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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신선 May 18. 2024

민속문학의 고향, 서사의 토포필리아

난 곳, 싼 곳, 머문 곳, 떠난 곳, 밟은 곳, 그 '곳'들의 자취


"나의 살던 고향은~ "으로 시작하던 동요가 있다.

동요 속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지만 필자의 고향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 마을이다.

그러나 인공물이 고향의 전부는 아니다. 자연 위에 건축된 도시이기에 자연을 지울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메트로폴리탄 초거대광역도시라 하더라도 본바탕은 꽃피는 산골이다. 우리 민속문학은 고향을 어떻게 노래하며 그리고 있는지 고향땅 둘러보듯 둘러보자.


[고향가]를 그전에

고향을 떠나 세월을 보내주소

우리의 아버지를 젊음을 흐였지

고향을 다버리고 먼길을 떠나가다니

한송가 고향하면 울음만 나가오

울지마라 울지마라 사랑을 벗이여

아부지 언제나 다시 만날까

울어도 못 만나고 소리 쳐도 못 만나고

세월을 긴세월을 다보내었소

울지마세 울지마세 나의 어린 날

가는 길을 다시 보면 생각도 나시오

해외 채록, 한국구비문학대계 DB               

17세 때 결혼하기 전 고향인 진안 용담에서 들은 것이라고 한다.


고향에 머물러 있다면 고향은 그대로일까? 10대 화자는 혼례전 옛 고향을 그리며 노래한다. 고향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 시절 그 당시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고향시절의 사람들은 마주하기가 어렵다. 공간은 흘러간 시간 속에 개발을 거치고 길이 바뀌고 지형이 바뀌며 지도를 바꾸기도 한다. 이웃들도 떠나갔고 친척도 이사간 고향은 이제 저승으로 떠난 가족들 탓에 적막하다. 옛 생각에 두 볼타고 뜨거운 눈물흐르고 가슴엔 먹먹함 가득하지만 어디에도 그 시절 고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에서 그전에 관상을 잘 보는, 상을 잘 보는 홍계관(洪繼寬)이라는 관상쟁이가 소문이 자자혀. 그래 영의정께서 말여, 참말로 홍계관이가 상을 잘 보느냐 하면서 한 번 불렀어.

 그러니까 그 때가 선조대왕땐가 어느 대왕땐가 모르겄어. 그래 불러서 그 영상 밑에 턱 앉아 있는데, 그 때 마침 느닷없이 쥐가 한 마리가 앞으로 지나간단 말여. 그래 영의정이 물었어.

 “쥐가 몇 마리 지나갔느냐?”

 “쥐가 세 마리 갑니다.”

 영의정이 생각하니 분명히 쥐가 한 마리 지나갔는데, 세 마리가 지나간다고 단한 말여. 그래 영의정께서,

 “네 이놈! 홀린 일을 많이 해서 사람을 많이 속였응께 이 놈을 죽여야겠다.”

 그래서 홍계관이를 갖다가, 참 형리를 불러다,

 “이 놈 사형을 해라, 목을 비라고 말여. 이 놈이 서울 시내에서 홀린 말로 사람을 많이 속이고 재물을 취하고 했으니 죽여야 한다.”고.

 그래 거기는 사형장이 아차고개더래. 그래 데리고 가는 판인데, 보내놓

 고 영의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거 심상한 일이 아니란 말여. 그래서 그 일꾼들을 시켜서, 쥐집에 가서 구멍을 파 봤어. 파보니께 방금 새끼 두 마리를 놔놨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이 말이여.

 허니께 영의정께서,

 “내가 잠깐, 그를 죽이믄 못 쓰겄다.”

 이 말이여. 그래 그 쪽 사람을 내 보내 가지고서는 가본께, 벌써 그 홍계 관이를 죽일라고 말여, 칼춤을 치고 야단이란 말여. 그래 홍계관이가

 “조금만 참아달라, 조금만 참아달라고.”

 그래. 그들도 참는 판에, 저 그 때 그 쪽 사람이 와가지고 얼른 쳤단 말여. 그래서 영의정께서도

 “아차!”

 했다 이말여. 그래서 아차고개랴. 말하자면 애매하게 관상쟁이

 홍계관이가 죽었지. 홍계관이가 참 재주꾼이었더래.

 [조사자:홍계관이란 분이요?]

 아주 잘 봤더래.

 [조사자:어른께서는 이 말씀을 언제쯤 들으셨어요? 아차고개에 대한 얘기를.]

 그전에 영감들한테서 들었지.

 [조사자:그전 유년시절에요?]

 그렇치 암먼. 그때 젊을 때지.     

서울 아현동 아차고개의 유래

제보자 임중호, 전라북도 전주시 노송동, 1980.01.31.채록                              

좀 쉬었으니 내가 하나 하지요 하고는 시작했다.


어쩌다 재주가 도리어 명을 재촉하였던가!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라는 대사로 유명했전 영화 《관상》도 있고, 한 만화가의 관상 소재만화 <꼴>도 있지만, 이 옛이야기 속 관상쟁이만큼 비장할까! 아차! 하는 순간 재주의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오늘의 서울 마포구 아현동 어딘가에 전해지는가 보다. 일제강점기 아현리역은 오늘의 서대문구 북아현동 철교 사이에 자리했다. 그당시 경성부 북아현정은 일본식으로 기타아켄쵸라 불렸다고 한다. 아현은 언덕 아에 고개 현을 쓴 지명만큼 고개가 많다. 굴레방다리라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도 전하니 궁금한 독자분들은 이 또한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굽이굽이 동작구 아차고개의 고갯길 사이에 전하던 전설적인 점복가 홍계관(洪繼寬

)의 이야기가 위 이야기에서는 아현동 아차고개로 바뀌었다. 이렇듯 전승자에 따라 쉽게 변하고 다른 이야기와 착종하는 것이 변화무쌍한 민속서사의 특징이다.


 에― 서울 뚝섬 건너가면 봉은사(奉恩寺)라는 절이 있는데요. 그 봉은사에서 어느 스님이 어떡하다 그 여승방(女僧房)에 있는 여승(女僧)하고 친하게 지냈단 말씀이야. 그 비밀이라는게 있것읍니까? 열 네살에 중이 돼가지구 삼십이 넘어서 그 여승하고 이제 가까이 돼가지구. 서로 정을 통하고 보니 그야말로 참 다시 띨 수 없는 그런 깊은 정이 들었던 모양이죠. 그러나 비밀이란건 없는 게야. 결국은 그게 소문이 나가지구 전부 그 여승방은 물론 그 대중이 전부 다 알게 돼서 인제 거서 내쫓기게 됐단 말씀이지. 그런데 그전 절에서 풍속이 만일 그렇게 서로 남승과 여승이 가까이 파계(破戒)하게 되면 왕겨 서말을 입으로 불어서 전부 날린다는구먼요. 입으로 입으로 불어서 왕겨 서말을 날리게 되니깐, 남승과 여승이 여섯말을 불어서 날리고 나니께 막 호홉기관에도 지장이 있고 아주 배가 그만 허리에 붙다싶이 이렇게 됐어. 그걸 다 인저 날리고 난 뒤에 인제 등에다가 북을 지워가지구 두 내외

 를 갖다가 [마당을 가르키면서] 이렇게 큰 마당을 [손으로 원을 그리며] 이렇게 돌고 결국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서 인제 승복(僧服)을 베끼고 속복(俗服)을 입혀서 내보낸답니다.

 그 참 그렇게 내쫓겼단 말씀이지. 내쫓겨가지구 인제 문안에(1) 들어와서 속인 생활을 할라고 하니 그 돈이 있나요? 그 승려루 있으면서 어떻게 서울 사대문안.뭐 돈푼 몇푼 있는 거 가지고 남의 집 협방(俠房)을 하나 얻어가지고 바가지속을 둘이 해 덮어쓰고(2)[깎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한 사나흘 가만―히 지내보니깐,

 ?이거 어찌타가 이거 잘못돼가지고 이거 승려로서 본의아닌 일을 이렇게 파계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가??

 서로 그 참회라고 하나 이미 저지른 물은 어떡할 도리는 없고, 인저 앞으로 살아나갈 생계를 생각해 보니깐 속수무책이여. 게 남대문 시장으로 인저 떡 인제 그 남승이 인저 남자가 바가지속을 해지고 쓰고 남자가 시장을 나가보니깐, 마침 그때가 초여름이던가 그 모두 오이 채소전에 나가 나가서 보니깐 그 채소같은 거 사가지고 팔고 밑천밖엔 안 되겠어요. 지개 하나 사고, 밑천 있는 것이 그 오이, 그래 그 한 몇접 받아서 한짐 지니깐 마치맞게 됐어요.

 그 인제 오이장살 시작했지요. 지개 하나 사고 인저 오이 한짐을 사고 해서 전 밑천 들여가지구 오이 팔러, 인저 떡 남대문시장에서 사짊어지구 어디로 나간고 하니 저― 아현동(阿峴洞) 애고개라고 그러지, 그때는. 염천교 지나서 인저 아현동 그리 가면서, 그때는 지금은 그런 게 없을거야. 우리 클 때도 우리 보면 두렁이라고 햐. 오이면,

 ?오이드렁― 사오.?

 수박은,

 ?수박드렁― 사오.?

 하거든. 그때는 모두,

 ?생선 준치드렁― 사오.?

 하는데 인저 이 사람이 절에서 뭐 있었으니께, 염불이나 할 줄 알지 그건 할 줄 모르나 다른 사람 보니까 드렁 드렁하거든. 자기두 그 짊어지구 땀을 흘려가며,

 ?오이드렁― 사오. 오이드렁― 사오.?

 그 염춘교 지내서 애오개, 아현동 그 애오개 고개에 올라가는데, 아 어떤 자기 그 뒤에서 쓱 하나이 나오더니 이 사람이,

 ?오이드렁― 사오.?

 이러면,

 ?새우젓도 사고.?

 ?오이드렁― 사오.?

 하면 또 뒤에서,

 ?새우젓도 사고.?

 그건 또 어느 선비가 [웃으면서] 그 과거에 몇번 낙방을 해, 해먹고 살 도리가 없어서 참 조석이 간 데가 없는데, 그 아는 친구들이 어떻게 새우젓 도가(都家)에 가서 새우젓을 한짐 외상을 얻어줬던 모양이여.

 ?팔아가지고 남는건 그― 하고 본전 갖다주라.?

 고 이렇게 했던 바, 처음으로 새우젓 장사를 해노니 이 그,

 ?드렁―.?

 소리두 안 나오구 선비로서,

 ?사쇼―.?

 소리두 [웃으면서] 양반으로서 안 나오고 그래 앞에 사람이,

 ?오이드렁― 사오.?

 하면 뒤에서 반말로,

 ?새우젓도 사고.?

 하니까 누가 살 사람이 있느냐 그 말씀이여. [웃음] 이래 전진 전진해 간 것이

 애오개 저기 아현동고개 마루턱에 떡 올라가서 생각하니까 거 오이

 살 사람도 없구 새우젓 사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상벽(맨꼭대기)에 올라 가서 오이짐을 떡― 받혀놓고 땀을 팔뚝으로 [팔뚝으로 이마에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닦고 생각해 보니깐 그 새우젓장사, 그 선비가 또 자기 오이짐 받혀논데 거기다 새우젓 짐을 떡 받혀놓거든. 하도 화가 나서, 그 중으로서 있었으니까 말은 한심으로 해서 그 나무래도 책(責)은 안하고 속으로,

 ?어라 내가 어떻다가 이런 고생하나. 파계해서 이런 고생하는고? 과거에 절에 있을 땐 이렇지도 안했고 편하고 또 의식주에 대해서 구별이 없었는데 이런가??

 하고 신세한탄을 하고 그전에 염불하던 염불송(念佛頌)을 한번 해여. 염불송 하는데 뭘하는고 하니 떡 거불청을 떡 한단 말씀이지. 하도 화가 나고 옛 생각 절에서 생각이 간절해가지고, 이걸 내 청으로 한번 해 보겠읍니다. 거불청인데,

 ?나~에~ 에헤 에이호~어화~ 오이드렁~ 사오.?

 이랬단 말씀이야. 이제 인저 절에서 부른 거불청이 이래. 거 선비가 생각하니까 듣기 좋거든. 에이 내가 질세라 맹자(孟子)로 읽는다.

 ?[옛날 책읽는 소리로] 맹자왈 언인지불선(言人之不善)이면 당여후환하(當如後患何)오.”

 허 맹잘 읽었단 말이야. [웃음] 아, 중놈이 점점 그 오이장사가 화가 났어. 고만 또다시 인제 끝에 가서 그 거불청을 하죠. 삼창에 가서는 조금 부르는게 달쵸. 이것도 고청인데,

 ?나~ 에~ 에이~ 호~ 오호~ 오~ 오이드렁~ 사오~.?

 아 이래 뚝 끊어지니께, 고 앞뒷집에서 우쩐 여자가 나오더니만도 아 오이장살 불러.

 ?이리 오라.?

 고. 오이 산다고 말여.

 ?그 얼마나? 아 다 지고 오라.?

 고. 하 그 다 지고 갔다. 가니까,

 ?얼마나 사실랍니까??

 ?아 그 전부 다 사겠읍니다. 다 세쇼.?

 값도 묻덜 안햐.

 ?아 그러나 값이나 해야죠??

 ?아 값이야 오이 지금 남대문시장 얘기 들으니까 아무한다는데, 그렇게 뭐 다 다른사람 주는거 줄테니까 시(세)라.?

 고. 아 그래 신다, 이 사람이. 시는데 신명이 나가지고 인제 그 염불청으로 시는거요. 염불청으로. 이래 시니깐 여자는 마침 설거지하다 나왔던가 식기 대접을 들고 나왔던가, 이 사람은,

 ?[염불가락으로] 다―섯―하고 열―이―로다.?

 천수(千手)(3)[천수경(千手經).] 바라치듯 세거던. 그러니까 이건 등풍등풍 [손벽을 치면서] 춤을 춘단 말이여. 아 그 남자가(4)[새우젓 사러온 여자의 남편.] 떡 그 세수하다말구 들으니까루 밖에서 이 사람 내다보니깐 아 마누라, 저 사람은 오이를 시는데 천수바라식으루 시구, 마누랜 막 식기 대접을 아주 그리 장단을 둥둥 치구 다닌단말여.

 이 사람이 그만 얼른 낯도 안 닦고 세수대야를 들고 나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지장―보살― 지장보살.?

 [웃으면서] 하나는 천수바라경을 치고 마누라는 바라춤을 추고 이 사람은 사십구제(四十九齊) 들었다고 지 지장보살(地藏普薩)을 찾고, 후딱 다시 시었단 말씀이야. 아 이 선비가 가만히 있으니 웃으운 일이여. 아 저거 어떻게 된 일이지 통 모르겠단 말이여. 게 들어가서 다 팔고. 주인이 하는 말이,

 ?그 당신 어쩌다 그렇게 됐오??

 그런데 그것도 중 속화(俗化)한 이였는데 내외가, 역시 그이도 중 속화한 이로서 참 퇴속(退俗)해 가지고 나와서 무수한 고생을 다 하다가서루 다시 남대문시장에 장살해가지고 지금은 거부가 되서루 퍽 큰 포목상을 하는 사람이여.

 ?여보 나도 이만저만 이렇게 돼서 지금 이렇소. 그러니께 당장 그만 치우고 우리 상점에서 점원노릇이나 하오.?

 이렇게 했드랍니다. 그래 팔자가 피었단 말씀이야. 아, 그런데 새우젓 새우젓 장사가 생각해 보니까, 이전 차라리 나도 저런걸 배웠더라면 저거 저럴걸 맨날 [웃으며] 맹자 공자 이것만 찾다, 공자 맹자만 찾다 이거 벼슬 하나 늦게까지 못하고 이거 새우젓, 이거 생명과 같으나 하나 살 사람 없고 장사 종일 뭐 도시 안 되고 막막하단 말씀이야. 그래 이저 하는 일 없고해서 인제 이거 팔아야지. 팔아가지구 저 좁쌀이래도 좀 사가지구 가야 조당숙이라도 끊여서 풀칠이라도 할 거인데, 뭐 하나도 팔던 못하고 주르르 간 것이 어디까지 갔냐하면 저 마포(麻浦)까지 갔던 모양이여. 마포가서 한강(漢江) 변에 떡 가가지구 생각하니께 다른 도리는 없어. 죽을 죽는 도리 밖에 없어.

 그래 떡 강가에 가서 새우젓을 지고 가서 신세타령을 하는거지. 전번 과거에 그 고 얼마전에 대과(大科)가 있었는데, 거기서 물 수(水)잘 몰라가지구 이 사람이 고만 낙방이 됐단 말이여. 그래서 고만 한강을 쳐다보구

 ?물아, 물아. 네 이꼴로 날 죽이느냐??

 고. 신세타령을 하고 하는 차제(此際)에 인저 숙종(肅宗)께서(5)[조선 제 19 대 왕.] 야순(夜巡)을 떡 도시는데, 대과 끝나고 난 뒤에 얼마 후에 숙종이 요번 때 과장(科場)에서 무슨 그 불평불만이 있는가 싶어서 인저 야순을 도시는데, 숙종께서 마침 미복(微服)으로서 아애 그 시종무관(侍從武官) 하나만 데리고 지나다 볼 때 어서(어디서) 곡소리가 난단 말씀이야, 어두운 달밤인데. 게 숙종께서 그래 떡 가셨지.

 ?그 여보 어떤 분이 이렇게 곡을 하고 이 밤중에 이렇게 울고 있소??

 ?예 난 나한텐 뭐 물을 것도 없소. 당신 볼 일이나 보시오.?

 ?아 그렇지만 사람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이 밤에 당신이 여기서 곡을 하고 있는 그 필유곡절(必有曲折)이, 무슨 곡절이 있을터인즉 그 왜 그렇게 냉, 냉담하오?”

 ?글쎄 알구보면 하두 기가 차서 그럽니다. 지가 과거에 수삼차 참 나갔읍니다만두 한번두, 자신은 글은 자신이 있는데 거기만 들어가면 그만 그 충동이 일어나 가지구 그만 떨려서 심장이 약해 가지구, 게 요번 과거엔 물 수자를 몰라서 쓰덜 못해서 떨어졌읍니다. 그래서 이 물이 하도 원망스러워서.?

 자기 생각을 모두 얘기했어.

 ?그래 빠져 죽을려고 합니다.?

 그러자 솔개가, 지금은 솔개가 없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솔개가 굉장히 많었답니다. 솔개가 ?뾰―’ 하고 허공을 돈단 말씀이지.

 ?저게 무슨 소리요??

 이 숙종께서 물으시니까 그 새우젓 장수가 하는 말이,

 ?그게 솔개 소리입니다, 솔개.?

 ?그 솔개 소리개라고 어떻게 써??

 ?아 솔개 연(鳶)자 [웃으면서] 모르시오? 당신.?

 숙종 아무 소리도 [웃으며] 않더래요. 솔개 연자 어떻게 써요 해놓고.

 ?근데 여보, 실은 나도 요번에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나가서 나도 수삼차 봐서 떨어진 사람이오. 나도 울화가 울적하고 해서 소풍하러 나왔오. 당신 보니께 나와 같은 사람이오. 보니께. 나는 당신과 같이 그 의식주에는 구애가 없는 사람인데, 얘길 듣고보니 당신은 상당히 참 그야말로 모든 가정환경이 곤란한 것 같여. 그런데 내가 아 비밀을 하나 알아뒀오.?

 ?무슨 비밀이요??

 ?내일모래 별과(別科)를 보이는데, 그 상감께서 내일모래 별과를 보이는데 거기 한번 당신 나가보라.? 고.

 ?별과, 그 별과를 보인다고 해서 또 가서 뭐 글자 잊어버리고 또 거기가면 뭐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뭐 안 될걸 난 포기한다.? 고.

 ?아 그게 아니고, 아 내가 얘기 들으니까 아까 얘기한 솔개 연자 그걸 백보(百步) 밖에다가 앞에다 써놓고 백보 뒤에 서서 한쪽 눈 감고 글자를 맞추기랴. 내가 알었으니깐 그러니깐 당신 모래 별과나 한번 봐보소.?

 그 사람이 그렇게 죽지, 죽지해도 그 죽음에 이르면 생에 애착심이 생긴다고, [웃으며] 있는 건 자연인데 아, 그 솔깃한 말이 생각이 난단 말이야.

 ?아 그러냐? 그렇다면 나도 한번 가보겠다.?

 고. 그래 참 돌아서고 말었어요. 그래 그날 자고 그 이튿날 보니까 방(榜)이 써붙힌게 아닌가 아니라 그날 저녁에 만난 선비 말과같이, 그 숙종이거든. 바로 숙종대왕이란 말이야. 그 사람 살려 준다고 아 별과를 보인다고 하거든.

 참 그날 자고 그 이튿날 별과에, 떡 춘당엘 가니깐 그땐 시골 선비들은 다 모두 내려가고 인제 인제 서울 있는 선비들 그 뭐 도로 떨어진 이런 사람들. 그전 모두 별과를 할 땐, 보일 때는 반드시 누구 하나 살릴라고 하는 이 때에 그 뭐 가나마나 모르는 사람은 헛일이지만 그래도 욕심에 가고 가고싶어. 그래 모인 것이 수 삼십명이 모였던 모양이여. 춘당대에(6)[창경궁에 있는 과거 보는 곳.] 모였는데 그 참 그날 저녁에 말한 그이, 그 그 선비 말과같이 아닌게 아니라 운자(韻字) 맞게 쓰는게 아니고 글자 알아 맞추는 거여. 백보 밖에서 앞에 있는 글잔데, 아주 세서(細書)로 써놨겠지. 한짝 눈을 가려 그 맞추긴데 그 아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있어요? 그래 쭉― 차례차례,

 ?그 무슨 자(宇)냐??

 물어. 못 맞추면 빠져나오고 빠져나가는데 아 자기 차례, 벌써 서넛 남았

 는데 사뭇 가슴이 두근거려 더 못 견디겠단 말이여. [웃는다] 게 뒷사람 보고,

 ?저게 다른 자가 아니라 솔개 연짜여. 솔개 연짜니께 난 내가 비밀을 알긴 아는데, 난 건망이 끼여서 또 혹 잊어버릴 찌 모르니까 내가 모르거든 당신이 맞추오.?

 약속을 했어. 그래 그 이 사람 앞에 떡 자기 차례 당해서,

 ?무슨 자냐??

 물으니까, 아 또 건망증이 있어 얼른 나온다는 [웃으며] 소리가,

 ?삥삥 연짜입니다.?

 이래거든. 솔개가 빙빙 돌거든. 솔개 연짜 소리를 삥삥 연짜라고 그랬단 말이여. 그래 밀어내지. 그 다음 사람도, 그 다음 사람,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 앞에 이르러서,

 ?이것이 뭐냐?”

 물으니까,

 ?에 그거 시골 글짜로 아뢰오릿까? 서울 글짜로 아뢰오릿까??

 ?아 글짜가 시골 글짜 따로 있고, 어 서울 글짜 따로 있는가??

 하니깐,

 ?아 그건 향토 방언이 있기 때문에 저희 고을에서는 삥삥 연짜라고 합니다. 그러나 솔개 연짜입니다.”

 보니까 둘 다 맞거든. 그 둘다 베실(벼슬)을 줬드래요. 그런 야사(野史)가 있지요.     

팔자고친 오이장사 파계승과 새우젓장사 선비

제보자 김종현,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 1982.07.22.채록       

   


마포구 아현동 애오개역. 5호선 전철역의 역명 안에는 구슬픈 사연이 있다. 아이고개 애고개가 애오개가 되었는데 이곳은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던 서활인서가  자리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애오개 고개에서 오이파는 파계승과 새우젓파는 선비의 사연이 고개만큼이나 우여곡절이다. 염불외던 실력과 맹자읽던 실력이 모두 세속 장사치의 '골라골라'로 바뀌어버렸다. 본연의 신분을 잃어버렸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일까. 둘은 모두 팔자를 고친다.

오늘의 아현고개에는 무슨 사연들이 남았을까?

애오개  건너 최만리의 만리재고개에는 봉황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산이 있다. 그 고개의 일부가 봉준호 감독의 명화 《기생충》의 촬영지이다.


끌쿠 갔는디, 인저 담배를, 옛날에는 담배를 마차에서 서로 끌구서,

여기서 우리집께루 일르믄은 우리집께서 저기 홍성을 이르케 마차루 이르케 갔대유.

갔는디, 둘이, 이게 백오십년된 얘기유.

둘이 마차를 끌쿠 가는디, *ㅇㅇㅇ* 가닝께, 사고개라고 허는 디가, 여그 홍성,

사고개라고 허는 디가 미선 고개거든요, 옛날이.

게가 강도도 나오고, 구신도 나오고, 그 고개가 미서운 고개유. 여기 홍성, 홍성 사고개가.

그래서 인제 거기를 사고개찜 가닌께, 하-얗게 입은 여자, 젊은 사람이 하나 나오더래유.

마차 끝는 디루. 둘이가, 똑같이 가는디.

아 그래서 하나가, 어쩌쩌쩌쩌쩌쩌!, 허고 가먼, 그 사람은 막 뛰어가고,

또 찬찬히 가믄 또 찬찬히 가고, 그러구서 또 쩌쩌쩌쩌허먼 또 막 뛰어가드래요.

젊은 사람인디. 하얗게 소복헌 사람인디.

이상하다, 그러니께 인제 앞이 가는 사람이,

"성님, 이 소 줌 갖구 가유. 저 여자가 내가 워디만큼 쫓아가, 가나 쫓아가보게. 소 좀 갖구 가유."

그러더랴. 그래서 갖고 가니, 뛰어가니께, 홍성집 얼추 가니께 닭이 꼬끼오, 허구 울드래유.

꼬꼬 울으니께 읎더래유. 그 사람이 음써졌드래유.

그게 구신이거든유. 그러구서 왔대유.

와서 인저 소, 그거를 받어갖구 인저 담배를 인저 팔배허러 갔대유. 소를 끌구.

갖다 와서, 삼일만이 죽었대유, 그 남자가.

그거는 백오십년 전 얘기유, 이건.

그때는 차가 없어겄, 다, 시계두 없구, 차두 없구.

그 시계를 몰르니께 덮어놓구 그냥 밤이 그냥 갔대유, 홍성을. 여기 홍성을.

홍성 사고개라고 허는 디가, 옛날에 시방은 찻길을 이렇게 이렇게 해놨으니께 그렇지,

젊은 사람도 못 댕기구, 사람들 못 댕였슈.

도, 강도 있지, 잉, 구신 나오지, 그 고개가.

그래서 못 댕였는디, 그이가 고렇게갖고 죽었다고 나더러, 우리 시아주버닌디,

나더러 허더라고, 밤중이 걷지 말라고.

그렇게 놀래면 죽는다고.

이거는 백오십년 전 얘기유.          

홍성 사고개 귀신

제보자: 이영구, 충남 홍성군 장곡면, 2012. 2.18 채록                              


충청남도 홍성 사고개에는 으슬으슬한 이야기 한 자락이 위와 같이 전해진다. 백오십년 전 호랭이 담배태우던 시절 이야기 임에도 지금도 소름이 돋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학교전설, 도시전설이라는 구술장르로 현대설화에도 이런 공포담은 곳곳에서 우리를 놀래키곤 한다. 내 고장, 내 고향에도 간담 서늘케 할 귀신들이 백석의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되서>처럼 가득할지 누가 아는가?



오촌동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오촌동에서 인천동(仁川洞)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장시바우"에는 무슨 이야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장시바우에는 다른 말이 없다고 하고서, 그 근처 고장두들에 명산이 있다는 말을 하고, 이어서 그 위에 있는 칠보산에 무덤을 쓰고 장수가 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 맹

    [(역시)]

    고장두들이라고 산이 이래 나온 게 있는데, 말인즉 저거 있다고, 명산 있다고, 패수

    [(풍수)]

    숱한 패수 올라가지. 용탐삼주옥이요, 용은 삼주 옥을 탐했고, 어래이적송이라, 고기는 두 거랑을 대가.

    [등운산에 이런 명산이 있으나, 명산은 찾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명산을 말하는 풍수 용어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맹 거 이전에 밀양 박씨에, 박씨가 사는데, 이래 장군대좌라고, 칠보산(七寶山)

    [등운산과 칠보산은 연결되어 있다. 창수면과 병곡면을 갈라 놓고 있는 태백산맥의 줄기이다.]

    장군대좌라고 미터가 있는데, 그 집이 미를 거다 씨고서, 미를 거다 씨고실라 그 미 바람으로 아가

    [(아이가)]

    나이

    [(나니)]

    , 나가주고설라 저 웃목에 마 동그랗게 올라앉아.

    이 무신 화근이라고. 아를 마 서답돌

    [(빨래들)]

    눌를가주 아들 죽이뿌맀다. 쥑이뿌이께네, 고 삼게 장시바우 디에, 거그 용마가 나가주구설라 고마 울

    고 띠다가

    [(뛰다가)]

    마 죽었다고. 그 말은 있지.

    장군출진형(將軍出陣形)이래. 이 동운산에 있는 거는 장군퇴진형(將軍退陣形)이라고.

    [장군출진형에 무덤을 썼더라면 장수가 나도 성공을 했을 것인데, 장군퇴진형에 무덤을 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아기 장수 난 곳

제보자: 권태방,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1동, 1980.06.05.채록               

마을조사를 하는데 할미성이 있다고 하여 거기 전설이 없느냐고 묻자 있다고 해서 얘길 하라니까 시작했다.


 이곳은 충정북도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에 있는 속칭 천마산(天摩山)이라고 합니다. 천마산 뒤에 가면 할미성(城)이라고 있는데 옛날에 에 어머니 한 분이 남매를 데리고 생활하는 도중 그 어머니는 그 아들과 딸이 에 너무나 천재였기 때문에 그 하나를 사람의 도리는 아니지만 에 너무도 옛날로 말하면 장수라고 말할까요? 그래서 그 하나를 없애는 방법을 구상했지요. 그래서 그 아들과 딸한테 에 한 가지 내기를 시켰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들이나 딸이나 간에 하나는 옛날로 한양 서울이라는 데를 갔다오게 하고 하나는 천마산 그 상상봉에다가 성을 쌓으라곤 했지요. 그래서 그 어머니는 기왕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한양에 갔다오라고

 사전에 아들한테 짜그서 그 아들을 서울로 보낸 후 또 딸한테는 그 성을 쌓으라고 했읍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성을 쌓는데 지켜있는 동안 그딸이 기술이 늠름하여 그 딸이 돌이 산 봉우리까지 계속 바람에 날려오는 것을 집어놓기가 바쁘게 성을 쌓는 도중에 그 어머니는 생각 끝에 아들이 한양에서 돌아오기 전에 성이 완성될까봐 에 그 어머니가 꾀병을 한거죠 즉,

 ?배가 아프다.?

 고 산에서부터 굴렀읍니다. 그후 이 효성이 지극한 딸이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니까,

 ?내기도 좋지만 어머니를 구해야겠다.?

 고 구하다 보니 그 남동생이 서울에 갔다가 돌아와서 그 딸은 성을 완공못한 채 어머님에 말씀대로 세상을 버렸다 합니다. 그래서 에 지금 천마산에 위치하고 있는 상상봉에 할미성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래서 그 할미성은 옛날에 장수가 쌓다가 완공을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 있지요.     

천마산(天摩山)의 할미성 전설

제보자:배두용,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1982.08.07. 채록


갓난아기의 형태를 한 아기장수도, 늠름한 누이의 모습을 한 할미성 성주도, 모두 비극적인 전설의 주인공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정말로 장군출진형에 무덤을 썼다면 아기장수는 희생을 면했고, 어머니 팥죽만 안먹었다면 누이는 축성역을 마쳤을까? 아닐것이다. 우리네 삶에 가정법 If, 만약에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고단한 삶을 이불처럼 끌어안는 선인들의 인생자세가 전설에는 흔적으로 증거로 새겨있는 것이다.

민담은 고향을 떠나고 전설은 고향에 머무른 탓에 민담의 고향, 신화의 고향이란 말은 없고, 전설따라 삼천리, 전설의 고향이란 말은 있다. 전설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한 장소 토포스에 대한 애정을 뜻하는 이푸-투안의 개념어 '토포필리아'가 가득한 구전서사 장르이다.

오늘도 우리는 집값과 집세 때문에 고향을 쉬이 벗어나지 못하거나, 드높은 집값으로 고향에서 타지로 쫓겨나듯 이사를 가기도 한다. 빚에 쫓겨 야반도주하듯이. 이런 고된 땅 위의 삶, 그럼에도 전설은 우리가 나고 자라고 먹고 싸던 그 곳. 고향을 잊지말라고 뜨거운 당부를 우리에게 전한다. 오늘 나는 고향을 그려본다. 소금기둥 되더라도, 뒤돌아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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