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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 6

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5년 여행

by Blue Bird

10월 7일 금요일, 뉴욕 여행 6일째

뉴욕 여행도 이제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볼 건 많고 시간은 없고, 그것이 항상 짧은 여행의 단점이다. 하긴 일주일 만에 뉴욕의 모든 것을 다 본다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여행자의 관점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내가 뉴욕에 1년을 살았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맨해튼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다를 것이고, 센트럴 팍 어느 벤치에 앉아있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또 2년, 3년, 4년... 이곳에 살수록 뉴욕에 대한 나의 관점은 시시각각 변할 것이다. 어차피 짧은 여행 중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으니까, 괜히 서두르지 말고 순간순간 내가 보는 것들을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 지혜로운 여행의 한 방법이 되리라. 주마간산 격으로 유명 여행지를 다녀오는 단체여행을 내가 싫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은 퀸스에 있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뉴저지 뉴왁공항 인근의 힐튼호텔에 체크인하는 날이다. 뉴왁 에어포트 힐튼에서 2박을 하기로 한 이유는 떠나는 일요일 시간이 오전 6시 45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맞춰서 2시간 전에 공항에 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아예 공항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일정을 세웠다. 한 호텔에서 내리 6박을 하는 것도 지겨울 것 같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퀸스의 호텔에서의 체크 아웃 시간이 정오까지라 오늘은 서두르지 않았다. 짐을 대충 꾸려놓고, 체크아웃을 하려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짐을 들고 다니면 구경 다니기가 어려워서 짐을 일단 호텔에 맡기기로 했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오늘은 맨해튼을 벗어나 퀸스 근방이나 롱 아일랜드, 또는 브루클린 쪽으로 다녀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소피의 제안대로 오늘은 세라가 좀 더 재미있어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브롱스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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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스로 가기 위해 퀸스에서 맨해튼으로 지하철로 건너자마자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짐 싸느라 아침을 못 먹고 나왔다. 그래서 지하철 갈아타는 곳, 랙싱턴에서 내려 카페 메트로에서 아침을 먹고, 건너편에 보니 블루밍데일 백화점이 있어 잠깐 구경하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브롱스 동물원은 규모가 꽤 크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도 몇 가지 특별 전시장 입장을 포함해 어른 21불, 어린이 18불로 비쌌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슬렁 거리는 호랑이, 한가로워 보이지만 그 마음까지는 알 수 없는 사슴, 나무에 그림처럼 붙어있는 파이어 팍스 (Fox) ,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나비가 내 어깨에 앉았은 걸 본 세라는 "You are lucky!" 라며 부러워한다. 사실 난 맨해튼, 월 스트릿의 고층 건물들, 고색창연한 성당과 도서관, 사람들의 사는 모습, 그런 것이 더 눈에 들어오는데 세라는 브롱스 동물원을 제일 좋아한다. 세라의 나이와 내 나이, 세라의 관심사와 내 관심사, 그런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 타고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 등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와 남은 구분되고, 거기서부터 각각 다른 운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브롱스 동물원이 문 닫을 때까지 구경하고 5시쯤에 동물원을 빠져나왔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아 동물을 구경하는 모노레일에 우리밖에 관람객이 없었다. 나는 그 한적함을 즐겼지만, 소피는 안내원이 그 수십여 개의 빈 좌석에 우리 세 식구만 달랑 태우고 설명을 하니 좀 이상하다고 한다.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아 뉴왁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호텔을 나올 때 알아둔 셔틀 시간까지 못 갈 것 같다. 계획은 6시에 호텔 셔틀로 라과르디아 공항까지 간 후에 거기서 버스로 뉴왁으로 가려고 했었다.


호텔에 도착한 건 6시 20분, 셔틀은 벌써 떠났고 다음 셔틀이 8시에 있어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있었는데 저녁을 먹다 보니 마지막 셔틀 시간이 촉박해졌다. 서둘러 먹고 셔틀을 타니, 라과르디아 공항까지 가는 것은 우리뿐, 그래서 운전사에게 라과르디아 공항 가느니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내려달라고 해서 지하철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로 맨해튼까지 간 후 거기서 버스를 타려는 생각이다.


맨해튼 버스정류장에서 뉴왁 공항 가는 버스를 찾기 위해 무거운 가방 끌고 고생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 편의 소설이 될 듯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고생했다'는 한마디로 넘기는 것이 좋겠다. 고생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선 가방이 무거웠고, 사람들이 불친절했으며, 버스 터미널이 두 개였고, 모두 3~4층으로 무척 복잡했다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어쨌든 뉴왁 공항 행 버스를 찾아서 탔다. 그리고 뉴왁공항에서 힐튼 호텔 셔틀을 탔는데, 여기서 또 힐튼 호텔이 적어도 3개 이상이라는 것을 몰라 또 한 번 헤맸다. 밤 12시 다운타운에 있는 힐튼호텔로 잘못 갔다가 다시 공항 인근의 힐튼으로 옮겼고, 결국 호텔 체크인은 밤 12시가 넘어서 했다. 뉴왁엔 심상치 않은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첫 뉴욕 여행 시 우리는 911 사태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가고, 월스트릿을 둘러보고, 도서관에 가고 그랬다.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에도 가고, 센트럴 팍에도 갔으며, 자연사 박물관에도 갔다. 그런데 세라는 우리가 갔던 어느 곳보다 뉴욕의 브롱스 동물원을 더 좋아했다. 이 여행을 하고 나서야 아~ 그렇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이에 따라서 관심사가 다르다는 것. 아이이기 때문에 스케줄을 짜기가 어렵고, 부모가 가자는 곳에 이끌려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해 스케줄을 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라가 성인이 된 이후인 최근의 이태리나 영국-스페인 등의 여행 시 여행은 같이 가더라도 각각의 관심사를 찾아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자연스러운 여행이라 생각이 든다. 아까운 여행시간 동안 내가 가기 싫은 곳을 굳이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친구라도 가족 간이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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