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가끔, 아주 어두운 곳에 오랫동안 있곤 한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두운 곳. 더 어두운 곳. 더더 어두운 곳.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 눈을 떠도 어둡고, 감아도 어두운 곳. 우주에도 암흑물질이 있다. 거기도 어두우려나.
내 인간관계 철학은 버스와 같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버스를 운전한다. 사람들은 계속 타고 내린다. 운전하는 동안 고맙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그냥 수단화하는 사람도 많다. 더 나아가면 기사인 나한테 욕하는 사람들. 그럴 거면 왜 버스 탄 거지. 아예 타지 말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이 버스엔 누가 남아 있을까? 아무도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태어났을 때 사람은 운다. 슬픔. 눈물. 고통. 한(恨). 인간이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도 끔찍한 산통을 깨고 나왔을 때의 고통. 흐린 날이 더 많다. 비 오는 날이 더 좋다. 해가 비치는 낮보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 좋다. 화사한 봄보다는 앙상한 겨울이 좋다. 웃음보단 슬픔이 좋다.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읽다가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내 안에 무언가 있다. 현대 의학으론 고칠 수 없다. 얼마 전에도 만난 그 잘나고 똑똑한 의사는 내가 매우 건강하다고 했다. 육체나 정신의 병이 아니다. 영혼의 병이다.
사람들의 욕망. 욕망은 부풀어서 먹구름처럼 퍼지고,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저 너머에 무언가 보인다. 사람이 싫어진다. 더 비참한 건 내가 사람이라는 것.
빨간색보다 파란색이 좋다. 파란색. 불도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 파래진다. 깊은 바다. 한 없이 깊은 바다.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도 있겠지. 파란 옥석(玉石). 계속 맞다 보면 상처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멍이 든다. 멍도 퍼렇다. 아주 시퍼렇다.
유치원 때도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엄마 눈이 파래졌다. 아빠는 왜 엄마를 때리는 걸까? 폭력. 죄는 죄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낳고. 가끔은 예수가 한번 더 십자가에 못 박혀야 이 세상의 죄악들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비랑 말다툼을 할 때면 부친이 죽고 싶다고 한다. 이래 살면 뭐 하냐고 한다. 배달하면서 사는 게 싫다고 한다. 차에 치여 죽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왜 낳은 거지. 내가 2001년 4월에 태어났다. 10개월 전에 부모는 성욕을 참지 못해 몸을 섞었겠지. 아, 왜 그랬니.
이미 태어난 건 돌릴 수 없다. 죽을 생각도 없고,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당장 읽어야 하는 책과 해야 할 공부도 너무 많다. 죽기 전까지 다 읽고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예수. 아담. 원죄. 십자가. 어둠. 빛. 근원. 창세. 우주대폭발. 예정. 자유. 예배당. 폭력.
노사(老死) 한 뒤에 예수에게 물어볼 게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