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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23.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9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Lake Peyto


오늘이 바로 이번 여행의 백미. 세계에서 가장 멋있다는 곳 중에 한 곳, 캐네디언 로키에 간다고 하면 바로 밴프에서 재스퍼, 또는 재스퍼에서 밴프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로키에 다녀왔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오는 이 길을 통해서 밴프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이다. 오늘 밤은 재스퍼 인근에서 숙박할 예정이지만 호텔은 "가서 잡지..." 하는 생각으로 예약하지 않았다. 


짐을 챙겨 아침 일찍 떠났는데 곳곳에 도로공사하는 지역이 많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다. 어제 왔다간 루이스 호수 근방에 가는 데에도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어제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그곳을 지났다. 로키산맥을 쭉 따라가는 도로인데도 길은 전혀 험하지 않다. 좌우로 눈 덮인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람의 변덕스러움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경치인데도 계속 이어지다 보니 멋진 풍경을 봐도 이젠 무감각해진다. 어디를 둘러봐도 경치가 멋있으니 따로 감동할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도시의 풍경에서 잠시 벗어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감동이 컸는데... 그런 우리에게 로키가 놀라움을 주려고 했을까. 노견에 몇몇 차들이 서있어 속력을 줄였더니 차도 근방에 곰이 나타났다고. 나는 운전대를 그대로 잡고 있느라 보지 못했지만 소피와 세라는 후다닥 내려 곰을 보고 왔다. 로키에 가면 곰을 볼 수도 있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이다. 한참 더 가다 보니 또 차가 모여있는 곳이 또 있다. 또 곰의 출현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운전하느라 곰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꾸벅꾸벅 졸던 소피와 세라는 이제 눈이 반짝반짝. 혹시 또 곰이 나오나 해서... 그러는 사이 Lake Peyto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런 물 색깔은 어떤 색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까? 백지를 물속에 담그면 청록이 그대로 묻어날 듯하다. 페이토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약간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갈 때는 차도로 가서 몰랐는데 오솔길로 걸어 내려오면서 보니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별로 춥지도 않은데 눈이- 정확히 말하면 눈이 녹아서 얼음처럼 굳어있는- 있었다. 세라는 그 눈을 뭉쳐서 던지기도 하고 손 시려하기도 하고. 무척 재미있어한다. 한 살 때부터 하와이에서 자라 눈 볼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얼마나 신기하랴. 그렇게 로키산맥을 따라 수 차례 호수와 폭포, 크고 작은 케년을 구경하다가 다다른 곳이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만년설


이곳은 두께가 100~ 360 미터 정도의 얼음으로 뒤덮인 곳이다. 매년 7미터 정도의 눈이 와 수천 년간 쌓이고 쌓여서 얼음으로 압축되어 버린 곳.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를 산 뒤 버스를 타고 입구에 도착해서 입구에서 다시 얼음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차로 갈아타고 가야 한다. 특수차의 운전사가 안내인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그는 가는 길에 이곳의 물은 수천 년(최고 2만 년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이상 쌓인 눈이 빙하가 되고 그것이 녹은 것이므로 무공해라고 강조하며 마셔도 된다고 했다. 실제로 컵에 받아 마시는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도 병에 조금 받아서 마셨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그 운전기사는 아까 얘기 듣고 정말로 마신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다. 농담인 줄을 알겠는데 속이 좀 찝찝하다. 귀한 줄 알고 담아온 물병 속의 물을 갑자기 째려본다. 


이제 점점 재스퍼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예약해둔 호텔이 없다. 이제 슬슬 알아봐야 하는데... 오늘은 어디로 갈까. 책을 보던 소피가 재스퍼로 들어서는 길에 말 타는 곳이 또 있다고 하며 세라의 말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떠 올린다. 책을 찾아서 전화를 했고 장소를 대충 알아둔 다음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결국 어떤 호수와 골프장이 있는 그곳에 도착은 했다. 하지만 말은 보이는데 사람이 안 보인다.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이곳에서 말은 타기는 하는데 주인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지나는 트럭을 세워서 목장 주인이 어디 갔느냐, 언제 오느냐 이것저것을 묻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어디 간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쩌고저쩌고, 앞에 있는 고양이의 이름이 어쩌고저쩌고... 친절하기는 한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주 시골스러운 분위기, 말을 타는 비즈니스를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아직 별로 상업화되지 못한 곳이다.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말타기는 실패다. 세라의 기분은 또 시무룩.


호텔을 알아보려고 몇 군데 전화를 해보다가 Miette Hotspring 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그곳에서 방갈로를 빌려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 오늘은 거기에 가서 온천욕도 하고, 잠도 자자. 그렇게 Miette 온천을 찾아가는데 온천은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재스퍼를 지나서 힌튼쪽으로 한참을 간 후, 큰길에서 산 쪽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한 30분쯤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중에 온천이 나왔다. 


독채로 된 방갈로를 예약하고,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잔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슬리퍼를 신고 슬슬 걸어가서 온천물에 풍덩. 자연에서 나오는 물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인지 물은 뜨겁다기보다 그냥 따뜻한 정도였다. 한데 수영장 물은 얼음물. 들어가면 온몸이 찌릿찌릿 2~3분을 견디기 어렵다. 그렇게 온천에서 온탕 냉탕을 반복하며 밤 10시까지 온천을 즐겼다. 겨울에는 그나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온천을 닫는다고 한다. 얼마나 눈이 많이 오면 그럴까. 겨울에도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는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다. 그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밴프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에 차에서 여행책자를 보다가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다. 잠시 들려서 구경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내렸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일반 차를 타고 가다가 내린 후 얼음 위에서만 다닐 수 있는 차로 다시 갈아타고 가는 곳이다. 하늘은 쨍쨍하고 날은 그리 춥지 않은데 밖은 만년설이 쌓여있는 풍경이다. 빨간색 얼음차가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봐 아주 천천히 얼음 위를 운전해 만년설로 가까이 가서 관광객을 내려줬다가 30분 정도 후에 다시 태우고 돌아가는 코스다. 


이 글을 쓰면서 콜롬비아 아이스필드가 Covid-19 에도 불구하고 개장했나 찾아봤더니 사고 뉴스가 인터넷에 떠있다. 지난주 토요일 이 차를 타고 가던 차가 미끄러지면서 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중경상을 입고 입원했다는 것이다. 이 투어를 운영하는 회사는 39년 만에 이런 사고를 처음 겪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멋진 곳을 여행 왔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참 안됐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안전 면에서는 철저해서 믿을 만한데도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사고는 정말 철저히 대비하고 또 항상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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