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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Oct 27. 2024

아버지의 빈자리

4. 과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집으로 모셔오던 날 동생은 아버지가 화장실을 못 가실 것을 대비해, 성인용 기저귀와 깔개를 잔뜩 구해놓았다. 의사가 말한 시간, 6개월을 대비한 것이다. 간암이 진행되면 어느 순간 간이 기능을 못하게 되고, 그럼 체내에 암모니아가 축적되고 뇌에까지 암모니아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럼 '간성 혼수'라는 혼수상태가 시작되고 환자는 의식을 잃는다. 이와 함께 복수가 차는 현상이 시작한다. 보호자는 간성 혼수를 예방하기 위해 의식이 흐린 환자에게 관장을 해주며 암모니아를 배출하도록 도와야 한다. 복수가 찰 경우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는 차라리 낫지만, 돌보는 가족에게는 더욱 어려운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시술의 후유증에서 회복되는지 점차 기력이 좋아지는 것으로 보였다. 예전처럼 말씀도 하시고 하루 15분에서 20분 정도 산책을 하실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셨다. 동생은 아버지가 회복되는 것 아니 나며 반가워했다. 이 정도라면 항암 치료를 받으셔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퇴원 후 한 달이 지나 추적 검사를 해보았다. 여전히 다른 장기에 전이된 것은 보이지만, 뼈에까지 전이되지는 않아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다. 역시 암세포가 아버지가 노령인 이유로 진행이 느린 것으로 보였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여명이 6개월이 아니라 2,3년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사의 판단은 여전히 항암 외에 대안은 없었고, 항암으로 인해 치유될 확률과 연장할 수 있는 생존의 시간은 비슷했다.


친지에게 병을 알릴 때가 되었다. 친지에게 병을 알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로는 여러 가지 조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상속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간암인 것을 알자마자, 국립 암센터와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이 간암에 대해 설명한 책을 두 권 구해 읽었다. 의료진이 간암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가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정보를 알아야 의료진의 설명이나 아버지의 병에 대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남으로서 무엇이 아버지에게 가장 좋은 진료인지 결정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또한 장남으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에게 일어날 변화의 충격을 줄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위기의 순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고, 최악의 상태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리더의 숙명이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안에서 내가 리더일 수밖에 없다. 나는 다행히 수십 년간 드라마 연출로서 결정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과정에 익숙했다. 나는 드라마 현장에서 처럼 감정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조언을 듣고 불필요한 내용을 걸러내면서, 집안의 평지풍파를 막아야 했다.  위의 두 가지 문제는 첫째 아버지를 치료하는 것, 둘째 상속 문제를 처리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친지의 근심 어린 조언은 대부분 대안치료나 식품 음용에 관한 것이었다. '비타민을 과하게 먹어라', '어떤 음식이 좋다'는 먹을 것에 과한 조언, '중립자 치료가 좋더라'는 치료법에 과한 조언이 여러 곳에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조언은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간이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의 해독 작용을 하는 장기인데, 간 기능이 원활하지 못한데 특별한 음식이나 약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료진의 조언은 '액상으로 된 이상한 식품'은 절대 섭취하지 말고, 그냥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라'는 것이었다. 간암 4기 이후에는 치료해도 재발의 우려가 많기에, 화학 치료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씀드렸다.


    "아버지, 아버지는 인생의 숙제를 거의 다 하셨어요. 아버지에게 남은 숙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의사의 지시에 잘 따라 몸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속'에 관한 정리를 잘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병만큼이나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 상속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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