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간의 삶이 표준 코스로 씻겨나갑니다.
수건 열댓 장, 양말 몇 켤레, 셔츠와 바지 몇 벌.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립니다. 익숙한 멜로디 뒤로 차가운 수돗물이 콸콸 차오르고 나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세탁기. 지난 며칠 간의 삶이 표준 코스로 씻겨나갑니다. 불려서 때를 빼고, 더러워진 물은 흘려보내고, 남은 물기를 쥐어짜는 코스.
45분쯤 지나 세탁기가 노래를 부르면, 젖은 빨래 더미를 꺼내 볕 아래 가지런히 널어줍니다. 깨어있음에도 깨어있기 위해 마셨던 커피 얼룩, 언제 흘렸는지 모를 눈물 자국, 누군가의 구두굽에 밟혔던 밑단. 그 모든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옷자락들이 빨랫대 위에서 가을바람을 맞습니다.
사는 게 꼭 빨래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일상의 원심력 속에서 뒤엉키며 너저분해진 날들을 헹구고 말려서 다시 입어내는 일이라고요. 올해 나는 줄곧 세상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산을 쓴 채로 비에 젖던 날들, 낯설고 아픈 일들이 세차게 쏟아지던 날들, 얼룩진 날이 많았고, 빨래를 자주 해야만 했습니다. 한 해의 대부분이 빨랫대 위에 널려 있었고, 저마다 축축한 사연을 머금은 날들을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입었습니다.
나의 지난날들이 빨랫대 위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흐느적거립니다. 옷자락을 손끝으로 더듬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견뎌낸 순간들이 보풀처럼 보글보글 일어납니다. 오후 내내 빨랫대 주위를 맴돌던 마음이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멀리 흘러가버립니다.
길 잃은 위성처럼 떠돌던 마음은 하루가 저물어 어둑해질 즈음 돌아옵니다. 마음은 조금 덜 말랐지만, 오후 내 잘 마른 빨래와 함께 거둡니다. 거실 바닥에 앉아 햇살 냄새가 나는 빨래를 갭니다. 수건은 반으로, 양말은 돌돌 말아서, 속옷은 종이접기 하듯. 빨래를 차곡차곡 개는 동안 눅진하던 마음도 한결 보송해집니다.
손으로 툭툭 털어 며칠씩 더 입을 수 있는 날들이 조금은 많아지길 바랍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