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퍼펙트

아빠가 마지막으로 퍼펙트를 친 게 2008년이었다. 17년 만이다.

by 나디아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아빠가 퍼펙트 쳤대."


'볼링 얘기구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답장을 보내려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퍼펙트!? 12번 연속 스트라이크? 볼링에서 300점 만점!


퍼펙트는 운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10 프레임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특히 마지막 10번 프레임에서는 세 번을 연달아 스트라이크로 끝내야 한다. 9 프레임까지 완벽해도 10 프레임에서 대부분 무너진다. '이제 해냈다'는 안도감이, '이번엔 꼭 해야 한다'는 긴장이 팔을 굳게 만든다. 60대 후반의 몸으로 그 긴장을 이겨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빠의 집중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빠는 6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가는 중이다. 중학생이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는 동안, 아빠는 계속 볼링장에 갔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취미로 볼링을 친 것이다. 처음엔 엄마랑 같이 다니는 부부 동호회였는데 지금은 엄마 허리가 안 좋아서 혼자 간다.


일주일에 두세 번. 꼭 동호회 모임날이 아니어도 혼자 연습을 하러 가기도 한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멀리 사는 딸이 왔으면 오늘은 안 가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아빠는 내가 집에 간 날이랑 동호회 날이 겹치면 동호회를 선택하곤 했다. 취미로 하는 동호회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아는 아빠는 늘 일하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빠를 나는 본 적이 없으니 아빠는 주말에도 휴일에도, 명절에도 매일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인식에는 당연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매일 일하는 그 하루하루를 아빠는 어떻게 버텼을까?

아빠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볼링을 치는 시간이 아빠에게는 긴 휴식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아빠는 소매점에 물건 납품하는 도매유통업을 했는데, 일의 시작과 끝이 일정하지 않았고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끼니를 놓치기 일쑤어서 우리 가족은 제대로 저녁을 다 같이 먹어본 일이 거의 없다. IMF 때는 거래처들이 하나씩 문을 닫았는데 하루아침에 야반도주하는 식당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빚더미에 앉았다.

나는 너무 철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무거웠던 집안의 공기와 아빠 얼굴은 지금도 기억한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던 아빠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아빠는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년~3년 전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고 은퇴를 했다. 엄마의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이 아빠를 보좌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아빠도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일을 계속하다간 몸이 망가질 것이 뻔했고, 아빠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평생을 일만 하던 사람이 은퇴를 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는데, 아빠와 엄마는 그동안 원 없이 일해서 그런지 그런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은퇴하고 나서 아빠가 달라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아빠는 투자 공부를 한다고 했다. 공책에 뭔가를 빼곡하게 적어 넣는다. 벌써 몇 권째라며 공책을 보여줬고, 볼펜도 몇 개나 다 쓸 때까지 필기를 했다며 자랑을 한다. 그런 아빠의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고 한다.


이제 아빠는 아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 필요한 공부를 즐겁게 하고, 원하는 시간에 볼링을 치고, 당구를 친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를 인생의 끝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빠를 보니 은퇴 후 인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로 삶을 채워나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빠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프레임을 치고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게임을 응원한다. 아빠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내기를. 더 이상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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