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4년 여행
아침 7시 30분쯤 일어나 가장 먼저 간 곳은 호텔 수영장이다. 세라는 수영장을 보면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호텔에 수영장이 있는데 안 간다는 것은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비교하면 적절한 비교일까?
수영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후 어제 갔던 피어 39로 다시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서 블루&골드 유람선을 타려고. 블루&골드 유람선은 앞서 말했던 시티패스를 이용해 탈 수 있다. 금문교 밑도 지나고 오랫동안 감옥으로 사용했던 알카트라즈 (Alcatraz Island) 도 지나는 1시간 정도 걸리는 크루즈다.
알 카포네도 수용한 적이 있는 알카트라즈에 내려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탄 배는 이곳에 내리지는 않는다. 바다에서 보는 금문교도 멋지다. 굳이 무엇이 멋진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꼬집을 만한 건 없다. 하지만 산, 물, 안개 등 주변 풍경과 함께 붉은색 (아니, 진한 오렌지색? 자몽 색? 색깔 표현이 어렵다) 강철 다리가 인상적이다.
크루즈가 끝나고 피어 39로 다시 돌아와서는 클램 차우더와 아이스크림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웠다. 익스플로러토리엄(Exploratorium) -과학, 예술, 인지 박물관 -으로 가려면 30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피어 39는 바다 쪽이니 바다 반대쪽으로 걷다 보면 정류장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나중에 가보려 했던 롬바드 스트릿(Lombard Street)이다. 미국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거리로 이름나 있고 영화에도 가끔 등장하는 곳이다. 밑에서 위로 꼬부랑꼬부랑 걸어올랐더니 다리가 당긴다. 소피와 세라도 오기로 걸어 올라간다. 다 올라가서 보니 샌프란시스코 언덕의 하얀 집들 경치가 죽인다. 힘들게 올라가서인지 더욱 멋있다. 반대편 언덕에 코잇 타워도 가보기로 했는데 소피와 세라는 설레 설레다. 여기도 죽을 둥 살 둥 올라왔는데 저기를 어떻게 또 올라가느냐고, 절대 못 올라간다고.
롬바르드 스트릿에서 마침 지나던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 쪽으로 가다가 차이나타운에서 내렸다. 차이나타운 구경도 하고, 물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30번 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아참, 익스플로러토리엄 가는 중이었지.
***
내가 미국에 온 이후 처음 여행한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였다. 느낌이 아주 좋았던 도시였다. 그래서 지나간 여행이지만 기억을 되살려 여행기를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남에게 읽을거리를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기록을 남겨둔다는 성격도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남겨두지 않아도 인상 깊었던 일은 가슴속에,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자세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면서 어떤 목적지를 일부러 찾아서 간 곳 하고, 우연히 발견해낸 곳 하고는 감동의 차이가 많이 다르다. 나는 어느 쪽 인가 하면 우연히 가보게 된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부러 찾아간 곳은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오히려 실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마음속에서 놀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 놀라는 것이 더욱 큰 놀람의 원천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