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 [총, 균, 쇠] - 1
1997년 출간. 1998년 퓰리처 상 수상. 2년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출 1위.
[총, 균, 쇠] (원제: Guns, Germs, and Steel)이라고 하는 명작 도서가 가진 기록이다.
우선은 번역이 참 잘 되어있다. 총, 균, 쇠. 간결하지만 굵직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정말 필요한 부분만 담았달까.
그런데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게감만큼이나 내용도 무겁다. 또 처음부터 총과 균, 그리고 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4대 문명으로 시작하는 고대 세계사가 초반의 주된 내용이다 보니, (역사 교재 수준의 세계사 설명이다) 제목에 낚였네, 역시 어려운 책은 재미가 없네 하면서 실망하기 쉽다. 필자도 책을 읽으려 두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두 번 다 실패했다.
그래도 워낙에 유명한 책이고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이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그 순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준 내셔널 지오그래픽 측에 정말 고마웠다. 700쪽이 넘는, 문자로 이루어진 서적을, 단 3시간에 시각 영상으로 보여준다니. 이렇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장점은 어렵고 힘든 내용을 시각적으로, 포인트를 집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2004년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 본다면 자막이나 영상이 조금은 촌스럽고 어색할 수도 있지만, 힘든 환경에서도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웠다. 그리고 2007년 한국어 더빙으로 [세계 명작 다큐, 총, 세균, 그리고 강철]이라는 타이틀로 방영해준 KBS에게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성우를 한 명으로만 썼는지이다. 내레이션과 제레드 다이아몬드, 두 명의 화자가 주로 이야기를 하는데 동일한 성우가 두 인물의 목소리를 모두 내다보니 들으면서 의도적으로 이게 내레이션인지 교수의 말인지 구분해야 했다. 또 성우 목소리 역시 예전 스타일이다 보니 학교에서 틀어주는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UCLA 생물학 교수이자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국인이기도 하다. 세계의 문자를 통합한다면 한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한글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5월 열린 ‘서울포럼 2016’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한국과 세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이 브런치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이에 관련된 정보와 생각할 점을 적어보는 데에 중점을 두지, 일기식으로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글은 지양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총, 균, 쇠]는, 내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판단되어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총, 균, 쇠]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아예 책을 사라.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부터는 각 부의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고 지리적 이점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정리할 것이며, 마지막에는 저자이자 주인공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을 다룰 것이다. 2부 내용부터는 새로운 포스트에 적을 예정이다.
제목에 세 개의 요소가 있다 보니 각 부가 1부는 총, 2부는 균, 3부는 쇠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총, 균, 쇠가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건 2부 정도가 전부이고 각 에피소드마다 중복되어 나오는 내용도 많다. 또 보면 알게 되겠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총, 균, 쇠'가 아니다.
[총, 균, 쇠]에서 총과 균, 그리고 쇠는 세 가지 요소일 뿐,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고대 세계 발전의 결과물이자 현재 문명을 연결시켜주는 도구 혹은 매개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총, 균, 쇠'라는 타이틀은 시선을 끌기에는 적합했지만 핵심 메시지는 아니었고, 결정적인 요소들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요소라고 하기는 힘들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그럼 바로 이 책이, 그리고 그 책을 옮겨놓은 이 다큐멘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보자.
문명의 발달에는 비선택적이며 우연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으며,
그것은 바로 지리적 이점이다.
바로 이 문장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책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이 문장이다. 얼핏 보면 터무니없고 급진적인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내려보자. 재미가 없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더 투자해보라.
1부에서는 총, 균, 쇠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들이 나온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오히려 이 초기 3요소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세 가지는 바로 농경, 목축, 그리고 문자가 되겠다.
국사 혹은 세계사 시간 초기에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자.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채집과 수렵으로 생명을 영위했으며 고정된 생활 기반을 가지지 못하고 이동 생활을 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농경의 시작이다. 또 다른 이름은 신석기 혁명이다. 농업이 얼핏 보면 거창해 보이기도 하는 거창한 이름을 얻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구석기시대와는 다르게 농경으로 인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원이 생겼고, 이로 인해 정착 생활이 가능해진다. 더 이상 불확실한 사냥과 수렵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농사에 필요한 가축을 기르는 목축이 도입된다. 농사에 큰 도움을 주어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고, 생명이 다할 때에는 식량이 됨으로써 단백질을 제공해주는 가축으로 인해 고대인들은 드디어 잉여라는 개념을 얻게 된다. 지금은 잉여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쓸모없이 버려져 있는 어떠한 것이라는 맥락에서 쓰이지만, 사실 잉여의 역사적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잉여 농산물이 생겼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농사와 목축에 자신의 시간을 쏟지 않고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잉여의 유무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척도가 된다)
이렇게 기술자들이 많아지고 점차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면서 나온 것 중 하나가 문자이다. 당시에는 컴퓨터나 아이폰의 등장보다 충격적이었을 문자라는 도구는, 자신의 선조들이 쌓은 지식을 더 이상 구전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전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고, 이후에 등장하는 발명과 발견에 연속성이라는 속성을 부여해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불을 활용하게 되면서 불 속에 금속을 수 시간 씩 달구고 두드려보며 (드디어) 세 요소 중 하나인, 철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것이 1부에서 나오는 주된 내용이다. 그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 내용들을, 이번엔 지리적 관점으로 연결시켜보자. 우선 농경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미국의 제임스 브레스테드 James Brested가 명명)라고 하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문명이 일어난 곳에서 시작된다.
이 지대의 위도와 여기서 나오는 건조 기후는 농업에 적합했으며 소와 말, 돼지와 양 등 목축이 가능한 가축들을 기르기에 적절했다. 반대로 다이아몬드 교수가 연구를 시작하게 된 파푸아 뉴기니 같은 경우 지대와 기후가 밀이나 밭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고 많은 노동력과 일손이 필요한 작물들을(타로감자와 같은) 재배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축의 경우도 기를 수 있는 가축은 있었지만, 이 동물들은 농업에 이용할 수는 없었고 또 쉽게 길들여지지도 않았다.(세계적으로 사육이 가능한 가축 17종 중 대부분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그 기원이 발견되었다)
바로 여기에 문명 발달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시발점이 있다. 단순히 지리적 이유 때문에 한쪽은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고 잉여로 인해 문자와 기술이 발달했으며, 다른 한쪽은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에 들여아 하는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나 많았기에 잉여가 생기지 않았고 문자와 기술이 발달할 시간이 없었다.
한 가지 더하면, 지금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더 이상 비옥하지는 않은데, 이는 이곳이 몇 천년 간 농사와 목축을 하기에는 적합한 지대가 아니었고 기후 변화로 인해 사막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집단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이동한다. 좌측으로 간 이들이 유럽인의 시조가 되었으며 우측으로 간 이들이 중동과 중국의 시조가 된 것이다. 지리는 이 때도 이들의 편이었는데, 이들이 좌우로 이동했기 때문에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경도만 바뀌었을 뿐, 위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위도가 일정하다는 점은 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하고 기후가 유사하며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이전에 가졌던 생활양식(농경과 목축)을 새로운 장소에서도 그래도 영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왜 백인은 짐(재산)이 많고 뉴기니 사람들은 짐이 적습니까?
다이아몬드 교수가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파푸아 뉴기니의 얄리라는 인물이 던진 질문이다. 파푸아 뉴기니는 유럽 열강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진출한 이후에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존재가 알려졌고 그로 인해 서구 문명의 도입이 이제야 진행되고 있는데, 자라면서 기술적으로 더 발달한 문화와 자신의, 어찌 보면 열악한 문화를 보면서 얄리는 마음속으로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의 원인이 단지 지리에 있다는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답변은, 한편으로는 얄리를 허무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논의를 조금 더 확장시켜보면, 이는 결국 다이아몬드 교수가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지만, 각 문명에게는 애초에 지리적 문제 때문에 발달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럼 이걸로 끝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아직 1/3밖에 오지 않았으니, 결론을 내리고 판단을 하는 건 2, 3부 내용을 보고 해도 늦지 않다.
[총, 균, 쇠]의 두번째 브런치는 여기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