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어제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하와이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은 이미 2~3달 전부터 시작됐다. 의료계 종사자와 70세 이상부터 맞기 시작했다. 이후 백신 보급이 늘면서 65세, 60세, 50세 이상으로 접종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다가 지난 월요일 (4월 19일)부터 16세 이상의 모든 주민이 접종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4월 초부터 해당이 됐지만 당장 맞지 않고 조금 기다렸다. 원래 주사 맞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미 한 번 이상 접종을 마쳤다는 뉴스에 더 이상 미루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집 식구들 가운데에는 가장 먼저 접종을 받은 것이다. 세라는 내일로 예약했다고 하고 소피는 곧 예약할 예정이다.
내가 접종을 미루었던 이유는 주사 맞기를 싫어하는 점도 있지만 그 이외에도 마음속에서 버티고 있던 몇 가지 다른 이유가 있긴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이미 일 년이 지났는데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매일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가끔 사람이 많은 음식점에 가기도 하고, 실내에서는 당연히 마스크를 쓰지만, 실외에서는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경우에만 마스크를 썼어도 괜찮았다. 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단면역에 이르게 되면 나중에는 백신을 굳이 맞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은근히 들었다. 게다가 백신을 맞는 것은 균을 내 몸속에 일부러 집어넣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 걸린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몰라 결국 맞기로 결정했다. 물론 백신 접종이 의무는 아니라 맞고 안 맞고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면 백신 접종이 있어야 편하기 때문에 지금쯤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와이는 5월 11일부터 백신 여권을 시행한다고 한다.
접종을 하기 전 검색을 해보니 일단 코로나 균을 몸에 넣는 것이 아니라고 해 일단 큰 안심이 됐다. 맞기로 결정하고 주정부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여러 군데가 있었다. 하와이에서 가장 큰 병원인 퀸스에서는 닐블레이스델센터를 빌려서 대규모로 백신 접종을 하고 있었다. 하와이 퍼시픽 헬스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하고 있으며, 롱스나, 타임스 같은 약국, 심지어는 코스코나 샘스, 월마트 같은 데서도 접종을 하고 있었다. 접종을 하려면 어디든 미리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이왕 맞기로 한 거 빨리 맞으려고 22일로 예약했다가 21일 11시 반쯤에 보니 당일 예약도 많이 있어서 당일 12시 30분 접종으로 예약하고 닐 블레이스델로 바로 갔다. 어떤 백신을 맞을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이 가능한데 닐 블레이스델에서는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모더나를, 다른 요일에는 화이저 백신을 놓는다. 모더나와 화이저 백신을 비교해보긴 했는데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수요일에 갔으니 화이저 백신이다.
닐블레이스델센터는 원래 콘서트홀인데 퀸스 병원이 이곳을 접종장소로 택한 이유는 넓은 주차장 때문인 것 같다. 평소에는 8불이던 주차가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접종장소에 도착하니 줄이 있길래 섰더니 온도 체크를 한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접수 차례가 됐다. 신분증, 의료보험증과 알러지 등이 없다는 사전 질문서를 보여주었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주소, 전화번호, 비상시 연락할 사람 이름과, 전화번호 등,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직장과 직위, 인종, 시민권 여부까지 물어보길래 왜 이렇게 자세히 물어보느냐로 했더니 하와이 주민들에게 배정된 백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그래도 인종이나 시민권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텐데 그런 질문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주소지나 직장은 주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 쳐도 인종이나 시민권 여부에 따라 접종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접수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다시 로비 쪽으로 연결된다. 역시 콘서트홀 안에서 접종하는 것이 아니라 로비 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호출된 번호의 책상에 가니 2인 1조로 대기 중이었다. 30대 여자가 컴퓨터로 기록 대조를 하는 동안 50대 정도 된 아주머니가 알러지 등 여부를 다시 묻는다. 오른팔이냐 왼팔이냐를 선택하라고 해서 나는 왼팔을 선택했고, 하나 둘 셋 하더니 금세 다 됐다고 한다. 30대 여자는 접종카드를 주면서 3주 후 두 번째 접종 예약을 해주었다. 카드를 보니 이름 스펠링이 틀렸길래 지적하니 컴퓨터로 고쳐주는 듯했다. 접종 후에는 로비 바깥쪽에 마련된 의자에 15분간 앉아 있다가 아상 징후가 없으면 가도 좋다고 했다. 물 한 병을 받아 들고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12시 32분, 한 낮인데도 그늘이라 시원했다. 시원한 야외 그늘에 아무것도 안 하고 15분간 가만히 앉아 있자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렇게 쉬운 거면 진작 접종할걸 그랬다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60대 노파 한분이 한 사람 한 사람에 다가가 1차 접종이냐, 2차 접종이냐 묻더니 2차 접종 시 필요한 안내서를 주고 갔다.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팔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조금 있으니 맞은 자리가 조금 뻐근해졌다. 소파에 잠시 누웠다가 책을 읽다가 소피가 만든 떡국으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알라모아나 공원 산책을 나갔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책을 읽다가 10시 30분쯤에 침대에 들었는데 들자마자 갑자기 추워졌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 백신의 영향인지 약 2분 정도 오한이 들다가 그쳤다. 백신 맞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번째 접종한 다음날 하루 이틀 정도 아프다고 하던데 나도 2차 접종 이후에는 아플 각오를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04.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