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MBC [사투리의 눈물]
2011년 겨울, 인터넷 상에서 작은 이슈가 있었다.
바로 '2의 e승' 문제다.
경상도 사람들은 사투리 때문에 2의 2승과 2의 e승, e의 2승, e의 e승의 발음이 각각 다르고, 이것만으로 사투리 사용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
한 차례 해프닝이었고 필자도 경상도 출신이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한바탕 웃고 지나갔지만, 그 다음 해, 이 문제를 한 부분으로 엮어서 나온 다큐멘터리가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사투리의 눈물](2012)이다.
당시 경남 MBC에 재직 중이던 최민철 PD(현 SBS)가 사투리를 주제로 만든 작품이며, 새로운 내레이션 방식과 젊은 감각으로 한국PD연합회가 시상하는 143회 이달의 PD상(2012년 1월) 시사교양부문 상과 제25회 한국PD대상에서 TV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했다.
제목에서부터 '눈물' 시리즈의 패러디임을 선언하고, B급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며 만든 이 작품은 시작 전에 다음과 같은 '주의 화면'이 나온다.
그리고 [사투리의 눈물]이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내레이션이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방식의 내레이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티저 영상을 한 번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내레이션이다.
최근에는 자막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시각적인 정보 전달도 동반하지만, 기본적으로 내레이터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청각적인 정보 전달의 비중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제작자들이 영상 촬영 후 편집 기간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누구에게 내레이션을 맡길 것인가'이다. 전문 성우나 아나운서가 맡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가진 배우나 아티스트가 내레이션을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 작품에서는 작가나 PD가 직접 하기도 한다. (제작비와 시간 절약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내레이션이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랩'을 하는 것이라면?
[사투리의 눈물]은 내레이션이 아니라 '내랩션'이 들어간 다큐멘터리다. 그것도, [쇼미 더 머니 시즌2]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그룹 '가리온'의 수장이자 한국 힙합 1세대를 대표하는 주자 중 한 명인, MC메타가 모든 음악과 랩을 담당했다. 그래서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내래이션이 아니라 '내랩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언젠가 [사투리의 눈물]을 제작한 최진철 PD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가 '어떻게 랩을 넣을 생각을 했고 또 MC메타를 어떻게 섭외했느냐'라고 하자 웃으며,
'뻔한 내레이션 말고, 평소에 좋아하던 힙합이 랩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음악과 랩을 맡을만한 사람을 찾아봤는데, MC메타가 사투리 랩이 들어간 곡을 발표하는 등 관심이 있어 보여서 제안했다'고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MC메타도 쉽게 OK사인을 주지 않았지만 최 PD의 끈질긴 구애로 전격적으로 결정했다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듣는 재미가 있다. 메타의 래핑이 깔끔하고 귀에 잘 박히기도 하지만(자막 없는 눈을 감고 들어도 귀에 잘 들어온다), 흥겨운 비트에 재미있는 사투리 라인을 얹어서 내랩션을 하니 계속 집중해서 듣게 된다. (음악적 완성도는 물론이다) 또 그러다 보면 사투리가 힙합과 잘 맞는다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에 나왔던 2의 E승으로 돌아가 보면, 경상도 사투리는 각각의 발음이 다르며, 그 이유는 바로 '성조' 때문이다. (중국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건, 경상도 사투리는 '성조'라는 단어 자체에도 성조가 들어간다.
경상도에서는 모든 말에 성조가 들어간다는 첫 번째 특징이 있고, 두 번째 특징은 이로 인해서 '경제적인 발음'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발음 뿐만 아니라, 의미적인 면에서도 경제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롯데 자이언츠의 '마!'가 있겠다. 야구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마! 는,
'경기 중 상대 투수가 자기팀 주자에 대해 견제구를 던졌을 때, 투수에 대해 팬들이 야유하는 행위'를 단 한 단어로 압축해준다. 자매품으로 '아주라'도 있겠다.
사투리의 또 다른 특징은 표현의 다양성이다.
다음은 표준어 '매우 많다'의 경상도 사투리들이다. 한 눈에 봐도, 그 다양성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뿐만 아니라,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에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한글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같은 느낌를 수많은 다른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힘은 바로 사투리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생활에서 점차 사투리가 쓰이지 않으면서 그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특한 사투리로 유명한 제주도에서는 세대차가 날수록 소통 자체가 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어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장되어 버리는 언어의 특징으로 보았을 때, 이대로 가다가는 사투리가 다 없어져버리고 표준어만 남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경제개발기와 이촌향도 현상과 동시에 시행된 지나친 표준어 위주의 획일화 정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표준어는 정답, 사투리는 오답. 표준어는 세련, 사투리는 촌스러움이라는 비교 의식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사회적으로 터부시 하게 만들고 있다.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우리가 표준어라고 하는 서울말, 즉 경기 방언도 사실은 자체적인 억양이 있는 사투리의 한 종류라는 것이다. 표준어의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어찌 보면,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와 같이 사투리의 하나였던 경기 사투리가 표준어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나서는 획일성과 통일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무리일 수는 있겠지만, 일제시대 총독부에서 조선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한글 교육을 금지하고 내선 일치 사상을 강요했던 것처럼, 표준어가 사투리를 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오죽하면 지방에는 사투리 교정 학원도 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사투리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다니, 청년들의 사투리에 대한 인식기 엿보이는 부분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미션이 주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투리를 '교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일례로, 씨부리다 라는 단어는 '고대 드라비디언 계열'이라고 하는, 청동기 시대급 역사를 가진 언어에서 파생된 유서 깊은 단어이다. 그런데 씨부리다 는 사투리 중에서도 비속어 사투리로 분류되고 있고, 워드나 한글에서도 입력시 빨간 줄이 그인다. (그런데 브런치에서는 맞춤법 오류에 걸리지 않는다)
사투리 기피 현상에는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부정적인 인상으로 몰고 가는 모습도 한몫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투리는 상대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이나 조폭, 폭력배가 쓰는 언어인 경우가 많다. 역설적이지만 사투리를 쓰면 감정 전달이 더 잘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표준어의 절대성이 조금씩은 완화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인 강호동 씨는 애초부터 사투리를 써왔고 그 말투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지난번 TV를 보던 중, KBS 1TV에서 방영하는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내레이션은 가수이자 방송인인 최백호 씨였는데,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투리를 뱉고 있었다. 확실히 감정 전달이 더 정감 있었다.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언어 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사투리를 보호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진철 PD 역시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가 본인의 사투리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고생한 경험이 많아서 이 고민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특강에서도 찐득한 사투리로 강의했다)
'사투리가 무조건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는 제작자의 코멘트는 이 작품을 본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필자는 부모님께 이 다큐멘터리를 보여드렸다. 보시는 내내 '맞다, 맞다'하고 껄껄 웃으시며 공감하셨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에서 살아오신 이 분들은 바깥에서는 표준어를 쓰시지만 집 안에서는, 그리고 친척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는 '잘 있나?' '금마가~'로 시작하는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필자도 부모님의 그런 모습이 더 정겨워 보인다.
서울 태생이고 서울말, 즉 표준어를 사용하고 장난으로 사투리를 따라하곤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마음 속 깊이부터 메시지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지방 출신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문제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가끔씩 틀어서 보곤 한다.
사투리, 즉 방언이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담고 있는 언어표현이라는 지위를 얻는데에 마음으로나마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길 권한다.
여담) 엔딩 크레딧 모습이다.
유튜브에 전 세계를 여행하며 춤을 추는 영상 'Dancing'을 올려 일약 스타가 된 맷 하딩(Matthew "Matt" Harding) 오마주인데,. 실제로 서울 광화문광장부터 강원도 산골, 경상도 광안리, 전라도 보성녹차밭, 제주도 해변까지 정말 많은 장소들이 나온다, 최진철 PD에 의하면 '적은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제작 기간동안 너무 힘들었고 스태프들에게 고생을 많이 시켜서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우리끼리 추억할 수 있는 크레딧 영상을 만들어보자 라고 해서 장소에서마다 저렇게 춤을 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