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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Aug 20. 2022

다섯 시 삼십사 분

8월 4일

저녁 9시 넘어 시작한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핸드폰이 울린다. 

“예나야, 뭐?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기 시작했어? 그러면 빨리 가방 챙겨서 병원 갈 준비 해, 엄마 아빠는 곧 출발할 테니까 도착하면 바로 병원 가도록 해.”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도 긴장이 된다. 예나는 첫째 아기를 예정일보다 2주 일찍 출산했었고, 한 달 전부터 가끔 배가 뭉친다고 하였으니 이번에도 조기 출산이 될까 걱정되었다. 예정일이 3주 뒤인 이번 달 27일이었기에 ‘이렇게 빨리 출산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우리는 집에 들어오자 곧 출동 준비를 서두른다. 나와 아내는 약식 샤워를 하고 각자의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하니 11시가 임박했다. 딸이 사는 집을 내비로 찍어 보니 48분 걸린단다. 긴급한 때의 운전은 아내가 한다. 30년 운전경력의 아내는 15년 동안 고속도로를 통해 힘든 출퇴근을 하였기에 긴급한 상황의 운전 스킬은 나보다 뛰어나다. 연료 계기판을 보니 눈금의 밑에서 1개 반 정도 남아있다. 아내는 가는 길에 주유하고 가자 하지만, 나는 동탄까지의 60km는 충분히 갈 수 있고 급하니까 그냥 가자고 했다. 주유 문제로 말다툼하다가 핸들을 잡은 아내의 의향에 따르기로 한다. 바로 가면 5~10분을 절약할 수 있으련만… 


아내가 주유를 하는 사이에 딸에게서 카톡이 연달아 온다. ‘언제 와?’, ‘출발은 하셨어?’, ‘이렇게 늦게 오면 집에서 아기 낳겠다.’ 주유를 마치고 차 안으로 들어오는 아내를 향하여 화를 내면서, “그냥 가자고 할 때 갔으면 지금 반쯤 갔을 텐데.” 하니 아내 역시 화를 내면서, “아니 연료가 거의 떨어져 가는데 그냥 가면 이 더위에 에어컨도 못 틀고 불안해서 어떻게 가.” 한다.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나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니 아내는 주유소에서 나오자 바로 좌회전한다. 내비에는 ‘300미터 앞에서 U턴’이라 나와 있었는데…. 아내의 생각으로는 그쪽으로 가면 고속도로 진입로의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한 것이다. 나도 아내의 판단을 막을 만한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내비에 나타난 도착 예정시간이 10분이 늘어난다. 11시 55분에서 12시 5분으로…

아내의 판단 착오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니, 아내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럼 어떡해. 최대한 빨리 가는 수밖에. 당신은 기도나 해요. 우리 예나 무사히 출산하도록…” 

아내의 단호함에 몇 번 힘 빠진 말대꾸를 하였으나, 평상시 양같이 온순한 아내가 호랑이로 변하면 그 터프함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려니 맘이 급하여 사도신경의 세 번째 구절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묵주기도를 시작하니 맘이 좀 가라앉는다. 고속도로 진입하자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 아내의 능숙한 운전 솜씨로 차는 고속도로를 질풍처럼 달린다. 하지만 도로 곳곳에서 야간보수작업을 하는 곳이 있어 위험 요소가 있다. ‘보수공사 중’이라는 푯말과 옆길로 가라는 ‘화살표’의 네온사인을 부착한 차가 갑자기 앞에 나타나니 아내가 능숙하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 그 차를 피하고 질주를 계속한다. 


딸의 집에 도착하니 12시 10분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병원 갈 채비를 하고 기다리던 딸은 양손에 큰 가방을 챙겨 든 사위와 함께 집을 나선다. “시원이는 자고 있으니 잘 부탁해요.” 딸은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가족을 돌봐 줄 것을 부탁하는 듯한 애절함으로 말한다. 

묵주기도를 하자는 아내의 제안을 무시하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거실에서 기도하던 아내는 두시 반쯤 침대로 들어온다. 

“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내는 벌떡 일어나 안방의 문을 연다. 태어난 지 20개월이 채 안된 손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참외 무늬가 새겨진 얇고 가벼운 애착 이불을 한쪽 손에 쥐고서 안방 앞에 서서, “앙~~~, 엄마, 아빠!”하면서 울고 있다. 젊고 예쁜 자기 엄마 아빠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던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더욱 큰 소리로 “앙앙~~~, 아빠 엄마”하며 운다. “우리 시원이 잘 잤어? 엄마 아빠는 시원이 동생 낳으러 병원에 갔어. 곧 있으면 동생 데리고 올 거야. 그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재미있게 잘 지내자.” 아내는 손자를 안아주면서 사랑이 듬뿍듬뿍 묻어나는 소리로 말한다. 전부터 얼굴을 익히고 정을 쌓았던 할머니의 사랑에 손자는 잠시 후 울음을 그치고 씩 웃는다. 손자의 웃는 모습에 나의 애간장이 녹는다. 아내는 나를 보면서, “여보 지금 몇 시예요?” 물어본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다섯  시 삼십사 분이야.”라 대답하였다. 


아내가 손자를 돌보는 사이 나는 휴대폰을 열어보니 몇 개의 카톡이 와 있다. 그중에 성당의 레지오 형제인 조요셉 형제님에게서 온 카톡을 열어보니, “형님 손주 보셨나요?” “오랜만에 글을 올렸습니다. 들어 보세요~~♡”란 메시지가 뜬다. 브런치에서 '영조(어선생  아무개)'라는 필명으로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의 매거진을 운영하는 요셉 형제님이다. “고마워요. 딸이 진통이 와서 딸  집에 와 있어요.”라 답변을 보냈다. 

2~30분 후, “어머 우리 예나 대단하다. 벌써 출산했네!”라고 아내는 감탄을 자아낸다. “뭐 벌써 낳았어?”나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다가가니 아내는 자기의 휴대폰에 나타난 하얀 포대기에 싸인 갓 낳은 아가를 보고서 입을 딱 벌리고서 감탄하고 있다. 사위가 보낸 사진이다. “엉, 벌써 낳았어. 야~~ 우리 짱아(손자 태명)  엄청 예쁘게 생겼다.”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아내의 “출산 시간이 어떻게 되나?”하고 자신에게 말하듯 하는 소리에, “나중에 알게 되겠지.”하고 대답하였다. 

두 시간 후, 아내가 손자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의 요셉 형제님이 보낸 앱을 열어 ‘그리그(Grieg)’의 ‘아침의 기분(Morning Mood)’을 감상하였다. 은은히 퍼지는 음률에 취하여 행복함을 만끽하는 중에 카톡이 온다. 가족 카톡방을 열어보니, “너무 아팠어. 시원이 때보다 더더더 아프고 힘들었어.”란 딸의 메시지와 작은 손자의 사진이 있다. 갓 태어나 울고 있는 모습, 탯줄을 자르는 모습, 깨끗이 닦은 후에 하얀 포대기에 싸여 신생아실 침대에 놓여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10여 장을 감상한다. 잠자고 있는 손자를 보면서 얼굴을 자세히 보려 사진을 확대해 보니 아기 침대에  부착된 신생아 정보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최예나 아기

성별: M

출생 시 아기 체중: 2515g

분만 형태: NSD

출생일: 8.5

출생 시간: 5:34


신생아실의 둘째 손자(딸의 요청으로 초상 보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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