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와 ENGLISH.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그때, 한자 선생님은 독신의 싱글 중년 여성이었는데, 굉장히 기가 세고, 열정이 있으셨으며, 실력이 탁월했다. 전교 2등이던 나는 1년 동안 그녀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나랑 같은 호계중학교를 나와 신성고등학교 간 뒤 의과대학에 진학한 원진도 이때 같이 열심히 '한자'를 수학했다. (원진이는 이때도 뛰어났다. 원진이의 지독한 성실함은 지인이라면 다 인정할 것이다.)
사실, 난 어렸을 때 한자 신동이었다. 가부장제 끝판왕 할아버지가 사내 녀석이라면 한자(漢字)는 알아야 한다면서, 나의 유약한 아비에게 강조했고, 아비는 나에게 영어 조기 교육을 안 시키고, 한자 교육을 시켰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한자검정능력시험 제일 높은 등급에서 바로 밑 단계까지 땄던 것 같다. 신성고등학교 때도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는데, 문이과 통합 내신 1,2학기 모두 전교 1등이었다.
반면, 난 영어를 잘 못한다. 영어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는 간헐적인 동네 보습 학원이랑 암기식 내신 교육. 메가스터디 인강이 전부이다. 리딩, 리스닝도 약하다. 영어는 나의 큰 complex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수능에서 89점 2등급이 떴다. 언어는 역시 어렸을 때 공부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뒤로 영어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영어 기사나 영어 원문, 영어 소설도 읽고 있다. 뭐든지 관심 있는 분야부터 차근차근하다 보면 언어 공부도 하나의 놀이가 된다. 한자(漢字) 또한 나에게는 큰 자양분이다. 어려운 정보 전달용 도서를 읽을 때에 함축적인 언어들은 대부분 한자이기 때문에, 그 단어의 뜻을 적확하게 몰라도 95%는 다 유추해석하고, 이후 검색하면 대부분 뉘앙스나 뜻은 다 맞는다.
가끔은 내가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 하는 화남이 올라온다. 미국이 패권국이 아니라, 한국이 차라리 패권을 잡으면 서양인들이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그냥 뻘글 한번 써봤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당신도 솔직히 내 글 괴짜 같지만 흥미롭게 읽고 있는 거 다 안다. 당신도 용기 내어 써봐라. 물론, 공격은 받을 수 있지만, 공격받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위인 것 같다.
p.s. 사진은 중3 반장 때 친구 영훈과 찍은 사진. 잘살고 있냐 영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