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누구나 한 번쯤 사춘기를 겪는다고 한다. 엄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속 썩이는 일 없이 착하게 컸다고 한다. 물론 자잘하게는 힘들게 한 일도 많았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큰 일탈이나 말썽 없이 성실하게 학교에 다닌 모범생쪽에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학창 시절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나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책상에 책을 펴고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지만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라디오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라디오와 많은 시간 함께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는 나만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는 점수에 맞춰, 부모님의 추천으로 학과를 정하여 가게 되었다. 학과 공부는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직장 또한 복지 쪽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복지는 이상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나쁜(?) 마음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에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필요한 사람이 복지 서비스를 받아서 좋고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불필요한 사람이 받는 거면 어떡하지 라는 불신과 걱정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또한 감정이입과 상대방의 입장에 몰입하는 성격 때문에 퇴근한 후에도 대상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내 삶에 침투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났다.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고, 받지 못하면 억울한 것이다 보니 감사보다는 불만민원을 더 자주 맞이하게 된다. 내가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들이 더 크게 보이고, 실수가 나의 정체성이 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소진이 된 것 같다. 속에서 쌓이고 쌓이던 것이 펑하고 터지는 순간,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관련된 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이번엔 어떤 민원일까 불안해하며 수화기를 든다.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가 막막해졌다. 아이가 있기에 참고 버텨야 하는 것인지, 상황을 고칠 수 없다면 내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하는데 참 쉽지 않다. 부디 나의 사춘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많이 아프지 않기를. TV속에 누군가가 40대가 되고 평온해졌다고 하는데, 나의 40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나의 3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