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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21.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7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에메랄드 호수

에메랄드 호수는 우리가 묵고 있는 밴프와는 반대쪽이다. 어제 지나왔던 요호 국립공원 쪽으로 1시간~ 1시간 30분 정도 돌아가야 한다. 나는 여행을 하는 중에 될 수 있는 한 왔던 길을 또 가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그 길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왔던 길 또가면 여행 루트가 엉망이 되는 느낌이다. 어차피 여행에서 모든 걸 볼 수는 없는 법. 못 본 곳, 가지 못한 곳은 과감히 포기하는 게 오히려 낫다. 하지만 이름에 끌렸나... 에메랄드 호수는 굳이 왔던 길 되돌아 가는 예외를 범하면서도 가고 싶었다. 시간도 좀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에메랄드 호수, 물 색깔이 역시 달랐다. 에메랄드 색깔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메랄드 호수가 정말 에메랄드 색깔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다. 어쨌든 색깔이 진한 청색이나 파랑이 아니고 연하게 맑으면서 진한 편이었다. 호수만 둘러보고 갈까 했었는데 호숫가에서 카누를 빌려주는 곳을 보니 그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글에서 누군가 에메랄드 호수에서 카누를 탔다는 내용이 있었다. 남이 한다고 나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 성격도 남 따라 하는 것을 무진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냥 구경꾼으로 다니느냐,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맛이 달라진다.


"카누 타 볼래?" 내가 세라에게 물었다.

"Is it expensive?" 세라의 말이다.

이상하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세라의 머릿속에는 '경제적인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그랬었나? 소피가 그랬었나?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좀 씁쓸하다 세라가 벌써부터 돈을 알아가는 나이가 됐나.

"괜찮아, 우리가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사실 별로 비싸지도 않았다. 우리가 루이스 호수에서 탄 곤돌라 값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게 카누를 빌려서 1시간만 타기로 했다. 세라가 맨 앞에서 노를 젓고 내가 맨뒤, 겁 많은 소피가 중간이다.


무서워서 탈까 말까 망설이던 소피가 멀리 가지 말자고 한다. 물속을 보면서 계속 무서워한다. 호수 중앙으로 조금 나가긴 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세라의 노젓기가 신통치 않다. 그렇게 삐뚤빼뚤 앞으로 좌로, 우로, 앞으로, 우로, 좌로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조금만 앞으로 가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세상과 동 떨어진 듯 고요하다. 가끔 호수 위를 나는 새소리가 한적함을 더할 뿐. 그런 고요함, 한적함이 더해져서인지 소피의 무서움증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멀리 가지 마.. 멀리 가지 마... 요 앞에만 돌아서 그냥 돌아가자..."

그러는 와중에 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카누 빌린 지 30분도 안됐는데... 정말로 돌아가야겠다.

세라는 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섭섭할 정도는 아닌지 돌아가는데 동의했다. 비록 30분도 안 되는 경험이었지만 에메랄드 호수에서 카누를 탄 경험, 그 고요함은 오래갈 것이다. 호수의 색깔과 함께.


말 타는 데는 여러 군데 있지만 우리가 갈려고 했던 곳은 밴프를 다시 지나서 1시간쯤 더가야 한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열심히 달리는데 빗줄기가 점점 강해진다. 앞에 가는 차의 바퀴에서 튀는 물 때문에 앞이 하얗게 보인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앞은 잘 안 보이고, 대형 컨테이너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다. 그래서 컨테이너 트럭이 내 앞을 질러가면 즉시 속력을 내서 다시 앞질러야 한다. 앞에 아무런 차가 없어도 길이 잘 안 보인다. 될 수 있으면 작은 차, 잘 보이는 빨간색 차를 따라서 간다. 이렇게 어렵게 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앉은 세라와 뒤에 앉은 소피의 머리는 왼쪽으로 떨어졌다가 오른쪽으로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조는 군, 자는 군, 잘도 잔다.


이렇게 비가 오면 가봐야 말을 타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지만 세라는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포기를 안 하는 성격이라 밴프를 지나서도 빗속을 뚫고 달렸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아직 1시간 이상 더 가야 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세라를 깨워서 타협을 시도했다.

"세라야, 비가 너무 와서 가봐야 말타기는 어려울 것 같다."

"..... OK..."

의외로 새라가 순수히 포기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하이웨이를 빠져나왔다. 그래서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이 캔모어다. 밴프와 캘거리 사이에 있으며, 밴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스키 리조트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좀 쉬면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찾아봤는데 마땅한 음식점이 없다. 차를 세워두고, 우산을 쓰고서 음식점 근방을 좀 걷다가 그냥 밴프로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우연히 들른 캔모어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드는 깔끔한 도시였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우리의 호텔이 있는 밴프로 행했다.




에메랄드 호수에서 카누 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누를 빌리고 카누에 올라타고 그런 과정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호수로 나갔을 때의 그 적막함이 아직도 느껴진다. 주변에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이따금씩 바람만 살살 불었다. 아무리 조용한 곳이라고 무엇이 됐든 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런데 그날 에메랄드 호수에서는 방음이라도 된 듯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멀리서 새소리가 났다.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아니라 적막함을 더해주는 소리였다. 이어 빗물이 호수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런 상황이 신기했는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메랄드 호수에서 캘거리 방향으로 하이웨이를 달릴 때의 상황도 기억난다. 그때 어찌나 비가 세차게 오는지 운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이웨이에서 나만 혼자 달리는 거라면 천천히 달리면 되는데, 지나가던 대형 트럭들이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가니 더욱 운전이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앞이 하나도 안보였다. 그 안 보이는 몇 초 동안은 앞에 길이 직선으로 있겠거니 짐작하면서 같은 속도로 그대로 간다. 앞이 잘 안 보인다고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를 밟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이런 사소한 일들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그때는 힘들었던 상황도 지나서 추억이 되고 나니 그립다. 그래서 여행을 또 떠나고 싶다. 지금 Covid-19 때문에 여행이 중지된 상태라 지난 여행의 추억이 더욱 생각난다. 올해 5월에 가려고 계획해두었던 콜로라도 덴버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결국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가고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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