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가 자유시간을 얻는 기회는 얼마나 있을까?
물론 가까이 부모님이 살아 ‘친정엄마 찬스’를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타지에서 거의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둘째가 초등 고학년이 된 지금에서야 낮 시간에 조금씩 내 시간이 생긴다. 그마저도 ‘오늘 저녁은 뭘 먹지?’라는 생각으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엄마’로서의 역할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런 내가 2박 3일의 휴가를 얻었다.
이 시간은 1년에 두 번 정도 주어지는 꿈같은 휴가다. 그런데 이 시간을 나에게 주는 건 남편도, 친정부모님도 아닌, 아이들이 다니는 검도장 관장님이다. 아이들이 검도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의 자유만을 위해 보낸 건 아니다. 아이들의 도전정신을 키우기 위해서임을 강조하고 싶다.
어쨌든 적어도 이틀은 저녁 메뉴 고민에서 자유롭고, 데드라인이 있는 자유가 아니라 잘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동안, 그동안 잘 만나지 못한 지인과 와인바를 갈까 고민했고, 나 혼자 늦은 시간까지 하는 동네책방에서 시간을 보낼까도 생각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이 무색하게 펜클럽 필사모임 줌 일정과 아이들 대회 일정이 겹쳤다. 더구나 정기모임뿐 아니라 소모임까지, 이번 주에 책 두 권의 줌모임 일정이 모두 겹쳐 버렸다.
줌 시간은 투표로 정하지만 보기 항목은 내가 만든다. 밤 시간을 넣지 말까 고민했지만,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알기에 밤 시간도 후보로 넣었다. 결국 두 모임 모두 저녁 9시로 결정되었다. 어느새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지인들보다 펜클럽 펜친들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은 『데미안』으로, 토요일 저녁은 『별의 시간』으로 줌에서 펜친들을 만나기로 했다.
『데미안』은 펜클럽 22번째 책으로 7월 한 달간 함께 읽은 책이다. 이 소설은 마치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주인공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나,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모임에서는 "당신에게 데미안 같은 존재가 있었는가?"에 대해 나누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은사님이, 누군가에게는 첫 아이가, 또 친구가 인생에서 데미안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반추하게 되었고, 본받고 싶은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문장을 두고, 우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알을 깼는지 돌아보았다. 내 경험을 말하는 것도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건, “펜클럽이 자신에게 그런 존재였다”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모임을 이끌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다른 분들에게도 이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걱정하던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다음 날에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으로 펜친들과 다시 만났다. 이 책은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읽고 작가가 궁금해져 선택한 책이었다. 읽다 덮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줌모임 전날에야 겨우 완독했다. 진행을 맡았기에 생각을 정리하며 블로그에 포스팅도 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며 제목인 ‘별의 시간’에 대해, 그리고 북동부 여자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포스팅을 하고 줌모임에 연결할 때만 해도 아니 이 책에 대한 총평을 나누는 시간까지도 이 책은 참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글이 잘 쓴 글이라면, 이 책은 분명 그 반대였다. 모임에 참석한 펜친들도 “어려웠다.”라고 고백했고, “모임이 아니었으면 완독 하지 못했을 책”이라는 데에 모두가 공감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그런 질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책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북동부 여성의 생애와 죽음을 이야기하며, 보편적인 인간 존재에 대해 확장하고 있었다. 생애에 대해 쓴 듯하지만, 사실은 죽음을 말하고자 한 글이었다는 걸 줌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작가의 역량을 의심하던 생각은 되려 내게 돌아왔다. 잘 쓰지 못한 글이 아니라, 잘 읽지 못한 독자의 미천함이었다.
독서모임은 참 신기하다.
혼자 읽으면 놓치고 지나갈 생각의 틈을, 함께 읽으며 비로소 보게 된다. 책 한 권을 그냥 읽는 것보다 필사하며 읽는 것이 좋고, 그보다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며 쓰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가장 좋다. 단지 책을 읽는 일이 아니라, 결국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책을 통해 나를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을 읽었어도 다른 해석을 듣는 순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이 열리고,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신기하게도, 함께 읽는 것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감동을 느낀 문장을 통해 나도 울컥하고, 생각이 공유된다. 단톡방에서 필사 인증을 주고받는 시간도 좋지만, 줌모임에서는 책 한 권을 완전히 읽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정한 완독, 완필.
처음엔 줌모임을 준비하는 일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준비 과정조차 즐겁다. 줌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생각하다 보면, 책을 읽고, 질문을 만들고, 모임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설렌다. 펜클럽 펜친들과 온라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그 시간이 이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이길...
우리가 함께 읽고, 함께 쓰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