐?”

글을 못 깨우치신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온 서류가 손자에게 안 좋은 소식인 것 같아 불안한 표정으로 이를 나에게 건네신다.

아마 일제강점기 시절에 군청에서 온 징집 서류에 의해 큰 아버지가 강제 노역을 떠나신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서류를 보니 군입대 전에 나의 신상을 신고하라는 통지서이다.

“아무것도 아녀. 군 입대하기 전에 동사무소에 신고하라는 서류여.“ 하고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아고, 이제 우리 용주도 군대 갈 때가 되었구나!”

할머니는 대견하면서도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다음날 나는 서류를 들고 동사무소로 갔다.

“저 군 입영 사전 신고하러 왔습니다.”하면서 가지고 왔던 서류를 내밀었다.

나이가 지긋한 동사무소 직원은, “예, 알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면서 뒤편 멀리 위치한 캐비닛에 가서 서류 한 다발을 가지고 와서 나의 서류와 대조해본다.

“아니, 여자가 무슨 입영 사전 신고하세요?” 하면서 나를 뻔히 쳐다본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여자라니요. 제가 여자처럼 보이세요?”

나는 직원을 바라보면서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이쁘게는 생겼지만 여자는 아니네. 하지만 이 서류에는 여자로 되어있는데? 왜 서류 간에 이러한 혼선이 생겼지?”

이제는 아예 말을 놓으면서 동생에게 이야기하듯 편하게 이야기한다.

“아 왜 이렇게 되었죠? 그럼 나 여자면 군대 안 가도 되겠네요.”하니 직원은 당황하여, “아니지 ‘성별변경 신청’ 하여야죠. 그렇지 않으면 병역 기피자로 영창 갈 텐데.”하면서 겁을 준다.

“아니 공무원이 행정 착오로 남자를 여자로 만들었으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죠. 공무원 행정착오이니 그 공무원이 영창 가야죠.”

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니 그건 맞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성별변경 신청’하세요.”

웃으면서 말하는 직원이 밉지가 않았다.

“아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여자로 되었죠?”

“아마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나 봐. 직원이 옮겨 적을 때 ‘용대(龍大), 용길(龍吉), 용운(龍雲), 용철(龍喆) 전부다 남자 이름인데, 끝에 용주(龍珠)의 구슬 주(珠)라서 이번에는 딸이구나’ 하고 착오를 일으켜서 여자라고 적었나 봐.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변경 신청을 하는 것이 학생의 장래를 위하여 좋을 거야.”

나의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은 주(珠)를 용이 요술을 부리는 여의주 주로 생각하였는데, 이를 옮겨 적은 공무원은 예쁜 구슬 주로 해석하여 여자로 생각한 것이다.

 

아름다운 진주

세상에는 똑같은 것을 두고 각기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서로 상반되게 생각하는 일이 가끔 있다.

은근히 협박을 하는 듯한 동사무소 직원의 권유에 ‘성별변경 신청’을 하여 나는 나의 '성 본체'를 회복하였으며, 그로부터 3년 후 대한민국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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