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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의 이모저모

윤동주와 제주도, 그리고 희망

by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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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세대학교 선배 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꼽으라면 나는 한치의 말성임도 없이 윤동주를 꼽을 것이다. 나는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 문학가들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감정이 ‘부끄러움’이라고 했던가. 윤동주만큼 ‘부끄러움’을 느꼈던 사람이 있을까? 아마 한국 교회사나 신학, 문학에 조금이나마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윤동주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다. 백범 김구는 기독교인이었다. 유관순도 기독교인인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도 기독교인이었다. 민족 계몽운동을 이끌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도 기독교인이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독교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다.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도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이다. 한국 근대사의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했던 공헌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반면, 현재 한국 기독교는 이들이 쌓아놓은 금자탑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있다. 아무런 역사 지식도 없이 광화문에서 전광훈과 함께 성조기를 흔드는 목사들. 침묵하거나 아예 사태에 대해 무지한 대학생들.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어리석음 이론을 아는가? 차라리 악한 사람은 교화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다. 수많은 기독교 대학생들은 팀 켈러의 책은 읽으면서, 한국 독립운동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역사 이념의 부재는 곧 자신의 행악을 낳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악의 평범성’에서 얼마나 많은 강조를 해왔는가. 나치 독일 시절 수많은 교회들이 히틀러에 부역했던 것은 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 사실, 한국 기독교의 무지와 악행은 제주 4.3 사건에도 존재했다. 기독교계에서 파송된 서북청년단에 가담했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민간인 집단 학살에 동조했다.


제주 4.3 사건은 소수의 남로당 토벌을 위해 서울에서 무장대로 500여 명을 보냈는데, 이때 발생한 민간인 학살자가 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것도 아직 명확히 추가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제주 4.3 사건 당시에는 전기고문을 비롯하여 여인의 옷을 벗긴 채 장작으로 매질하는 일, 여인의 유방을 도려내는 일, 강간 후 살해하기,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창으로 찌르는 일, 죽창으로 여인의 국부를 찌르는 일, 장모와 사위를 알몸으로 벗겨 성교를 시킨 다음 죽이는 일, 방금 출산한 부인을 아이와 함께 총으로 쏴서 죽이는 일, 방금 출산한 부인을 아이와 함께 총으로 쏴서 죽이는 일, 자식을 죽인 다음 부모에게 간을 물리고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는 일 등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폭력과 학살의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목격자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하는, ‘차마 짐승에게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전쟁과 사회, 김동춘 저, p.321 출처)


이런 한국 기독교인들의 만행에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공동체적으로 회개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산다. 카페 가서 수다 떨거나 누구 뒷담 화하거나 집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유튜브 볼 시간에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목사의 말만 듣고 따르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랑과 느끼셨던 고통과 슬픔에 사회와 함께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슬픔과 비극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희망은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 잘될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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