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커뮤니케이션 부재의 원인, 존댓말 문화
경희대학교 김진해 교수가 수업에서 평어 사용을 하는 것을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는데, 왜 한국어에는 존댓말이 존재하는지 참 의아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고 했던가. 비언어적인 개념(기의)이나 이미지에, 우연히 붙은 발음과 소리(기표)가 단어(기호)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의 사고는, 그 기호로 인한 편견과 체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이 된 뒤에 유대감이 생기기 전에는 존댓말을 사용한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면 동년배끼리는 상호 간에 반말을 사용하고, 나이 차이가 5살에서 10살 정도 이상 차이 나면 어린 사람이 존댓말을 연장자가 평어를 사용한다.
우리 무의식 속에는 '연장자=존댓말=윗사람'이라는 스키마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나이가 제 아무리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나는 이 존댓말 문화가 타파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수직적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호 간에 평어 사용이 싫으면 존댓말로 통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어를 평어로 통일하면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되는 미국사회처럼 될 것이고, 존댓말로 통일하면 상호 간에 항상 배려하는 스웨덴 사회처럼 될 것이다.
나이만 많은데 미성숙한 꼰대들이 너무 많다. 근데 내가 왜 그들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것조차 신경 안 썼을 텐데.
작년 겨울에 회계법인 감사팀에서 회계사들과 시즌 동안 인턴을 했다. 회계법인은 굉장히 수평적 조직 구조였다. 업무 강도는 높았지만, 인턴인 내게 이사도 극존칭을 써주었다. 경력이 20년 넘은 차장도 내가 업무 방식 면에서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제안하자, 논쟁은 있었지만 받아들여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인턴이었지만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언어 구조를 통일해야 한다. 내가 존댓말 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존댓말 하기 싫다. 아니면 최소한 그 사람들이 나에게 존댓말 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꼰대들이 너무 많다. 아, 나도 언젠가 꼰대가 되겠지. 이미 그런 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