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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Sep 10. 2016

요리 한 접시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좋은 다큐멘터리는 어떤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트렌디한 주제와 이를 잘 반영한 제목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기대를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하고, 그 기대에 부응할만한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영상은 감각적인 편집으로 세련된 동시에 적당한 긴장감과 극적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내용과 조화를 이루는 배경음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간중간 내레이션으로는 시청자의 이해를 도와야 하고, 인터뷰로는 현장감을 살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다부작 작품이라면, 시청자가 다음 에피소드 내용이 궁금해져서 직접 찾아보거나 다음 방송 시간에 TV 앞에 데리고 올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본 많은 다큐멘터리들 중에 하나,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KBS 글로벌 대기획 [요리인류]다.


2008년 이미 [누들로드]로 먹고 싶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푸드멘터리 여정을 시작한 이욱정 PD가 2014년 만든 [요리인류]는 시리즈 영화처럼 그 내용과 영역을 늘리고 확장해 나가면서 이제는 KBS 다큐멘터리를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2014년 1편 ‘빵과 서커스’, 2편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3편 ‘생명의 선물, 고기’를 방영했으며 2015년에는 4편 ‘불의 맛’, 5편 ‘모험의 맛, 커리’, 6편 ‘영혼의 맛, 빵’, 7편 ‘요리한다, 고로 인간이다’, 8편 ‘마지막 한 접시’를 공개했다. 같은 해에 스핀오프 격인 [요리인류 키친]이 약 3개월 간 일주일 단위로 방송되었고, 2016년 설 연휴에는 ‘위대한 진화, 김치’를, 6월에는 ‘도시의 맛’을 각각 한 편씩 방영했다. 그리고 9월 추석 연휴에는 ‘도시의 맛’으로 또 세 에피소드가 공개될 예정이다.

1, 2, 3편은 각각 빵과 향신료, 그리고 고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4(빵), 5(커리), 6(불) 편은 각 주제를 더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간 후속편이라 할 수 있다. 7편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자 앞선 6편의 요약본이며 8편은 이욱정 PD의 제작기다.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요리의 사전적 의미다. 이에 따르면 최초의 요리는 밀가루 반죽을 가열해서 만든 ‘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욱정 PD가 [요리인류] 1편을 빵에 관한 이야기로 채우고 전체 촬영의 시작을 발효빵을 연구하는 학자의 집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넓적하고 딱딱한 고전식 빵에서부터 발효를 통해 맛과 향을 더하고 촉촉한 질감을 주는 현대식 빵까지, 빵은 인류 역사를 함께하며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는 그 활용에 있어서도 주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집트 역사에는 노동자들에게 빵을 지급하지 않아 파업을 한 기록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빵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는 음식이다.


향신료는 요리의 주재료는 아니지만 주재료들 보다 귀한 대접을 받곤 한다. 곡물이나 육류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고 대체할 수도 있지만 향신료는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희소성을 따져보면 그 가치가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교류를 촉진한 매개체가 향신료이고, 세계적인 전쟁과 죽음을 불러오기까지 한 식재료가 향신료다. 그래서 주로 인도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있는 산지 주민들에게는 아픈 기억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재료가 바로 향신료다. 종류 역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다. 익히 알려진 후추나 시나몬부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사프란까지. 인류 요리의 발전은 새로운 향신료의 발견과 그 발자취를 함께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향신료를 활용한 가장 유명한 요리가 바로 커리다. 향신료가 주로 재배되는 인도 지방의 대표 요리인 커리는 어떤 향신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그 변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영국인들이 피시 앤 칩스 보다도 좋아한다고 손꼽는 요리도 토마토를 넣어서 영국식으로 재해석한 커리 요리다.


극한 지대에서 원주민들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고기다. [총, 균, 쇠]에도 나오듯, 신석기 혁명으로 촉발된 농경문화가 펼쳐지기 전에 인류를 먹여 살린 것은 수렵을 통한 육식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은 순수한 고기 날 것의 상태. 지금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정육점에는 냉장 시설이 없다. 당일 도축한 고기를 당일에 모두 판매하기 때문이다. 항상 생고기를 먹을 수는 없는 도시 지역에서는 냉장시설의 발달로 육류의 저장이 용이해지고 신선도 유지가 가능해지면서 육류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여기에 앞서 언급한 향신료를 활용하면서 요리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요리법 또한 다양해지고 많은 변화를 겪는데, 가장 직접적인 방식인 직화구이부터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훈연법, 기름을 이용한 튀김, 증기를 이용한 찜 등 고기 요리에는 ‘불’이 빠지지 않는다.


같은 해 방영된 [요리인류 키친]은 5분 내외로 짧게 제작된 요리 프로그램으로 이욱정 PD가 [요리인류]를 취재하면서 만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요리들의 숨어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요리법을 알려준다. 짧은 만큼 쉽게 보기 편하고, 62부작이나 되기 때문에 원하는 에피소드를 골라 볼 수도 있다.  [요리인류 키친]은 [이욱정 PD의 요리인류 키친]이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2016년 2월에는 ‘위대한 진화, 김치’라는 주제로 우리 문화의 김치와 다른 문화의 발효 및 절임 음식을 소개했다. ‘도시의 맛’에서는 미식의 도시 뉴욕과 홍콩, 조지아의 트빌리시 세 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각 도시의 개성이 담긴 식문화를 조명한다.


어떤 에피소드를 보든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길거리 음식과 가정식까지,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시와 디저트까지, 재료 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요리인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이라도 요리에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꼭 챙겨보길 바라는 몇 가지 요리를 소개해본다.

프랑스 최고의 제빵사가 밀가루와 버터의 비율을 1:1로 반죽해 굽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한 크로와상

바비큐 초퍼, 바비큐 핏마스터 등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실력을 갖춘 장인들이 만드는 텍사스 바비큐

빵을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재해석해서 노른자의 함량을 높여 디저트로 만든 일본의 카스도스

북극의 이끼와 물범 고기로 만든 젤리로 전혀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그린란드 레스토랑의 물범 고기 젤 요리

1,000도가 넘는 불에 웍을 올리고 순식간에 재료를 볶아서 만들어내는 중국식 튀김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분자 요리


몇 년간 요리가 방송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식상하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인 [요리인류]는 제작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훨씬 성숙하고 정제되어 있다. 과장된 리액션과 반복적인 노출로 억지로 먹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각 요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해서 자연스럽게 입맛을 다시게 하는, 한 차원 높은 전략을 구사한다.


일단 한번 보길 바란다. 다 볼 필요도, 순서대로 볼 필요도 없고, 보고 싶은 주제만, 요리 장면만 보아도 된다. [요리인류 키친]은 유튜브나 네이버에서도 볼 수 있는 만큼 하나씩 보다 보면 어느샌가 [요리인류]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보기 전에는 꼭 허기진 상태로 보길 바란다. 그래야 요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맛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조만간 방영 예정인 [요리인류 - 도시의 맛] 관련 정보는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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