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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작가 Jul 04. 2020

삶의 벼랑 끝, 마지막은 어디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누가 암 걸린 가장을 일터로 내몰고 있는가?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끔 해봤을 것이다.

내가 큰 병에 걸리거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모아놓은 재산이 많지 않다면,

삶의 큰 위기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즉, 비빌 언덕, 비빌 곳이 없다면 우리의 살아감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곡예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보험회사에서는 이러한 불안함을 가지고 돈벌이에 활용하고 있지만, 비빌 곳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소액의 보험료 자체가 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고 사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시대에는 엄빠 카드라고 할 수 있는 부모 도움이나 조부모의 도움 없이는 집 하나도 장만하기 힘들고 제대로 된 삶을 이어가기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불행을 누가 대비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 직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암이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러 나오는 가장들이다.


왜 그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러 나올까?

모두 답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이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거나 부양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희망 없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 우리가 될 수 있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장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출이자도 못 내는 상황, 전기료 등 요금도 못 내는 상황 등이 바로 눈앞에 닥칠 것이다.

빚으로 구입한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삶이 막막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청년, 일자리, 취약계층에 집중해서 정책을 펴고 있다.

정말로 정부가 집중해야 하는 곳은,

어쩌면 바로 내가 말한 이곳이다.

사각지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표를 얻기 위해 다수가 원하는 곳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방위적인 보조금, 복지 등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사각지대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우리 삶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마지막은 어디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누가 암 걸린 가장을 일터로 내몰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은

결국, 마지막 최후에는 그들의 손을 잡아줄 곳은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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