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글쓰기를 강조하는 책이었는데, 저자는 매일 모든 SNS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그 성실함 자체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저자의 블로그를 찾아보게 되었다. 모든 SNS에 글쓰기를 강조하는 저자 앞에 'X까지도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X도 한번 깔았다가 '나하고는 안 맞는구나.' 생각하고 지웠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결심은 책을 읽고 느낀 존경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책의 저자에 대해 잊고 지내고 있다가 요즘 들어 스레드에서 종종 그 저자의 글을 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과 달리 스레드 글은 내적 친밀감을 높여주었다. 저자의 스레드 글들은 짧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었고,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통찰을 주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문장 안에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저자에 대한 표절 글을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통찰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었다. 표절했다는 내용과 함께 올라온 글들을 읽었다. 그 순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나는 배신감이었다.
그 저자의 오랜 팬이라거나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스레드에서 반복해서 그 글들을 읽으며, 그 존경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벗어나 어떤 믿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진짜로 글과 생각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었다. 표절이라는 사실은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도덕적 판단보다는, 내가 느낀 존경 자체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존경했던 마음이 아무 근거 없이 쌓여온 것이었다는 느낌이 더욱 속상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다.
배신감과 동시에 밀려온 그 연민은, 처음엔 나 자신에게도 낯설었다. '왜 연민인가.', '잘못한 사람에게 왜 연민이 드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까지 다 모르겠지만, 지금 누구보다 괴롭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마 SNS에 보이는 모습만큼 더 그런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점이 연민을 불러왔다.
물론, 연민이 든다고 해서 이 일이 정당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자에게는 그것이 억울한 일이고, 어떤 이유로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구나 타인의 영향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다. 창작은 타인의 것을 먼저 깊이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읽고, 듣고, 보고, 흡수하는 것. 그것이 창작의 영양분이 된다. 문제는 그 영양분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을 때이다. 자신 안에서 충분히 소화된 후에야 새로운 창작물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창작자는 없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창작자도 없다. 하지만 그 영향과 자신의 목소리 사이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사람과, 그 경계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표절한 사람도, 자신이 표절했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경계를 의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의식 자체가 무감각해져 있었을 수 있다. 소화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다.
완벽히 그대로 쓴 문장이 아니라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의미가 너무 닮아 있어 읽는 사람들이 표절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표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에 대해 완벽한 기준은 없고, 확인의 한계도 있는 상황에서, 타인의 글과 자신의 글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계를 지키는 것. 그것이 창작자의 마인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