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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26.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12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브리티시 콜롬비아주 의사당

캐나다 여행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밴쿠버 공항이었다. 이제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곳, 밴쿠버로 가야 한다. 왜 이런 일정이 되어야 할까? 항공편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곳 목적지를 정해서 그곳까지 왕복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 항공료가 단연 적게 든다. 그래서 우리는 밴쿠버에 처음 도착했지만 로키와 빅토리아를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밴쿠버로 가는 일정을 잡은 것이다. 왔던 항구로 다시 돌아가 똑같은 페리를 타고 밴쿠버로 돌아가는 것이다. 


빅토리아가 있는 밴쿠버 아일랜드를 이렇게 빨리 떠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 이틀 더 머물고 싶지만 밴쿠버에 이미 한국사람이 하는 민박을 예약해 두었으니... 다음에 혹시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며칠 더 머물러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가는 수밖에. 이런 생각이 실행 가능성이 있을지 스스로도 의심되긴 하지만. 도착했던 페리 항구에 다시 도착해 차를 줄 세워 놓고 배에 탈시간을 기다렸다. 올 때보다는 줄이 짧은지 시간이 덜 걸렸다. 이번에는 페리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구경하기도 하고, 올 때 못했던 카드놀이도 했다. 주변의 삼삼오오 젊은 친구들도 카드놀이를 하기는 하는데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때우기로 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올 때는 이 섬이 어떨까, 어디서 숙박할까 좀 불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많이 발동했는데 갈 때는 별로 그런 느낌이 없다. 페리도 이미 타 본 것이요, 밴쿠버에서 잘 곳도 이미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온몸의 신경이 모두 긴장해 작동하는 것 같다. 하나의 정보라도 알아내서 뇌에 전달하기 위해 그런 것인가. 나는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처음 하는 것.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쯤 섞인 상태. 항상 그런 상태라면 굉장히 피곤하겠지만 때로는 일부러라도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을 정도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바로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좋은 기회 아닐까.  


예약해둔 한국 민박집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인종이 모여사는 주택가에 비교적 멋지게 생긴 삼층집이다. 1층에 현관과 큰 주방, 거실, 방이 2~3개 자리 잡고 있고, 2층도 방이 4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반지하에도 또 방이 있다. 그러면 방이 적어도 9개 이상인 집인 셈이다. 집을  찾은 후 현관에서 주인을 부르니 아주머니 두 분이 거실에 있다가 나온다. 주차를 길에다 그냥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주차장이 어딘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차를 주차하고, 짐을 들고 들어갔다. 이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이분들도 잠시 머무는 여행객이었다. 주인과 통화하더니 조금 후에 온다고 한다. 


배가 고프고 양식이 다 떨어져 그냥 기다리느니 한인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려고 나왔다. 멀지 않은 곳에 크진 않지만 한인 슈퍼가 있었고 간단히 장을 봤다. 오랜만에 불고기 감까지 사 가지고 맥주를 사기 위해 둘러봤더니 역시나 없다. 술은 역시 리커스토어에서만 판다. 철저한 캐나다의 음주정책. 잘하는 건지 불편한 건지... 차를 타고 다시 리커스토어에 들러 맥주 몇 개를 사 가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밴쿠버에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밴쿠버의 민박집


저녁거리를 사들고 밴쿠버의 민박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거의 밤 10시쯤 된 것 같다. 하지만 밴쿠버의 밤 10시는 아직도 초저녁 기분이다. 민박집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하루를 어디서 보냈는지 이제 막 하루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식사를 거의 다하고 치우고 있었다. 우리도 제일 늦었지만 고기를 굽고 반찬을 준비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방 바로 옆 거실에 숙박객들이 모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여기 머무는 한 팀이 내일 떠난다고 그전에 한번 맥주 모임을 갖기로 했었다고 한다. 오늘 처음 들어온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리는 없지만 우리 보고도 식사 마치고 얼른 합류하라고 성화다. 민박집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누굴까. 이 시점, 이 장소에 우연히 모인 사람들은 어디서 뭐하며 사는 사람들일까?


먼저 60대 초반의 여자. 현재도 하고 있는지 은퇴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시카고에서 미술 관련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들 일행은 현재 한국의 모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는 30대 여제자, 그리고 그 제자의 어린아이와 함께 밴쿠버에 왔다고 한다. 목적은 여행겸 일 겸인 듯, 일을 마친 후 여행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한분은 시카고에서 한 분은 한국에서 각각 출발해 밴쿠버에서 이렇게 만나는 것도 참 기묘하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 일행도 있다. 이들이 내일 떠난다고 한다. 이중 한 사람은 역시 한국의 어느 대학 교수라고 한다. 그의 일행인 또 한 명의 남자는 어느 회사의 부장인가 실장인가 그렇다. 이 회사에서 그 교수에게 회사 프로젝트를 맡겼고 그 일로 인해 둘이서 출장을 온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일이길래 밴쿠버로 왔을까.


그다음은 세 명의 한국 여대생이다. 모두 지방의 4학년생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이들은 학교를 휴학하고 캐나다 구경도 하면서 일자리도 알아보는 중인 것 같았다. 그밖에 어린아이 한 명과 함께 여행 중인 젊은 부부도 있다. 이들 중 남자는 밴쿠버에서도 몇 년간 살았고, 캐나다 동부에서 공부한 이후 현재는 한국에서 어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 동부로 가는 길에 밴쿠버에 들렀다고 한다.


한두 시간 정도 무슨 얘기를 하긴 했다. 무슨 얘길 했는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문제다. 막 졸린 가운데에도 남자 교수가 나에게 한 가지 물어봤는데, 요지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의 정체성 문제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미국화 될 텐데 나중을 대비해서 한국문화를 충분히 가르쳐주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강요는 할 수 없다고 대답했던 것 같았다. 내 생각은 뭔가를 교육할 때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정도,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관심이 생기면 스스로 찾아서 배운다. 배우지 말라고 막아도 열심히 배운다....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새벽 두 시가 됐는데도 모두들 자리에 앉아있길래 너무 피곤해서 먼저 자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여행 중에 한국 사람을 만나니 이런 색다른 자리도 만들어지는구나...  오늘 늦게 자니 내일 아침은 좀 피곤하겠구나...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국 민박집을 이용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이때가 처음이고 몇 년 후에 보스턴에 갔을 때 방이 없어서 급하게 알아보다가 마침 한국 민박집에 방이 있다길래 하루 숙박한 것이 전부다. 보스턴에서는 하루만 숙박하고 바로 나왔기에 다른 한국인 숙박객을 만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날 밴쿠버에서 다른 숙박객들과 이야기를 해본 것이다. 문화가 같고 말이 잘 통하는 점, 밥과 김치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과 만나니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선에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마음의 공간'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 경계를 넘어오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개인적인 마음의 공간이라고 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상대의 생각을 내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개인적인 마음의 공간을 침해하는 것이다. 상대의 생각을 내 나름대로 평가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서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경계를 넘는 것이다. 그 상대가 나의 가족도 아니고 나와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한 것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몇 살이라도 나이 어린 사람에게 훈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만약에 조언이 필요하고 그런 요청을 받는다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그때도 조심스레 해야 한다. 그런데 조언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나이를 무기로 나서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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