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Bird Mar 05. 2021

햄버거

하와이 사는 이야기

올드 스테이디움 공원의 비둘기들


오랜만에 햄버거 생각이 나서 회사 앞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에 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잭 인 더 박스는 너무 추워서 잭 인 더 아이스 (ice) 박스인데 이곳은 견딜 만하다. 점보 잭 (Jumbo Jack)을 밸류 밀(value meal)로 시키고 10불을 줬는데 거스름 돈을 8불 몇 센트나 주는 거다. 바보같이 그냥 점보 잭 햄버거 하나 값만 받은 거다. 밸류 밀에는 프렌치 프라이, 드링크가 들어 있으니까 더 받아야 하는데… 

“이봐요, 나 점보 잭 콤보 (Combination) 시켰어요. 계산 잘못된 거 아닌가요?” 출납기에 이미 찍었다느니, 얼마를 더 받아야 한다느니 안에서 숙덕숙덕 말이 많다. 아이고, 그거 계산도 못하니? 가격표를 보니 점보 잭 콤보가 3불 27 센트여서 이민 낸 것 까지 합해서 4불을 놓고 기다리니 (하와이에서는 모든 물건에 소비세가 4% 붙는다) 한참 만에 60센트를 거슬러 준다. 차가운 에어컨이 싫어서 밖의 벤치에 앉았다, 
프렌치 프라이가 살찌게 한다느니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느니 암만 그래도 맛있기만 하다. 잭 인 더 박스는 주문한 후에 금방 튀겨내니까 고소하고 따뜻하다. 몇 개를 먹고 있는데 새가 휘리릭~ 날아오더니 맞은편 의자 위에 짠 앉는다. 이거 조심해야 한다. 주는 거는 좋은데, 주면 새들이 사방에서 소문 듣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너무 소란하다. 새가 포기하고 가기를 기다렸지만 좀체 갈 기미를 안 보인다. 그래 네가 이겼어. 좀 춥지만 에어컨이 있는 안으로 들어왔다. 옆에는 남루한 차림의 한 로컬 노인이 앉아서 햄버거를 시켜놓고 뭐가 좋은지 룰루랄라 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편지를 쓰고 있다. 저 할아버지 새 애인 생겼나? 저 나이에도 연애편지 쓰는 건 즐거운 모양이구나. 이렇게 마음대로 상상을 하면서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2003. 02.28)




하와이 와서 한동안은 햄버거를 많이 사 먹은 것 같다. 맥도널드, 버거킹, 잭 인 더 박스 등에서 주로 사 먹었다.  2000년 이전에는 음료와 프라이가 포함된 콤보가 아닌 햄버거를 하나 시키면 1불 정도에 불과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 다니면서 점심을 싸가지고 가는 것보다 햄버거 하나씩 사 먹는 것이 간단하고 값도 오히려 저렴했다. 회사 다니면서는 점심을 주로 식당에 가서 먹었지만 가끔 혼자서 먹을 기회가 있을 때는 햄버거를 사 먹었다. 햇살이 따스한 날 햄버거와 프랜치 프라이를 사들고 인근 공원으로 차를 운전해 가면서 갓 튀긴 프라이를 하나씩 먹는 맛이 아주 좋았다. 공원에서는 비치체어를 펴고 넓은 잔디와 바다, 나무를 보면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햄버거를 잘 안 먹게 되었다. 가끔 테디스 비거 버거를 먹기도 하고 수제버거집인 쿠아아이나에서 아보카도 햄버거를 먹는 일은 있지만 맥도널드나 버거킹, 잭 인 더 박스는 잘 안 가게 됐다. 수제버거를 먹기 전에는 몰랐는데 알고 나서는 더 이상 안 가게 된 것이다. 워드에 있던 쿠아아이나가 없어지고 난 후에는 가끔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땐 다이아몬드 헤드 그릴로 가서 햄버거를 픽업해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나마도 잘 안 가게 된다. 이제는 외식을 하게 되면 주로 한식당이나 일식당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먹고났을 때의 만족도는 역시 한식당에서 고기 굽고 된장찌개와 함께 밥을 먹었을 때가 제일인 듯하다.    

전에 다니던 회사 앞을 가끔 지나가는 일이 있는데 그때 자주 갔던 잭 인 더 박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아직 하와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30대 초반의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03.04.2021        

매거진의 이전글 하와이 병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