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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n 29. 2021

어느 오후 커피숍에서

하와이 사는 이야기

마노아 커피빈 야외 테이블


장소는 하와이 호놀룰루 마노아 커피빈. 금요일 오후 4시. 소파 하나에 여자 한 명이 앉았다.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온 듯 노트북을 대충 안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전원을 찾아서 꽂고,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주문한다. 50대 후반의 여자다. 화면이 가려있어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별로 중요한 것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전화 벨소리가 나니 그 전화를 받아 한참 수다를 떤다. 얼핏 들리는 소리 "I'm not complaing, I'm explaining" 그 옆에는 일행인 노인 둘이 앉아있다.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길게 묶은 여자는 60대 초반 정도 나이. 함께 있는 남자는 80대 노인이다. 여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고 남자 노인이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들고 왔다. 자리에 앉으며 커피를 테이블에 놓다가 반 이상 쏟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까 그 50대 여자가 커피를 너무 뜨겁게 준다고 한마디 한다. 앞쪽에는 두 명이 앉아 있다. 여자는 타로카드점을 보는 뚱뚱한 사람이다. 방금 그에게서 점을 보던 50대 남자는 볼일을 끝내고 나가고 아까 들어와서 곁눈질하던 30대 여자가 몇 가지 묻더니 자리에 덜렁 앉는다. 얼핏 들으니 15분에 25달러를 받는다. 점보는 여자는 타로점이 어느 정도 맞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점 봐주는 여자보다 저렇게 갑자기 커피 한 잔 사듯 점보는 여자가 더 우습다. 옆에서 사람들이 다 듣고 있는데 자신의 운명을 천기누설하고 있다. 그것을 별로 믿지 않기 때문 일 거다. 다른 테이블에는 조그만 테이블에 남자 한 명씩 따로 앉아있다. 한 명은 50대 초반, 또 한 명은 50대 후반 정도. 둘 다 신문을 보고 있다. 조간신문이다. 이 시간에 이렇게 커피빈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2008. 11.15)




마노아의 그 커피빈에 아직도 가끔 간다. 지난주에는 한 지인과 함께 갔다. 하와이에서 살다가 텍사스로 이주한 지 오래된 지인이다. 서핑을 좋아해서 몇 년마다 한 번씩 하와이에 놀러 온다고 한다. 마노아 커피빈은 안에도 자리가 여러 개 있고, 밖에도 여러 개 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안과 밖의 테이블을 많이 치운 상태다. 우리는 마실 것을 사들고 밖의 자리에 앉았다. 세월이 지나도 마노아 커피빈과 마노아 스타벅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커피빈도 스타벅스도 실내 테이블을 서너 개만 남기고 다 치운 상태라 좀 아쉽다. 언제 다시 예전의 그 커피숍 풍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커피숍은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비즈니스를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는 장소다. 오래전에는 이 커피숍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때 어떤 소설책을 읽고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어려 보이는 한 백인 남자가 책의 겉표지를 봤는지 자기도 그 책을 읽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직업이 하와이대학 교수인 것을 알았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하이킹도 같이 가기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지금은 소식이 끊겨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따스한 햇살이 그리울 때면 일부러 커피빈을 찾기도 한다. 집에서 읽던 책을 들고나가서 조금 읽기도 하고, 멀리 나무가 무성한 산을 바라보며 눈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오래전에는 건너편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나 휘시앤칩, 또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사 먹던 시절도 있었다. 마노아 맥도널드는 계산대와는 별개로 옆쪽에 넓은 공간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편하다.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호놀룰루 커피 익스피리언스 센터 (Honolulu Coffee Experience Center)가 있는데 이곳은 몇 번 가본 후 잘 안 가게 된다. 중앙에 큰 커피 볶는 기계도 있어서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나고, 가끔 커핑도 하고, 야외에도 테이블이 있는데 잘 안 간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집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커피숍은 10분~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갈 정도의 거리, 실내와 실외 공간이 넓은 곳, 주변이 번잡스럽지 않은 곳이 가까운 곳보다 더 좋다. 그러고 보니 마노아가 가장 만만한 것 같다.       


06.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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