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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19.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6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루이스 호수

여행을 하다 보면 매일 가방을 싸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여행지가 한 곳이어서 한 호텔에 쭉 머물다 가면 그렇지 않지만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는 여행은 거의 매일 가방을 풀었다 쌌다를 반복해야 한다. 하루 머물 호텔이라 가방을 살짝만 풀어도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일 입을 옷 꺼내야지, 속옷, 양말, 잠옷, 슬리퍼 꺼내야지, 치약, 칫솔, 면도기... 하루 자는데도 모두 필요하다. 소피는 화장품까지 꺼내야 한다. 그게 우리 짐의 거의 대부분이니 결국 모두 꺼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이틀 머물기로 예약했다. 루이스 호수를 비롯해 두세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뿐하게 나갈 수 있다. 인생도 짐이 없다면 가뿐할 텐데...


이 호텔의 아침은 다른 호텔의 컨티낸탈 블랙퍼스트와 다를 바 없다. 와플, 토스트, 시리얼, 오렌지주스와 커피, 우유.. 이런 것들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요거트가 큰 그릇에 담겨 있어서 먹고 싶은 사람이 직접 그룻에 떠먹는 것이다. 요거트 맛은 괜찮았지만, 과일은 싱싱하지 않았다. 혹시 어제 묵은 호텔처럼 스크램블 에그가 있나 찾아왔지만 역시 없었다. 


오늘 주요 일정은 루이스 호수와 모레인 호수, 세라가 원하는 말타기다. 말타기는 세라가 카우아이에서 한 번 타 본 이후에 여행만 가면 꼭 하자고 조르는 종목 중의 하나다. 그때 나도 같이 타봤지만 나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라는 그때의 경험이 좋았던지 기회가 있으면 "Horseback riding~ Horseback riding~"하며 말을 타자고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케줄을 한 번 직접 짜보라고 했더니 스케줄 대신 여행책자에 말타기를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안내가 나온 페이지마다 접어놨다. 말타기 외에 접어놓은 페이지는 여행지 음식점. 그러니까 열세 살 세라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말타기와 음식인 셈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산이며, 호수며, 야생동물 등 자연을 흠뻑 맛보고 싶고 소피도 비슷한데. 10대와 40대의 관심사가 이렇게 다르구나.


내가 10대였을 때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여행을 거의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 시절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가족, 친척들과 가까운 유원지에 가서 통닭 먹고 , 콜라 마시는 것이 최고의 사치였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참 좋아졌다. 이렇게 일주일 이상 외국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세라가 내 나이가 되고 자기만 한 아이가 있는 시절이 온다면, 한 30년이 지난다면 가족 휴가를 어떻게 보내게 될까. 혹시 가족단위로 우주여행을...?


루이스 호수 스키 리조트

얘기가 많이 빗나갔다. 루이스 호수 근방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곤돌라를 탄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정보에 따르면 일찍 서둘지 않으면 사람이 붐빈다. 그래서 일찍 서둘렀다. 가보니 9시가 채 안됐고 곤돌라 운행은 9시부터라고 쓰여있다. 잘 맞춰왔네... 하면서 표를 끊고 들어가니 직원 외에는 우리뿐이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곤돌라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 


눈이 군데군데 있다. 전망대에 서니 루이스 호수의 일부가 보인다. 산이 동양화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 아니 동양화에 나무가 있는 자리에 눈이 있다. 어디가 구름인지, 어디가 눈인지.... 이 지역 생태계와 관련된 조그만 박물관이 있는데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헬로~ 헬로~ 몇 번 불러보다가 직원이 아직 안 올라온 것 같아 그냥 포기. 그냥 내려가기 아쉽지만 갈 길도 바쁘니 내려가기로 했다. 저기 아래 보이는 루이스 호수에 가야 한다. 내려갈 때 보니 군데군데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을 쳐놓은 것이 보인다. 곰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아래서 사진을 보니 언젠가 곰이 내려왔을 때의 풍경인 모양인데 차와 구경꾼들이 이리저리 몰려있다. 대피해 있는 건가? 철조망은 그때 이후에 친 모양이다.


세계 10대 비경 중 하나라는 루이스 호수. 멋있기는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실망까지는 아니지만 "음~  이 정도가 세계 10대 비경인가..." 생각이 들었다. 눈이 내린 겨울철에는 더 멋있을 테지만, 생각했던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감동은 미처 마음의 준비가 없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미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결코  감동받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감동받고 싶다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루이스 호수에서 15분 정도 운전해 모레인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어제저녁 밴프에서 비올 때 "내일은 우산과 우비를 챙겨가야지" 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우산과 우비를 꺼냈다. 빗줄기가 센 것은 아니지만 준비해 왔으니 사용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우비와 우산을 폈다. 노란색 우비를 입은 소피와 세라는 두 마리 병아리 같았다. 모레인 호수는 호수 주변에 돌이 많아서 그런지 루이스 호수보다는 좀 더 거친 모습이다. 루이스 호수가 여자라면 모레인 호수는 남자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그런지 유명한 두 호수를 모두 구경했는 데로 시간이 점심시간 정도밖에 안됐다. 일정에 따르면 이제는 말 타러 출발했던 밴프를 지나서 캘거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어제 오는 길에 들러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친 에머럴드 호수가 눈에 밟힌다. 한 시간 정도 반대쪽으로 가야 하지만 시간상으로는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이름부터 멋있지 않나? 에머럴드 호수.




만약 다음에 루이스 호수에 또 한 번 갈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11년 전 우리가 루이스 호수에 갔을 때는 호수 근방에서 단 한 시간도 머물지 않은 것 같다. 스케줄이 꽉 차있는 단체관광으로 온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스스로 짜 놓은 그날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려고 '자 여기 왔으니까 다음은 어디' 이런 식으로 다녔던 것 같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페어몬트 호텔 잠시 구경하고 그리고 그냥 모레인 호수로 이동했었다. 만약 다음에 간다면 최소한 하루 또는 1박 2일을 할애하고 싶다. 옥빛 호수에서 카누도 타보고 호수 둘레를 하이킹도 해보고 싶다. 1박이라도 하면서 밤에 보는 호수와 새벽녘의 경치도 보고 싶다. 


한국사람들의 여행 스타일이 대부분 많이 돌아다니며 여러 곳을 보는 것인데 반해 미국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 주변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서로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루이스 호수 같은 이런 곳에서는 오래 머물며 자연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나을 듯싶다. 아무리 서둘러 다녀도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천천히 다니며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가슴 깊숙이 각인시키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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