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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경 Jul 11. 2023

1장 - 애견미용과 PTSD

미용 트라우마는 미용을 하면서 치유되지 않는다

단호하게 미용을 하다보면 적응할까요?


 저는 종종 반려인들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 접속합니다.

애견미용과 미용 교육에 대한 반려인들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입니다.

미용 싫어하는 강아지가 고민이라는 게시글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이런 것들입니다.


‘저희 강아지도 어릴 땐 발버둥치고 싫어했는데 하다보니 적응했어요
점점 나아질 거예요’
‘강아지가 발버둥치더라도 단호하게 하셔야 합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용할 때 물거나 발버둥치는 개는 단 한 마리도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려견 중 대부분이 미용 도중 도망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미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개들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미용을 받아들이게 되고, 어떤 개들은 도저히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공격성과 회피행동이 악화되는 것일까요?



마법처럼 빠른 미용 훈련의 비밀 


 요즘 미디어에서 미용을 거부하는 개들이 몇 분만에 얌전해지고, 미용을 할 수 있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예를 들어, 빗질이나 발톱 깎는 것을 싫어하는 개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물더라도 움직임을 통제하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지요. 혹자는 물거나 움직이는 개의 목줄을 당기기도 합니다.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몇 분 정도 지나면 개는 더 이상 회피하거나, 공격하려는 행동을 멈추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훈련이 되었다’, ‘얌전해졌다’ 라고 표현합니다.


https://youtu.be/1EsSCAIiZZk

무력감에 의해 얌전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반려견


 이러한 현상은 ‘학습된 무력감’ 이라는 심리학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67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24마리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24마리의 개를 3그룹으로 나누고 방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A그룹과 B그룹의 방 바닥에는 전류가 흐릅니다.

A그룹의 개들은 코로 레버를 움직이면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B그룹의 개들은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C그룹의 개들에게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았습니다.


24시간 뒤에 셀리그먼은 낮은 장애물만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방으로 개들을 데려갔습니다. 

코로 레버를 움직이면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었던 A그룹과,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않았던 C그룹의 개들은 장애물을 넘어 전기 충격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B그룹의 개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전기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B그룹의 개들은 어떤 행동을 해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다 보면 적응한다’는 부류의 반려견들은 바로 이런 무력감을 학습한 개들입니다. 

미용 과정 중 스트레스는 그대로 받으면서 자포자기한 채 미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문제는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뇌에서 위협을 인식하는 부분인 편도체가 점점 더 민감해집니다. 


민감해진 편도체는 안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위협 반응을 더 쉽게 일으킵니다.

민감한 편도체를 가지고 불안함 속에 사는 반려견들은 작은 소음, 움직임 등 일상적인 자극에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짖거나, 달려들거나, 무는 등 행동을 합니다.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울리는 고장난 사이렌처럼, 머리 속 신경 회로가 고장나버리는 것입니다. 




트라우마 예방과 치유의 기본은 안전함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면 해당 상황을 직면하고,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용을 거부하는 반려견에게 미용 상황을 제시하고 이를 견디어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동물에게 더 큰 트라우마만을 남기고 증상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미 두려운 감정과 연합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는 경우, 이를 또 다른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트라우마 치료에서도 내담자를 안정된 상태로 만드는 안정화 단계를 1단계 목표로 합니다. 

1단계 안정화 상태에 이르지 않으면 2단계 치료를 하지 않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내담자가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라우마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려견의 트라우마 예방과 완화에도 마찬가지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미용 상황에서 몸이 구속되었던 두려운 경험을 다시 하지 않도록 미용을 중단합니다.

미용사와 신뢰관계를 쌓고, 미용실 공간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활동만 진행하며, 두려운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용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반려견이 미용실 환경과 미용사에게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게 되면 다음 단계인 교육으로 넘어갑니다. 곧바로 미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점진적으로 미용 도구를 소개합니다.

이후 교육이 완료되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부분만큼만 미용을 조금씩 나누어 진행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파괴됩니다.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님의 강연 중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파괴된다 라고 해야 맞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미용을 거부하는 개를 구속한 상태에서 미용을 강행하는 것은 상처를 후벼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미용과 관련한 자극에 노출될 때마다 반려견의 마음은 부서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만약 여러분의 개가 미용을 거부한다면, 일단은 그 미용을 멈춰주세요.

반려견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한다면 보호자도, 반려견도 보다 나은 방법으로 미용을 하고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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