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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22.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8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비 오는 밴프

밴프에서 본 한식당은 서울옥이라는 한식당 하나뿐이다. 밴프에 있는 상가 자체가 그리 크지 않으니 아마도 한식당은 그곳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듯싶다. 그곳을 첫날 발견해 두었고, 밴프를 떠나기 전에 한 번은 한식을 먹으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배가 많이 고픈 날에는 한식이 생각난다. 설렁탕이나 해장국에 김치를 곁들여 한 뚝배기 배부르게 먹고 싶은 생각..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싶다. 소피도 한식이 먹고 싶다고 했고,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세라도 한식을 찾을 때가 바로 이런 때다.


서울옥에 들어서니 30여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이 넓은 중앙 테이블을 차지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일까? 미국에서 온 한인들일까? 그들을 얼핏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격음의 중국말이 들린다. 아~ 중국 사람들이구나. 우리도 탕과 찌개, 이런 것들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동양사람들이 들어왔다. 가만히 들으니 이들은 일본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 한식은 한인들만의 음식이 아닌 것 같다. 좀 더 깨끗하게, 좀 더 알차게 메뉴를 다듬어서 국제적인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여행하면 햄버거를 자주 먹고, 일식도 먹고, 중식도 별로 안 가리고 다 잘 먹지만 며칠 못 가서 한식이 먹고 싶어 진다. 김치의 맵고 시원한 맛이 고기와 생선으로 느글느글해진 뱃속을 한 번 싹 씻어줘야만 한다. 하지만 한식은 같은 메뉴라도 음식점마다 너무 맛 차이가 나고 내용과 형식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걸 통일시켜서 한식을 잘 모르는 외국인도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데, 배가 부르니 여유가 생긴다. 비 온다고 호텔로 그냥 들어갈 우리가 아니다. 어두워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멀리 가기에는 부담이다. 그래서 간 곳이 5분 거리에 있는 Fairmont Banf Spring Hotel이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Banff_Spring_Hotel.JPG


일개의 호텔에 불과하지만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 호텔은 1887년부터 1888년까지 건축돼서 1888년 6월 1일에 문을 연 호텔이다. 그 후 화재로 인해 1920년에 다시 건축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성처럼 지어진 이 호텔 앞에 서면 마치 영국의 어느 오래된 성을 방문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아참. 아직 영국은 가보지 못했구나. 호텔 내부로 들어가니 기둥이 무진장 많았다. 마치 성냥으로 성곽 쌓기를 해놓은 듯했다. 성 전체가 네모난 공간을 수 백개, 수 천 개 붙여놓은 느낌이다. 천장이 높고 곳곳에 기둥이 있어서 어디 큰 동굴에 들어온 느낌도 든다. 잘못하면 안에서 같이 온 사람들 잊어먹을 수도 있겠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화장실이다. 들어가 보니 한 칸 한 칸이 독립되어 있다. 모든 화장실이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가본 곳은 그랬다. 한 칸 한 칸 독립됐다는 말은, 보통의 경우처럼 화장실이라고 쓰여있는 문을 들어가서 각각의 칸이 나뉘어있다는 말이 아니다. 각 화장실 자체가 개인용처럼 독립되어 있다는 말이다. 


남녀 화장실로 나뉘어간 우리 식구는 호텔 안에서 서로 잃었다. 보통은 내가 빨리 나오는 편이라 나는 로비 인근을 빙 둘러봤다. 와인 상점이 있어서 한 병을 사려다가 소피로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와서 그냥 두고 나갔다. 그런데 서로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거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말해야 만날 수 있을까. 결국 처음 들어온 문 앞에서 다시 만났다. 아무튼 큰 호텔이다. 멋있는 호텔이다. 역시 캐나다에서는 페어몬트라는 말만 들어가면 크고 멋있다. 


우리가 묵고 있는 밴프의 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좀 쉬고 가방도 다시 싸야지 내일 아침 일찍 재스퍼로 떠날 수 있다. 내일은 아마도 로키를 만끽하는 날이 될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식을 먹고 싶을 때가 꼭 있다. 10일간의 여행이라면 한 일주일쯤 지나면 속이 느끼해진다.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집에서는 주로 밥과 국이나 찌개, 김치 등 한식으로 먹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나는 한식당은 천차만별이다. 일단 들어가서 먹기 전까지는 음식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보다는 현지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을 갔을 때 실패하는 확률이 훨씬 낮았다. 음식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테이블, 식기 같은 음식 이외의 것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는 집이 음식 맛도 있었다. 음식점을 하는 주인의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음식 맛도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니 음식이야 어떻든, 서비스야 어떻든 돈만 벌면 된다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은 역시 오래 못 가는 모양이다.      


미국에 20년 넘게 살았어도 식성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무섭다. 한국에서는 즐겨 먹었던 심하게 매운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잘 먹지 못하는 점만 빼면 식성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한식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으므로 스테이크나 생선류, 파스타, 새우, 치즈 같은 것을 먹을 기회가 조금 더 많아졌을 뿐이다. 음식은 언어 못지않게 문화의 핵심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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