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청(請)합니다(1)

by 욘킴

잠을 ‘청(請)한다 ‘라는 말. 여기에는 요청할 청 자를 사용합니다. 잠이라는 상태를 정중하게 부탁하여 불러들이는 행위로 보는 느낌입니다. 마치 까다로운 성미를 가진 요괴를 문 앞에 세워두고 집 안으로 들어와 주십사 깍듯이 허리를 굽히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잠에 든다’ 라든가 ‘잠을 잔다’라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온종일 마음을 괴롭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뒤로하고 쏟아지는 졸음에 저항 없이 몸을 내던지던 밤이 언제였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잔다’라는 단어가 ‘먹는다’, ‘숨을 쉰다’, ‘마신다’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맞는지요? 나는 종종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ㅈ,ㅏ,ㄴ,ㄷ,ㅏ‘라는 재료의 조합이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지난했던 하루를 잊게 해주는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는 걸까요.


자는 법을 까먹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니 처음부터 잠드는 법 따위는 몰랐던 사람인 것처럼, 잔다라는 개념조차 익숙지 않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한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나는 잘 먹고, 잘 쉬고,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땀이 나는 활동을 하고, 자기 전엔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카페인을 줄이라는 세상의 충고를 일단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종일 잘 먹었습니다. 근육이 적당히 피로해질 정도로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고,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누운 채로 멀뚱히 천장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초조하고 조바심 나던 기분이 참을 수 없는 권태로움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잠이라는 녀석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내 안에서는 손톱만큼의 잠기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언제까지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일은 몹시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다림의 끝에 나는 가까스로 잠이 들긴 했지만 대부분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나곤 했습니다. 등과 허벅지가 끈적한 땀으로 범벅된 채로, 손과 발 끝은 몇 분이 지나서야 감각이 돌아올 정도로 저릿저릿했습니다. 전혀 ‘잘 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다시 잘 먹고, 운동을 하고, 커피를 간신히 참아내고, 몇 시간 동안 천장을 쳐다보다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나는 생활을 2주간 반복했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지치고, 피로한 심신,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정신과‘라는 이름이 주는 특유의 낯선 기세에 눌려 차마 병원 문은 열지 못하고 비상계단에서 청승맞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머뭇거림이었습니다만, 덕분에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결정을 망설이는 중이라면, 혼자서 비상계단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편이 좋습니다. 만원 엘리베이터라면 더욱 훌륭합니다.


발을 밟히거나 잠시만요, 잠시만요 하며 불편한 순간을 겪다가 어찌어찌 내리고 나면, 세상엔 당장에 버튼을 누르고 양해를 구하고, 때로는 화를 내며 비집고 내려야 할 잡스러운 문제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진정으로 오랜 숙고를 거쳐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튼 나는 훕, 하고 기합을 넣고서 비상계단을 빠져나와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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