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가다의

by 나디아

"검도장 물총놀이! 일요일 오전 10시~12시"

매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준비해 주시는 관장님이 이번 주는 물총놀이를 준비해 주셨다.

"참가비 무료, 아이스크림은 관장님이 쏩니다!"

관장님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기획하신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작은 아이는 참가자로, 큰 아이는 교범으로 참석했다.

검도 학원 일정을 마치고, 제주 서쪽으로 이동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근처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시간 활용에 좋을 것 같아,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물총놀이 장소는 지역의 작은 청소년 문화의 집이다. 그곳에 문화의 집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한적한 동네다. 가까운 곳에 봄봄이 있지만 테이블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봄봄이면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기다리면 되지.'

별 걱정 없이 노트북을 챙겼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봄봄으로 갔다. 다행히 바 테이블이 있어서 들어가서 바닐라라테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원래는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시지만, 오늘은 빈 속이라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1시간가량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은 어디예요?"

"저희는 화장실 없는 매장이에요."

"아..."

'어차피 노트북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고,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기다려야겠다.'

짐을 챙겨 나와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걸었다. 문화의 집 잔디밭에 온몸이 홀딱 젖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어르신들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들어가자, 지도 선생님이 화장실을 찾는지 물으셨다. 일단 화장실을 다녀왔고, 로비에 앉으려는데, 여기는 청소년만 이용하는 시설이라 어른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동안 청소년 수련관이나 청소년 문화의 집을 아이들과 함께 많이 드나들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문화의 집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만 어른도 들어와서 대기할 수 있는 건가?

그렇지만 청소년 수련관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도 치고, 포켓볼도 했는데...

관장님이 문화의 집 측과 협의 없이 앞마당에서 물총 놀이를 진행하진 않을 것 같아서 한마디 덧붙였다.

"저기서 물총놀이 하는 아이들 엄만데, 한 시간만 있으면 끝나니까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되나요?"

"여기는 청소년이 이용하는 시설이에요. 어른은 이용할 수 없어요."

웃으면서 친절하게 안내했지만 단호한 선생님의 말에 발길을 돌려 문화의 집을 나왔다.

다시 봄봄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냥 차에 있어서 일해야겠다. 아직 마무리할 일이 남았기 때문에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차가 있다는 건, 그것도 내 차가 SUV라 대기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노트북이 전원이 꺼질 것 같아 불안했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차에서 뒷좌석 의자 한쪽을 눕혀 책상으로 만들고 노트북 작업을 시작했다.


창문을 4곳 모두 열었지만, 날이 더워 땀이 났다.

그럼에도 차 안에서 잠시 대기 중에도 일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뿌듯했다.

가끔은 일요일 하루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모든 걸 멈출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오가며 작업을 한다.

내가 스스로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이기도 하고, 10년 후에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당장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는 곳에 벽돌을 쌓는 기분이 불안하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런 잉여 시간에도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즐겁다.


불과 몇 년 전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노트북을 펴면 일터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차에서도 일하고 있는 나를 보니 그 꿈을 반쯤은 이룬 것 같다. 의도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꿈꾼 것이었지만, 일단 장소는 구애받지 않으니 이제 시간에 대한 자유만 얻으면 되겠다.


오늘도 디지털 노가다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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