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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7. 2023

배우의 심리적 저지선

2009-08-08

여배우가 하기 싫어하는 배역들이 있습니다. 그런 역을 맡으면 마치 자신이 급이 내려간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세월이 가면 나이가 드는 것이 당연하 듯 언젠가는 배우들이 그런 배역을 맡아야 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녀가 하기 싫은 배역은 유부녀 역할입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결혼하는 여자의 배역은 참을 수 있지만, 유부녀로서 드라마를 도입부를 시작하는 것을 싫어하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일찍 유부녀 역할을 시작하면서 배우로서의 전화기를 맞이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죠.


그녀가 하기 싫은 역할은  아이 엄마입니다. 결혼한 새댁의 역할을 참을 수 있지만, 아이 엄마는 하기 싫습니다.  아직 미혼이 여배우라면 특히 이런 역할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아주 큽니다. 


그녀가 하기 싫은 역할은 할머니입니다. 캐스팅에서는 실제보다 젊게 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어야 체력적으로 촬영의 부담을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중년 여배우에게 자연스레 할머니 역이 요청될 때가 있는데, 그때 그들의 마음에 상당한 부담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저는 일일 드라마나 연속극을 제작하면, 가족 구성원을 캐스팅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좋은 여배우를 캐스팅하려면 이런 심리적인 저항을 무너뜨리고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배우들이 배역의 나이에 굴하지 않고 드라마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목하고 시놉시스를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여배우를 설득하면서 [찬란한 유산]에서 김 미숙 씨가 보여준 할머니 연기를 주목하면서, 선하고 악한 역할을 떠나 배우가 보여주는 성과에 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여배우가 기피한 [해피엔드]나 [너는 내 운명]으로 대형 배우의 반열에 올라선 전도연 씨의 행보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제 30대와 40대에 들어선 대형 여배우들이 이런 딜레마에 많이 빠져있습니다. 성장에 고통이 있듯, 배역의 전환기에 그들에게는 말 못 할 속앓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늙어가듯,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나이 먹는 과정을 겪었으면 좋겠습니다. 잊혀 쓸쓸히 뒤안길에 선 배우보다는 영원한 현역으로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더욱 행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저지선은 오로지 심리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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