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 [총, 균, 쇠] - 2
[총, 균, 쇠]에 관한 첫 번째 브런치는 여기서 볼 수 있다
2부는 1부에서 시간이 많이 지난 중세시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격적으로 ‘총, 균, 쇠’가 활약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으로 간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발전시켜서 위대하고 웅장한 건축물, 문화, 그리고 발명품들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전쟁과 평화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발명 경쟁과 정복 활동이 그 절정을 맞이한다.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럽 열강(列强)의 등장이다.
그리고 유럽 열강과 원시 상태에 남아있던 문명이 충돌하는 사건이 바로 1532년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끄는 정복군과 잉카 제국의 사이에 벌어졌던 충돌이다. 2부는 이 충돌의 과정과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온전히 보여준다.
당시 잉카제국은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적함대로 잘 알려진 에스파냐 제국의 군대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재장전이 (상대적으로) 빠른 총을 가지고 있었고, 가볍지만 단단하고 유연하지만 날카로운, 강철로 만든 칼을 차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몇천 년간 함께해온,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 자신의 수족과도 같이 부릴 수 있는 말(가축)을 타고 있었다. (목축의 연속이다) 잉카 제국의 가축은 라마가 전부였으며, 라마는 탈 것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 세 가지는 에스파냐 군대가 인식하고 있는 무기였지만, 사실은 자신들에게는 숨겨진 무기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균이다. 구체적으로는 천연두 균이었다. 천연두는 인간이 가축을 기르고 함께 지내면서 가축에서 나온 균이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키며 인간에게 옮겨지면서 생긴 질병이다. 물론 애초 발병시에는 수많은 유럽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수 세대를 지나면서 유럽인들은 자연스럽게 천연두에 대한 항체를 선천적으로 지니게 된다. 이 균은 유럽 문명과 원시 문명이 만나는 순간 숨겨진 조력자로 활약하고, 에스파냐 군이 직접 죽인 수 보다 훨씬 많은 수의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원인도 모른 채로 천연두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는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총 - 군사적 요인 균 - 생물적 요인 쇠 - 기술적 요인
이렇게 고작 168명으로 구성된 피가로의 정복군은 8만여 명의 잉카인들을 학살하고 승리자가 된다.
이번에는 과연 지리가 어떻게 작용했을까?
앞선 포스트에서 농사와 목축을 시작한 원시 문명인들이 거주지 이동 당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기준으로 좌우로 이동했다고 언급했었다. 이번엔 남아메리카의 지리적 상황을 보자.
다음은 잉카문명이 퍼져있는 지역을 나타낸 사진 사진이다. 얼핏 봐도 영토가 종으로 펼쳐져 있다. 횡이 아닌 종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곡물, 가축, 문자 보급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내려갈수록 혹은 올라갈수록 기후와 지형이 다르고 재배할 수 있는 곡식과 기를 수 있는 가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남아메리카의 고산지대는 농사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고 그곳에 있는 가축들은 다방면으로 쓰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유럽만큼의 고도 문명이 발달하기에는 힘들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1532년 잉카문명의 몰락과 서양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에는 지리가 개입했다. 또 다시 한 번, 이는 우연이었다.
3부는 ‘총 균 쇠’의 영향과 지리적 원인이라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무대가 아프리카로 바뀐다. 2부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에 기동성을 나타내 주는 제 4의 요소인 말이 있었다면, 3부의 아프리카에는 기관차와 철도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또 이곳 아프리카에서도,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가 '농업'에 기반한다고 직접 언급한다.
서구 열강이 가장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바로 희망봉이었다. 지리적으로 보면 희망봉은 적도를 기준으로 유럽과 거의 동일한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역시나 기후와 일조량, 습도와 강수량이 서로 비슷했다. 아프리카 대륙 남반구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잉카 제국을 점령할 때와는 다르게 용맹한 줄류(Zulu)족의 역습으로 네덜란드 정복자들은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시나 전면전에서는 마차와 기관총 그리고 칼의 힘으로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둔다.
네덜란드 정복자들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남에서 북으로 진출하지만, 이번에는 균의 역습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 북측은 적도에 가까운 곳으로, 열대 우림 기후를 가지고 있었고, 강가 주위에 사는 모기들에 의한 말라리아는 이 유럽인들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게다가 그곳의 땅은 짙어서 벼와 감자가 자랄 수가 없었으며 말과 소 같이 이제껏 유럽인들을 먹여 살렸던 가축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당시 아프리카 북부에는 독자적인 아프리카 문명이 발달해있었는데, 이들은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모기가 주로 서식하는 강가가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했다. 또 자신이 사는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는 작물을 골라 농사를 짓고 있었고 소와 말이 아닌 다른 가축으로 목축을 하고 있었으며, 잉여와 기술 발달의 초기 생산물이라 할 수 있는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즉, 만약 그대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면, 혹은 아프리카 문명이 유럽과 아시아보다 먼저 발전했더라면, '총 균 쇠'는 훗날 이들의 시각에서 저술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유럽인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발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병균의 역습이 있었고 자신들의 기술이 있었지만, 네덜란드 정복자들이 가진 총과 쇠는 이미 아프리카 문명이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직접적으로 북아프리카를 공략하지 못한 네덜란드 정복자들의 선택은 환경에 이미 적응한 아프리카인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해서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려간 아프리카인들은 목화밭의 노예가 되었고 남아있는 이들은 철로 건설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강제로 거주지가 옮겨진 아프리카인들은 사막지역에서 아직도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2부에서 나왔던 16세기 당시의 남아메리카가 20~21세기의 아프리카인 것이다. 분명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기술이 발달한 문명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문명을 어떻게 점령하고 약탈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흐름은 동일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저 양상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 사례가 바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다. 이 지역들도 기후적으로는 열대였고 말라리아가 창궐했으며 서구의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두 곳은 지리적 열세를 딛고 일어나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런 지역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먼 미래에는 아프리카 문명이 선진 문명이 될 수도 있다고 다이아몬드 교수는 조언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은 문명의 지리적 기반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지리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위치에 있고, 지금 우리의 문명과 문화도 지리적 혜택을 보고 있는 부분이 있다. 막연히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문명 발상지에서 꽤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불리하지도 않은 이유는 위도 상 농경과 목축을 발달시키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중국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서 세계적 발전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았고, 이런 성향이 내재화되었기 때문에 2차 대전과 한국 전쟁 전후로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또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급격한 성장에는 한글도 막대한 역할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쩌면 '총, 균, 쇠'보다도 중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파푸아 뉴기니로 돌아가 보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만난 얄리의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Cargo)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답변은,
역사를 되짚어보면 국가 간의 빈부(貧富) 격차는 지리적·제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서울포럼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한 말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고 해석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고자 하면 혼자 볼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만나서 한 명씩 솔직하게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자신이 본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질문을 던지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모습은, 생각의 방향에 대해 많은 힌트를 준다.
그 힌트를 들으면서, 즉 지리적 환경의 차이로 인해 문명의 발달에 차이가 생겼다는 주장을 들으면서, 생각이 이른 곳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장하준 교수가 이야기한 '기울어진 경기장'이었다.
사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총, 균, 쇠]의 무대를 경제로 옮겨놓은 것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서울포럼 기조연설에서 미래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칠 중요한 (또 다시) 세 가지 요소로 '부의 불평등, 자원 남용,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여기서 '부의 불평등'이라는 특정 요소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바로 장하준 교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게으른 민족성'을 내세우며 경제적,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구의 행위 역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과 연계시키면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된다.
고대의 '농업, 목축, 문자'가 근대의 '총, 균, 쇠'가 되었고, 현대에는 '부의 불평등, 자원 남용, 핵전쟁' 이 세 가지 요소로 연결되는것인데, 가장 중요한 건 부의 불평등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모든 요소들로 인해 부의 불평등이 유발되었고, 부의 불평등 때문에 자원 남용과 핵전쟁이라는 위험요소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사실 '기울어진 경기장'은 그 전에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주장한 '평평한 경기장'의 논의를 반박하고자 나온 개념이다. 또 다른 한명의 퓰리처상 수상자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저서에서 부의 불평등을 인정해야만 하며, 더 이상 한쪽에 유리한 경기장이 아닌 평평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쳐야 공정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더 나아가서, 오히려 다른 한쪽으로 기울어진 경기장이 공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유럽권을 비롯한 서양 열강들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왔으니 평평한 경기장은 불공정한 것이고 기울어진 경기장이 공정하다고 말이다. (장하준 교수의 저서들도 다큐멘터리로 나오면 좋을텐데)
이 다큐멘터리는, 그리고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던지는 것이 작품의 역할이다. 나머지는 그 담론을 이어받은 우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적어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무조건 잘해서 우리가 무조건 우월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물론 이 정도에 오기까지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하지만) 지리라고 하는 비선택적, 우연적 요소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또 조금 더 겸손하게 조금 더 고개를 숙이는 마음 정도만 가질 수 있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충분히 소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총, 균, 쇠]라는 명저를, 두꺼운 책을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담아야 했기에 분명 책에 비해 디테일한 부분은 떨어질 것이고 책에는 훨씬 더 많은 사례와 일화, 그리고 논리적인 흐름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만으로도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적당히 이해할 수 있기에, 지루하더라도 조금 참아보는 건 어떨까. 책을 덮었을 때 밀려오는 수준의 자긍심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