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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환대 (hospitality)

by 바람

단톡방을 여러개 운영한다. 외가 같은 항렬 톡방, 친가 같은 항렬 톡방, 가족 톡방, 상경논총 OB 톡방, 상경논총 YB 톡방, 신성고등학교 01년생 동문 톡방 등등.


공동체를 떠나면서 아쉽게 떠난 톡방도 있고, 앞으로 운영하거나 가입할 톡방도 무궁무진하다.


톡방을 운영하면서 제일 의아한 점 중에 하나는 환대(hospitality)의 부재(debt)다. 보통, 톡방에 누군가를 초대한다. 난 사실 사람, 특히 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영(welcome)한다.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셨고, 입장을 바꾸어 내가 새로운 톡방에 들어갔을 때 환영받지 못하면 난처하고 무안하기 때문이다.


대면 공동체 생활을 하면 언제나 뉴커머(newcomer)에게 모든 관심과 사랑을 쏟는다. 어느 집단이든 새로 들어왔을 때, 안전기지가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적 관계를 확장해 나가면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든, 학교든, 동아리든. 항상 그래왔다.


근데, 사람들이 참 무서운게, 처음에 이렇게 잘해주었는데, 내가 힘들거나 유약한 시기를 보낼 때,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나를 은근히 깔보거나, 무시하거나, 우위에 점하려고 하더라. 특히, 공통점은 다 또래 남자아이들이다.


이럴 때마다 타인, 더 넘어서 '환대'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든다.


'남한테 잘해줘봤자 뭐하지. 어차피 남은 남인데. 내가 아닌데. 나랑은 다른 세계이고, 내가 타인을 생각하고 관심 가지는 만큼, 타인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다시 일어나서 환영하고, 환대하고자 한다. 그것이 옳은 길이며, 그것의 빛의 길이며,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외가 식구들 중에 사촌 여동생이 있는데,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모부의 외도와 이모의 수차례의 재혼으로 상처가 깊고, 가벼운 연애만 반복한다.


나 : "H야, 방학되면 서울 올라오거라. 그리고, 이건 선물. 연락해. 밥 사줄게."

H : "오빠, 그거 집착이야.'

나 : "엌ㅋ 미안."

H : "장난이야. 치킨 고마워 개꿀따리 ㅋ."


칼럼의 메인이미지는 고슴도치에 관한 애니매이션이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온몸에 많아서, 친구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 한다. 고슴도치가 마음의 병이 심해진다. 이때, 반 친구들이 작고 단단한 솜뭉치를 모아 고슴도치의 가시 하나하나에 붙여준다. 고슴도치는 환대(hospitality)받는다.


이전에 어떤 법관이 쓰신 책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사람됨으로써의 자아존중감을 느낄 때는 환대 받을 때이다. 내 사회적 지위나 외모, 인맥이 아닌 오직 '나'라는 존재가 타자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사람은 행복(happiness)을 느낀다."


손양원 목사라고 계신다. 돌아가셨는데, 근현대사 시절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다. 피보다 진한 터질 것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아셨던 목사님은 그 살인자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받아들여 주었다.


나도 타인을 대할 때 마찬가지다. 나랑 솔직히 ㅈ도 상관 없다. 나는 내 할 일도 바빠 죽겠다. 하지만. 이 병든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 환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타자를 죽을 때까지 환대할 것이다. 설령,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거나 우위를 점하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이 부족한 시대다.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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