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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Oct 19. 2024

아버지의 빈자리

1. 발견

아버지가 간암에 걸리셨다.


2024년 7월 9일 저녁 9시. 일산에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이상해. 토하고 쓰러지셨다. 빨리 오너라"


그 길로 친구와의 자리를 파하고, 택시를 탔다. 40분이 경과한 즈음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구토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얼굴이 퉁퉁 부은 체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  아버지를 부축하고 침실에 뉘었다. 어찌해야 하나? 응급실에 가야 하나? 아니면 날이 밝은 후 큰 병원으로 가야 하나? 의대 입학 정원 문제로 의료계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집안의 문제, 아버지의 생명을 두고 하는 결정이었다.

이때 내린 결정은 아침이 돼서 병원에 가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대학 병원은 혼란스러울 테니 집 근처의 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버지를 진찰한 소화기 내과의 사는 CT를 찍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검사와 예후의 관찰을 위해 입원하셨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모습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항상 건강하고 부지런한 분이었다. 근검절약이 인생의 화두이셨던 분인지라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 식사를 잘하셨고, 음식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그래서 남은 음식은 아버지의 차기가 되곤 했었다. 아버지가 남긴 음식을 많이 드려서 몸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의 투병 기간 내내 든 생각이었다.


CT 결과를 알려주는 의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환자와 가족이 받을 충격을 배려한 떨림이 있었다.


    "간에 암세포로 보이는 덩어리가 있습니다. 이 덩어리에서 지금 출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로써 아버지가 위험한 질병에 걸리신 걸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지나온 짧은 간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주치의는 대학 병원을 섭외하려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의료대란이 우리의 현실로 부딪쳐 오는 순간이었다.  병원을 옮기는 일은 환자나 가족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보다. 담당 주치의가 의료 기록을 토대로 환자를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는 일이었나 보다. 2박의 짧은 입원을 끝내려 짐을 싸는 동안 주치의는 집에서 먼 상계동의 큰 병원을 섭외해 놓았다. 


    '왜 거기까지 가?' 하면서 호기롭게 의사인 친구에게 전화했다. 가까운 대학 병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의사 친구가 있었다.  


    "미안하다. 가까운 친지라도 병원에 소개하는 일을 삼가 달라는 내부지침이 내려왔다'


친구의 대답을 듣고 할 수 없이 상계동의 병원으로 가려던 차, 주치의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대목동병원에 자리가 났는데, 그리 가시겠냐고. 당연히 좋다고 말씀드리고 이대 목동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오후 6시쯤이었다. 다시 CT를 찍고 기다렸고, 밤 10시에 실시되는 시술을 기다렸다. 


무슨 시술일까? 의료대란인데 참 수술이 긴급하게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수술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일하던 동생이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성장한 후 동생과 함께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도 오랜만이었다. 아버지의 시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수술실 앞 복도에 앉아있었다.


원래 현광등은 파랗다. 색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눈이 자동으로 색보정을 해서 우리는 하얗게 느낀다. 그런데 그날의 형광등 빛은 파란색이었다.  서늘하고 어두운 파란색이었다. 그 파란 불 빛 앞에 형제가 나란히 아버지의 모습이 수술실 밖으로 나타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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