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스턴-버몬트-뉴욕 여행 1 (2013)

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by Blue Bird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한창 쓸 때는 안 쓰면 뭔가 빠진 것 같아 이상했는데 며칠 안 쓰니 또 안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다가 브런치에 들어가는 패스워드까지 잊어먹을 정도가 됐다. 왜 꾸준히 안 썼는지 핑계를 대려면 아주 많다. 하지만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우연히 브런치가 생각나서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쓰기 시작한다. 전처럼 매일 쓰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자주 써야겠다.

보스턴-버몬트-뉴욕 여행은 2013년에 다녀온 것이므로 벌써 7년이 넘었다. 그런데 7년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진다. 이 여행은 평생 한 번 있는 여행이다. 하나뿐인 아이를 처음 대학에 데려다주는 여행이니 그렇다. 그 여행기를 시작한다.




글을 쓰려면 참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요즘 써야지, 써야지 머릿속으로 줄곧 생각은 하면서도 쓰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한다면 전보다 쓸 시간이 오히려 많아졌다.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많아졌다해서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한데 (음 그 정신적인 여유가 글 쓰는데 되려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요즘엔 그런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든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고,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그러다가 최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기를 좀 써야겠다고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었는데 미루고 또 미루니 뭔가 찜찜해서 일단 시작부터 해보려고 한다. 좀 더 있으면 여행 당시의 생생했던 기억들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몰아세웠다. 아마 이미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난지도 모르지만...


이번 여행은 세라 덕분에 가능했다. 세라가 보스턴 칼라지로 진학하게 됨으로 소피와 함께 세라를 대학에 데려다주고, 기왕 간 김에 며칠 더 여행을 하고 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세라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일정에 맞춰 호놀룰루에서는 8월 23일에 떠나기로 했다.

대강의 일정을 이렇게 잡았다.


24일(토) 보스턴 도착-공항 랜트카-기숙사 용품 쇼핑-B&B도착 (소피와 나)-보스턴칼리지 기숙사 도착 (세라)

25일(일)- 27일(수) 오리엔테이션

28일(목)- 31일(토)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가능하면 몬트리올, 캐나다까지

9월 1일(일) 뉴욕시

9월 2일 (월) 하와이로 출발


정말 간단하게 일정을 잡았다. 보스턴 칼리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세라는 학교에 남아 밴드 캠프로, 소피와 나는 무조건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뉴욕으로 내려와 하와이로 돌아온다는 일정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28일부터의 호텔은 예약조차 안 했다. 그날그날 예약하면서 다녀야지 하는 생각. 오직 셀폰(cell), 아이패드(iPad), 와이파이(WiFi)만 믿으면 해결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떠났다.


항공권은 세 달 전에 미리 예약했다. 세라는 편도로 끊고 소피와 나는 왕복으로 끊으려다 보니 항공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편도로 끊었다. 올 때는 뉴욕에 하루 들렀다 오려고 뉴욕-호놀룰루로 끊었다. 보스턴에서 뉴욕까지는 항공노선이 많을 뿐 아니라 여의치 않을 경우, 버스, 앰트랙, 기타 다른 교통수단도 있으니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구입한 알래스카항공 호놀룰루-보스턴 노선은 시애틀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갈아타는 시간이 있었다. 어차피 보스턴까지 직행노선은 없으니 중간쯤인 시애틀에서 쉬었다가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떠나는 날까지 세라는 기숙사에 가지고 갈 짐 챙기기에 바빴다. 세라의 방 주인이 세라인지 세라가 소유한 물건들인지 잘 모를 정도로 세라의 방은 옷과 책, 기타 자질구레한 소유품들이 구석구석에서 나왔다. 버리고 또 버려도 끊임없이 나왔다. 그중에서 가지고 갈 것만 챙겨 큰 가방 두 개만 가지고 가려다가 도저히 불가능함을 깨닫고 결국 하나 더 늘렸다. 거기다가 소피와 내 가방 작은 것으로 2개, 기타 손가방 하나씩... 도대체 가방이 몇 개야, 이렇게 많이 싸들고 동부로 떠나려니 가방만 봐도 어깨가 무겁고, 허리가 뻐근해온다. 세라가 4년간 한 살림 나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은 조금 위안이 됐다. 보스턴에 가서 또 쇼핑을 잔뜩 해야 하긴 하지만... 받아둔 시간은 빨리 오는 법. 어느새 떠나는 날이 쿵쾅쿵쾅 다가오고 있었다.


2434844E5233AB5337 호놀룰루발 시애틀행 알래스카 항공기 내부. 깨끗하다. 영화도 사야 하고 식사도 사야 하지만. 맥주 하나에 5불이지만. 짐 하나 부치는데 20불이지만...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는 18살 여자의 (또는 남자의) 마음은 어떻까? 머릿속에는 어떤 것을 그릴까? 부모와 떨어져 혼자 낯선 곳으로 간다는 두려움이 강할까? 아니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이제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할까? 다른 여러 가지 생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을 것 같다. 나 같으면 어른이 되었다는 자부심 쪽이 더 강할 듯하다. 그래서 세라가 나를 닮았다면 두려움보다는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세라를 비교적 자유롭게 키운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엄마를 닮았다면 두려움이 더 강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분은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하와이에서만 계속 살다가 미국 동부, 그것도 보스턴이라는, 자신이 선택한 곳으로 이제 막 떠나는 것이니까.



keyword
이전 07화뉴욕 여행 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