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퍼 조언에서 멀어지기

by 나디아

놀랍게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인생에 조언을 해주는 것을 마치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인생도 바로 살지 못하면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울만한데, 남의 인생이라서 너무도 쉽게 그 선을 넘어 버린다.


내가 들은 조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2가지 있는데 이런 말들은 오히려 나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칭찬에 춤추기보다 비난에 꿈틀 하는 지렁이과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그래, 너 대단한데 그런 건 60대에 취미로 해야 하는 거 아니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만큼 네가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60대까지 산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는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을 거 같은데? 지금이니까 이일을 지금 하고 싶은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60대의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 텐데 말이다.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은 삶을 정해진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20대에는 이거, 30대에는 저거, 60대에는 이런 취미. 그렇게 마치 칸을 나누듯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삶은 그렇게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지금 아니면 영영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몇 살에 뭘 해야 한다는 건 누가 정한단 말인가?


여기서 말하는 '여유'라는 건 결국 돈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걸 미루라는 뜻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고 이제 막 중학교에 갔기 때문에 학원비가 얼마 안 들지만,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원비만으로도 그렇게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 버는 줄 알고?

맞다. 원래 블로그는 취미였고,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나조차 몰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무수입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수익이 났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씩 직장인 월급만큼은 벌고 있다. (물론 제주도 일반적인 직장인 월급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지금이 좋다.


아이들이 아프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물론 그 시간만큼 내 일은 새벽 시간대에 해야 하지만, 아이를 봐줄 사람도, 직장에 휴가를 낼 수도 없어서 해열제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울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땐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지금이 행복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마. 결국 너나 나나 나중에 요양원에 누워있는 건 똑같을 건데."


이 말은 첫 번째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내 귀를 의심했다. 마치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포장하려고 하는 듯하지만, 그런 말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모두 요양원에 누워있을 거라서 대충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그렇게 전전긍긍해 보였나 보다. 사실 난 매일 할 일이 있는 내가 좋다. 할 일이 쌓여서 일에 치이는 것 같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재미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을 때, '이게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걸로 돈을 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을 이루고 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노트북만 펴면 일터였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제주에 살기 때문에 그런 점이 더 간절했다.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직장 안에 갇혀 일하고 싶지 않았다.


'요양원에 누워있는 것'이라는 인생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내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순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노트북을 들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일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이다. 그걸 '결말이 똑같다'는 말 한마디로 뭉개버리는 건 너무 폭력적이다.


서로에게는 각자 인생이 있다. 내 삶이 옳다고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의 에너지만큼 열심히 살아간다.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직장인을 절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에게 늘 하는 말이지만 진심으로 그 친구가 졸업 후 계속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존경한다. 나는 힘들 때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으니까.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는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지라퍼들은 다른 사람에 마음에 상처를 줘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누군가 다른 길을 가는 걸 보면 그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한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 조언들을 거꾸로 읽기로 했다.

60대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하라.

양원에 누워서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60대에도 웃고 있는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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