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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의 이모저모

우린 부모 사랑을 이미 충분히 먹었다.

by 바람
KakaoTalk_20250411_203351026.jpg 마당을 나온 암탉.

이전에 박주영 판사가 쓴 ‘법정의 얼굴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곤 했다. 아,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회가 있구나. 내가 진짜 협소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구나. 어쩜 이리 비극적인 일들이 많단 말인가. 가난과 살인, 동반 자살, 마약, 에이즈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미혼모들과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책임지지 않고, 임신시켰지만 낙태하지 않고 입술을 꽉 깨물고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미혼모들의 이야기. 차마 자식이라도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손녀, 손자들을 노쇠한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서라도 아이들을 길러내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아, 우리 사회는 아직 살만하구나.


김형석 교수의 ‘고독이라는 병’을 읽다가 문둥병 환자들이 사는 아센병 마을에 대한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과 농활을 떠난 김 교수. 밤에 산책하다, 슬픈 장면을 목격한다. 나병 환자들의 부모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입양소로 보내는 트럭에 실으면서 통곡하는 나병 환자 부모들의 이야기.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최민식, 유승호, 문소리가 주연을 맡은 한국의 위대한 애니메이션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공장형 닭장에 갇혀있던 ‘잎싹’은 마당을 나오고, 천둥오리 파수꾼이 낳은 아기인 ‘초록이’를 오직 사랑으로 길러낸다. 오직 사랑으로. 잎싹은 닭이고, 초록은 천둥오리지만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모자지간(母子之間)에 대해서 이견을 달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성인이 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정도의 크기에 차이가 있지 부모에게 조금씩 실망과 상처가 있었다. 나도 그렇고. 근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부모라고 나한테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맞아. 부모님도 같은 인간이지. 표현방식은 서툴러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설령, 육신의 부모가 당신을 버릴지라도 영혼의 부모인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도 잊지 말길.


캥거루족이 너무 많은 한국사회다. 우린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삶이라는 고통의 그릇에 놓였지만, 우리의 그릇의 바탕에는 영혼의 부모인 그리스도와 육신의 부모님의 애정(愛情)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그리고, 성인이 되었으면 하루빨리 독립하여 충분히 먹은 부모의 사랑을 타인과 사회, 세상에 뿌리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훨훨 날아라, 자유롭게.


"초록이 : 엄마, 엄말 두고 혼자 떠날 순 없어.


잎싹 : 난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거든. 알에서 나오던 초록이, 헤엄치던 초록이, 그리고 하늘을 날던 초록이.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올라. 그래서 외롭지 않아.


초록이 : 엄만, 내가 떠나길 바라? (초록이 훌쩍인다.)


잎싹 : 내가 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기 있지 않을 거야.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초록아, 어서 가서 넓은 세상을 만나봐.


초록이 : 엄마, 겨울이 오면 꼭 다시 돌아올게. 기다려줄 거지?


잎싹 : 그럼 당연하지. 다녀와서 들려주렴. 네가 본 세상이 어땠는지.


초록이 :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용감한 천둥오리가 될게. 꼭 넓은 세상을 보고 올게, 엄마.


잎싹 : 그래, 내 아기. 넌 이미 가장 용감한 나의 아가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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