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민
시술을 마친 다음 날, 소화기내과 주치의를 만났다. 아버지의 간에 6cm가량의 종괴가 있었고, 이것이 터져 출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젯밤에 한 시술은 이 출혈을 막기 위한 시술로, 색전술이라고 했다. 다행히 시술은 잘 끝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시술 후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제한되어 있다. 하루에 한 번, 20분 내로 제한되어 있었다.
누가 면회를 가는 것이 가장 좋은가?
이것이 첫 번째 고민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제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청력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는 제외되셨다. 기껏 면회 가셨는데 아버지나 의료진과 얘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아버지는 최근 부모님 댁에서 머문 시간이 많은 동생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으실까? 아무래도 장남보다는 차남을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바쁜 직업을 가진 탓에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동생보다 적었다. 나는 직선적이고 말이 빠르다. 동생은 유들유들하고 말을 곱게 한다. 아버지는 동생을 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안이 심각한 만큼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의료진에게 요구를 할 수 있기에, 내가 아버지를 뵙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에 간호사와 만나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신 아버지는 지나가는 날 부르셨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섰다. 의료진이 여러 가지 줄을 연결해 놓았는데, 아버지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시면서 앞으로 나가시려고 했다. 옆의 간호사가 제지했고, 아버지는 잠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셨다. 헛 것을 보시는 듯했다. 하지만 곧 아버지는 안정을 찾으셨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무 추웠다. 일각이 여삼추란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아버지께 잠시 수술 결과를 알려드리고, 어머니와 통화를 시켜드리려고 전화를 꺼냈다. 의료진이 핸드폰 쓰는 것을 제지했다. 체온이 조절되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실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체온이 높다고 했다. 그렇게 면회를 마쳤다. 이틀 후에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내려오실 수 있었다.
아버지 곁에는 보호자가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다. 노령이신 어머니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생과 내가 번갈아서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는 것이 맞을까? 간병의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가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간호사에게 간병인을 소개하는 전화번호가 있어서 간병인을 소개받았다. 알고 보니 간병이라는 것이 큰 산업이며, 간병인을 구하고 소개하는 모바일 플랫폼도 나와 있었다. 개인으로 소개받는 간병인은 비용처리가 애매하지만, 플랫폼을 통해 소개받으면 간병비의 영수증이 발급된다. 간병인의 인적 사항과 간병비를 보고 환자보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매 방식이다. 여기에 보험까지 가입이 되었다. 나중에는 플래트폼을 통해 간병인을 소개받았다.
일반 병실에 내려온 후 여러 가지 검사를 맡았다. 입원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오전, 주치의가 다가와 진단 결과를 알려줬다. 간암이셨다.
이미 다른 장기에 전이가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4기인데, 4기 암이라면 곧 말기를 뜻한다. 충격이 컸지만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멍한 순간이 잠시 지나갔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과 선택이 남았다.
"치료법은 뭔가요? 얼마나 사실 수 있나요?"
다른 장기에 전이된 이상 암세포를 잘라내는 외과수술이나, 방사능 치료를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아마 암세포가 모여있어야 가능한 치료방법인가 보다. 남은 선택은 흔히 화학 요법이라고 부르는 약물치료이다. 과거와는 달리 약이 많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어떤 환자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어떤 환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기도 한단다. 현재로서는 약물치료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냉정하다. 냉정해야만 한다.
"약물을 투여했을 때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약물치료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의사는 20%의 확률로 성공한다고 했다. 성공했을 때 1년 6개월 정도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치료하지 않고 고통을 줄이는 완화치료를 한다면 얼마나 사실 수 있나요?"
간암 4기라면 6,7개월의 생이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이건 일반론이지 개인차가 워낙 크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
"선생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의사가 잠시 침묵 후에 대답했다.
" 제 아버지라면... 하지만 환자는 워낙 체력이 있어 보이시고, 정신도 또렷하시니까?"
정확한 대답은 말 줄임표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즉답을 피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7월의 여름이었다. 아버지의 생명을 두고 하는 고민이었다. 치료하지 않고 7개월이면 내년 2월까지 아버지는 사실 수 있다. 치료해서 20%의 확률로 성공하면 1년 반을 더 사신다.
햇살이 뜨거워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