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5년 여행
10월 8일 토요일, 뉴욕 여행 7일 차
어제 쓴 글에서 뉴왁 공항 인근에 힐튼이란 이름의 호텔이 적어도 3개 이상이라고 했다. 혹시 뉴저지에 가는 분들을 위해 도움말을 주고 싶다. 나처럼 헷갈리지 않고 예약한 호텔에 제대로 들어가기 위해서. 뉴저지 뉴왁 공항에 내리면 대부분의 호텔들이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항 에어 트레인에서 호텔 셔틀을 타는 곳은 P4이다. 그리로 나가면 각 호텔에서 셔틀이 대기하고 있다. 대체로 15분 정도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한다. 셔틀버스를 타려고 나오니 다른 여러 호텔의 셔틀과 함께 힐튼 가든 호텔 셔틀이 있었다. 같은 힐튼이긴 하지만 힐튼 가든 호텔은 로고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그것을 타지 않았다. 그런데 좀 있으니 힐튼 로고 H가 달려있는 셔틀이 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당연히 그것이겠거니 하고 재빨리 탔다. 하지만 나중에 이 힐튼 호텔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힐튼 에어포트 호텔은 당연히 에어포트 근방에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공항에서 어라..? 한참을 간다. 한 10분~15분 정도 가더니 호텔에 다 왔다고 한다. 우리는 기사가 짐을 내리기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다른 여행객들의 짐은 다 나왔는데, 우리 것은 가방 두 개 중에 하나가 안 나오고 기사가 문을 닫더니 그냥 가려고 한다. 잠깐만! 소피가 재빨리 우리 것이 없다고 막 떠나려는 기사를 붙잡았다. 그제야 다시 문을 연 기사 왈. "아이고메 검은색이라 잘 안 보였나 보네..." 하면서 재빨리 우리 가방을 내놓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흑인 운전기사가 잘 안보였다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빨리 가방을 찾아 내놓는다. 그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하마터면 가방을 잊어먹을 뻔했다.
체크인하러 들어간 호텔에서는 직원의 체크인 속도가 무진장 늦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흑인 남자 직원과 두 명의 흑인 여자 고객이 정말 징그럽게 시간을 오래 끈다. 뒤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아예 함께 관광 계획표까지 세우고 있다. 끈기와 오기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체크인을 하려 하니 예약이 안되어 있단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옆에 있던 또 다른 흑인 여자 직원이 아마 다른 힐튼 호텔일지도 모른다며, 호텔 예약번호를 달라고 한다. 그 호텔로 전화를 해보더니 그쪽이 맞단다. 그럼 우리가 지금 밤 12시가 다된 이 시간에 다시 공항에 갔다가 예약한 다른 힐튼호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역시 답은 그렇다이다.
비가 죽죽 내리는 호텔 로비에서 공항으로 다시 나가는 셔틀을 타기 위해 기다렸다. 셔틀 하나가 시동을 켜는 것을 보니 나갈 모양이다. 그걸 잡아타고 공항까지 가는데, 마침 왜 공항으로 가냐고 물어준다. 그래 이건 내가 기다렸던 질문이다. 호텔 이름이 똑같아서 잘못 왔고,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며 혹시 공항 대신 바로 근처에 있는 힐튼호텔로 데려다 줄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다. 기사 역시 지금 공항에 가면 내가 가려는 호텔에서 셔틀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며 심하면 아침 6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며 과장을 섞어가며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호텔에 내려주겠다고 한다. 그래 고맙다. 예약된 호텔에 체크인 한 시각이 새벽 1시, 피곤한 하루였다. 운전기사들은 손님의 호텔을 확인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처럼 다른 힐튼을 찾아가는 여행객이 한 둘이 아니라고.
어젯밤 피곤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밖에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 집에서부터 준비해 갔지만 전 호텔에서 커피포트가 없어서 먹지 못했던 컵라면과 어제저녁에 식당에서 싸온 것으로 아침을 때웠다. 세라가 기대했던 수영장이 마침 있어서 오전에 수영을 1시간 정도 했다. 세라는 수영장만 있으면 물 만난 고기처럼 수영을 하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월풀은 이제야 물을 받는 중이라 아침에는 할 수 없었다. 수영을 마치고, 비 오는데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현대 박물관(MoMa) 표가 아직도 시티패스에 말짱하게 남아있는 것이 찜찜해서 다시 맨해튼으로 나가기로 했다. 우산은 없지만 호텔에서 15분마다 공항까지 셔틀이 있어서 비 맞고 걷지는 않아도 된다.
뉴왁공항에서 맨해튼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시간과 비용을 따져가며 잘 선택해야 한다. 우선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택시를 타고 가는 거다. 비용은 70~ 80불 정도로 제일 비싸다. 다음은 NJ 트랜싯이나 앰트랙을 타고 가는 것, 비용은 3명일 경우 60불 정도다. 처음 올 때 이용했던 직행버스를 타면 어린이 무료 요금 적용을 받으면 26불이다. 이것밖에 없을까. 아니다, 또 있다. 호텔에서 가져온 관광지 안내 팸플릿에는 뉴왁 공항에서 NJ가든 샤핑센터까지 무료 셔틀을 운영한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도 샤핑센터에 들러볼 생각이었으니, 호텔에서 공항까지 호텔 셔틀로, 공항에서 샤핑센터까지 샤핑센터 셔틀로 가면 거기까지는 무료다. 거기서 구경을 하다가 샤핑센터에서 맨해튼 까지 가는 직행버스를 타면 7불 50씩 어른 둘에 15불, 어린이 무료이다.
샤핑센터는 생각만큼 규모가 컸지만, 아웃렛이라기에는 물건 값이 싸지 않았다. 물건을 사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까 나중에 호텔로 올 때 샤핑하기로 하고 버스시간에 맞춰서 차를 탔다. 물론 타는 곳을 몰라서 좀 헤매었다. 여행 다니면서 헤매는 것은 기본이지 뭐.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맨해튼 포트 오소리티에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MoMa 앞에 내렸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박물관 안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렇게 관람객이 많은 박물관은 처음이다. 1층부터 차례로 5층까지 대충 본 후 한 층 더 올라가려니 벌써 폐관 시간이 다됐다. 그래도 볼 것이 상당히 많았다. 세계적인 디자인, 비디오를 이용한 예술작품들, 도미노 등이 인상적이다. 세라는 배 고프고 다리 아프다고 투덜댔지만, 어쩌랴, 지금 아니면 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데. 참아라 참아. 10살이 되는 세라는 아직 이런 현대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친근하게 다가서기 어렵기도 할 것이다.
5시 반에 박물관을 나와서 타임스퀘어 쪽으로 갔다. 이제 내일이면 뉴욕을 떠나니 마지막으로 야경 분위기에 쓸려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세라를 달래기 위해 먼저 일식으로 대충 먹고, 콜드스톤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타임스퀘어 스타벅스에는 이제 곧 시작할 뮤지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려고 하나둘 극장을 찾아갈 무렵, 우리는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포트 오소리티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면 9시가 좀 넘을 것 같았다. 나올 때 호텔 규정에 보니 주말에는 호텔 수영장 이용이 9시까지라고 해서 세라는 약간 풀이 죽었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해 수영장에 들러보니 여전히 수영장은 열려있었고, 몇 명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빛이 나면서 후다닥 서두는 세라와 함께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즐겼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우리는 내일 새벽이면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새벽 4시 10분에 일어나 샤워하고 호텔을 나섰다. 새벽부터 뉴왁 공항은 깨어 있었다. 우리 같은 또는 우리와는 다른 여행객들이 제각기 어디론가 떠날 항공기를 타려고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뉴욕에는 여러 번 갔다. 뉴욕을 목적으로 간 적도 있지만 경유지 삼아 1~2박 정도씩 방문한 적이 많다. 보스턴에 갈 때도 그랬고, 이태리에 갈 때도 그랬다. 뉴욕은 항공운항의 허브이니 그럴 만도 한다. 내가 '뉴욕'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타임스퀘어이고 거기서 본 '맘마미아' (Mamma Mia)다. 아바(Abba)를 좋아했었고, 'winner takes it all' 'Chiquitita' 'I have a dream' 'Dancing queen' 등 주옥같은 곡들이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뉴욕에 처음에 가서 맛본 샐러드도 참 맛있었다. 샐러드 라면 그냥 레터스와 드레싱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뉴욕에서 처음 맛본 샐러드는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고 맛있었다.
반면 뉴욕을 생각하면 서울 같은 빡빡함도 빼놓을 수 없다.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이민가방만큼이나 큰 가방을 꽉꽉 채워 다니는 흑인이나 남미계 옷장사들의 고단한 얼굴도 떠오른다. 센트럴 팍에서 핫도그 노점상을 하는 중동계 이민자들의 삶에 지친 모습도 잊지 못한다. 화려함과 누추함이 극대비로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뉴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