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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04. 2020

절제의 경지

마츠 다카코 with 나카시마 테츠야




<고백>(2010)

<온다>(2018)

Feat. <콰르텟>(channel J)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고백>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그는 내게 <콰르텟>의 ‘마키 마키 상’이었다. 유한 듯한데 고집이 있고, 똑 부러지는 듯한데 엉뚱한 구석이 있고, 종종 주변과 관객의 예상을, 와장창 깨트리는 정도는 아니고, 툭 넘어뜨리곤 하는 인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오밀조밀 말하고, 상큼하고 시원하게 웃어서, 그녀를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2020년, 나는 <온다>를 보고 무당님께 반하게 된다. 깔끔하고 깍듯한 그에겐 어두운데 음흉하지 않은 포스가 좔좔 흘렀다. <고백> 포스터를 가득 채운 그 얼굴을 아무 생각 없이 보다, 기억 속에서 그가 바로 ‘마키 마키 상’이라는 사실을 건져내자마자, 입에서 실제로 헉 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다>와 <고백>의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그가 만든 영화를 볼 때마다 조금씩 후회하는데도, 다음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나, 단순히 강한 자극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어쨌든, 작품 속 이 배우의 모습만큼은,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백>의 선생님, <온다>의 무당님. 처음과 끝을 담당하며, 이야기와 장면의 가치를 높이는 연기를 툭 떨어트리는, 그의 이름은 마츠 다카코다.



<고백>(2010) 포스터.


떠들썩한 중학교 교실에서 시작되는 <고백>(2010), 유코는 목소리부터, 배경 음악처럼 등장한다. 모습도 학생들 사이에 섞여, 지나가듯 카메라에 비친다. 어중간하게 긴 머리에 무채색의 단정한 옷, 전혀 시선을 끌지 않는다. 그의 대사는, 일정한 톤으로 거의 끊기지 않고 30분 동안 이어진다. 헌데 지루하지 않다. 미안하지만 연출 덕은 아니다. 책을 먼저 읽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집중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연기다. 마츠 다카코는, 수수한 분장으로 관객을 방심시킨 후, ‘교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비로소 카메라의 중심에 위치하고부터, 천천히 화면을 휘어잡는다.  


기나긴 대사를 읊는 동안,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곧은 자세로 천천히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걸음과 말의 끊김이 절묘하고 일정한 리듬을 이룬다. 얼굴은 창백하고, 목소리도 그렇다. 예의 바르지만, 건조하고, 스스로의 표현처럼 차갑다. 과하지 않게 냉소적이다. 정제된 높은 톤인데, 가라앉아 있고, 딱딱 끊어지는 말끝이 조금씩 까지듯 갈라진다. 그 차분함이 되려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한다. 강조는 소리를 지르거나 드라마틱하게 강약을 조절하는 대신, 언성을 약간 높이는 정도로 한다. 그래서, 문을 탁 닫거나, 교탁을 짚거나, 예상치 못한 순간 말을 멈추는 등 작은 행동들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의미가 생긴다.


사이사이 편집으로 들어간, 활짝 웃거나 엉엉 우는 과거의 유코와는, 다른 사람 같다. 딸의 죽음을 설명할 때마저, 드러나는 동요가 없다. 허나 “마나미는 이제 없어요.”라고 하는 목소리는, 일정한 그대로 착 가라앉는다. 짧은 문장 사이에 공백을 둔다. 눈은 앞을 향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의미 있는 봄방학을 보내라’고 마무리하며, 미세한 미소를 띤다. 기분이 좋아서 활짝 웃는 게 아니다.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상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자의 마음도 똑같이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데에 성공한 -승리의 미소 라기 보단, 해탈한 홀가분함에 가깝다. 입꼬리엔 미소가 떠 있고, 눈은 빛나고 있으나, 밝거나 맑지는 않다.  


<고백>(2010). IMDB.



초반 삼십 분을 휘감고 사라진 유코는, 후반 삼십 분을 남기고 다시 등장한다. 나오키가 엄마를 죽인 사건 후, 베르테르와 카페에 있는 모습이 미즈키의 눈에 들어온다. 밝게 웃는 가족을 사선으로 무심히 응시한다. 초반과 비슷하나, 더 멍하게 풀어져 있다. 미즈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슥 올려놓는다. 앞으로 몸을 굽히고 눈을 맞춘다. 사실 베르테르를 조종한 것이라며 웃는다. 얼굴 근육을 굳힌 채, 최소한만 움직여 웃음기를 입힌다. 역시 그대로 높지만, 탁하게 톤 다운된 목소리로, 힘을 빼고, 강약 없이 말을 늘어놓는다. 변화가 없는데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여러분은 의외로 착하다’며 알 듯 말 듯한 정도로 이목구비를 슬며시 일그러뜨린다. 그 묘한 비웃음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 식으로 유코는, 등을 의자에 기댄 채 고개를 툭 사선으로 돌려 어떤 점을 응시하다가, 별안간 몸을 앞으로 굽히고 상대를 뚫어져라 보는 자세를 적절히 섞으며 대화한다.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듯한데도, 미리 계산한 것처럼 효과적으로 공기를 압도한다. 먼저 말을 건넨 것은 미즈키이나, 대화의 주도권은 유코에게 있다.


‘슈야는 그저 외로운 거’라는 미즈키의 말에, 유코는 마구 웃기 시작한다. <갈증>에서 고마츠 나나가 웃을 때마다 느꼈고, <고백>에서도 여러 번 느꼈는데, 이렇게 인물이 소리 내어 깔깔 웃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짧게 끊어 편집하는 연출, 굉장히 부자연스러워서 몰입을 방해한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라는 사실을 갑자기 일깨워주려는 의도였다면 성공이고. 아무튼 심오한 감독의 머릿속을 잘 모르는 관객 1로서, 굳이 미친 듯 웃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면, 그냥 하나나 둘 정도의 테이크로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딱히 조심스럽지는 않게) 표출해 본다. 어쨌든 웃는 연기 자체에는 거슬림이 없었다.  


<고백>(2010). IMDB.


웃고 나서 바깥으로 나온 유코는, 어깨에 힘을 빼 살짝 굽히고 일정한 속도로 터벅터벅 걷다가 멈춘다. 손을 힘없이 펴 카페에서 만난 아이가 준 사탕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다시 조금 걷다가 멈추고,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그대로 주저앉는다.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억억 거리며 토해낸다. 웃음 씬과 더불어, 이 순간도 분명히, 나카시마 테츠야 특유의 짧은 테이크와 꽉 채운 사운드가 거슬렸다. 라디오헤드의 음악마저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 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편집이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종종,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괜찮은 각본과 연출을 깎아먹는다거나, 감독과 배우의 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드물게, 과한 연출이 연기를 방해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마츠 다카코의 장면들에서. 흥미롭게도 그 과함을 상쇄하는 역할 또한, 그의 담백한 연기가 한다. 짧고 진하게 울고 난 후, 슥 일어서서 차갑게 ‘바보 같아’라고 툭 뱉곤 다시 걷기 시작한다.


<고백>(2010). IMDB.


유코는, 마지막 순간 슈야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시니컬한 차분함은 잔뜩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휘청거리며 돌아다니는 슈야와 대조된다. 카메라에 잡히는 건 입술만 움직이는 옆모습 실루엣이 다고, 전화 상의 일정한 목소리만 들리는데도, 장면의 주인공임을 알리는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부터, 마침내 빛으로 나와,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다. 무표정으로 똑바로 앞을 보며 “쾅 하고!” 라고 배에 힘을 줘 소리 지르듯 뱉는다. 쌓인 분노를 정제해 그 구절에 함축한 것 같았다.


슈야가 절규하다 지쳐 쓰러지고, 학생들에 둘러싸인 채 엉엉 울기 시작하자, 유코는 그에게 유유히 걸어온다. 몸 전체를 차분히 낮춰 엎어진 슈야의 머리를 잡고, 그렁그렁한 눈에 힘을 줘 똑바로 마주한다. 눈물 때문에 꽉 막힌 목소리로, 대사를 씹어 뱉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듯 눈을 굴리고, 웃는데, 얼굴이 찌그러지며 눈물이 또 흐른다. 화면이 꺼지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것, 혹은 둘 다가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장난이에요.” 그 간단한 대사가 주는 임팩트는, 영화를 끝내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고백>은 시작도, 마무리도, 마츠 다카코의 목소리가 한다. 그러고 보니, 감독의 선택은 영리했다. 본인의 취향대로 만들고, 처음과 끝을 마츠 다카코에게 맡겨, 균형을 맞췄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기는, 전체적으로 불필요하게 과하고 산만했던 연출 대신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줬다. 그리하여 마츠 다카코가 나오지 않는 중반부에 몰입도가 떨어졌던 점이, 뛰어난 연기의 역효과라면 역효과였다.



<온다>(2018). IMDB.


<온다>(2018)는 <고백>에 비해, 과감히 과하게 편집할 부분은 하고, 배우에게 맡길 부분은 맡겨 상대적으로 정리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고백>에서 이야기를 열고 닫아 줬던 마츠 다카코는, 이번엔 대대적인 마무리를 맡는다, 고 쓰고 보니, <온다>의 본격적인 시작도, 마츠 다카코의 목소리다. 그의 말엔 뭔가가 있다. 매우 또랑또랑한데 새되지 않고 풍부하며, 발음뿐만 아니라 흐름과 호흡, 입모양까지 정확하다. 그 동요 없는 목소리는, 히데키의 생사가 갈리는 순간, 어떤 공포에 질린, 어떤 괴기한 목소리보다 더,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그와, 자잘한 감정을 온몸에 드러내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연기가 대조되어 정말로, 덜덜 떨면서도 눈을 스크린에서 뗄 수가 없었다.


고토코에 마츠 다카코를 캐스팅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니 감독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실 연기나 연출의 방향이 원작의 묘사와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데, 오히려 그래서 캐릭터와 영화의 흥미를 더했다. 좀 더 세련되고 권위적인, 대놓고 강한 이미지다. 항상 효율적으로 움직여 필요한 말과 동작을 절도 있게 한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빛과 말투, 흐트러짐은 없다. 유코의 절제가 상황과 사건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면, 고토코는 ‘원래 그런 사람’ 같다. 원작의 고토코도 물론 최종적으로 강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쌓은 경험과 괴로움이 슬쩍 엿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이 고토코는, 날 때부터 강한 느낌. 아마 각색하며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을, 애매하게 드러내느니 삭제해 버린 것일 테고, 개인적으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온다>(2018). IMDB.


마츠 다카코가 곧은 자세로 당당히 서서 상대 대신 허공에 눈을 둔 채로, 건조하고 차갑게 의미심장한 말을 읊으면, 그 순간의 모든 요소가 너무 완벽해서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문을 외는 씬에서는, 평소와 아예 다른 발성을 사용한다. 무당이나 승려가 염불을 욀 때 들어가곤 하는 울림이 들어간다. 캐릭터의 개인적 특징이 빠지고, 완전히 공적 인물이 되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형성한다.


<온다>(2018). IMDB.


그리하여, 고토코에 대해 새삼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짚고 넘어가야 할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혹시나 그냥 넘기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듯한 행동이 특징이나 매력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특이하고 특별한 인물인 경우가 오히려 더 그런데, 고토코가 노자키와 대화하며 라멘을 먹는 장면이 바로 그랬다. 간단해서 엄청났다.


평범한 식사다. 대화와 함께 이루어지기에, 식사 자체에 포인트가 잡힌 것도 아니다. 그런데 뭔가 있다. 무언가를 먹으며, 그것도 국물이 있는 면을 먹으며 대화를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고토코는 깔끔하게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태연히 말을 늘어놓는다. 정자세지만, 너무 각이 잡혀 있지는 않아, 부담스럽거나 뻣뻣하지 않다. 먹는 모습 자체를 보면, 식사, 보다는 에너지 보충, 같은 느낌인데, 과장하지 않으면서 맛있게 야무지게 먹는다. 고토코가 입에 넣는 것은 마지막 한 입까지 낭비되지 않고 그녀의 힘이 될 것 같다. 완벽하게 면을 흡입하는 사이, 신기하게 정확한 발음과 일정한 말투로 주르륵 대사를 늘어놓는다. 시선은 대화 상대에 두지 않는데, 그렇다고 필사적으로 음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대화와 식사 모두에 집중하는 동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입의 말하는 기능과, 음식을 먹는 기능, 두 가지 모두 작동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 완전한 균형을 이룬다. 식사를 끝마친 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하는 정성스럽고 공손한, 그러나 여전한 말투의, “잘 먹었습니다.”까지.(이 특유의 잘 먹었습니다는 뒤에 음료수 씬에서 다시 나온다.) 이와 더불어, 굿이 한창인 와중 정신 못 차리는 노자키를, 감정이 담기지 않은 동작으로 챡 챡 때리는 장면은, 이미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가 됐다.  


<온다>(2018). IMDB.



마츠 다카코는, 몹시 개인적인 유코와, 최종적으로 공적인 고토코 모두를 같은 톤으로 소화한다. 그럼에도 확실한 차이가 느껴지는 건 분장이나 연출 때문만이 아니다. 비슷한데 다른, 연기다. 표정과 말투, 동작에서 감정을 최소화하고, 말을 또르르륵 늘어놓는 형태는 비슷한데, 유코가 감정을 절제한다면, 고토코는 배제한다. 제스처를 살펴보면, 유코는 자잘하고 부드러운데 절도 있고, 고토코는 대놓고 위엄 있고 딱딱 끊어진다.


<고백>의 첫 챕터는, ‘유코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는 유일하게 내레이션 없이 고백하는 인물이다. 속마음을 관객에게 읽히거나 들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만큼 자발적으로 드러낸다. 말이 드러내지 않는 부분을 짐작하게 해 주는 건, 과거 모습을 보여 주는 연출이 아니라, 절제된 표정이다. 뉘앙스는 인물마다 다르지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마츠 다카코에게, 위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종적인’ 역할을 맡긴다.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폭발시키면, ‘잘하는 연기’라는 티가 난다. 스다 마사키 글에도 언급했듯, 절대 비꼬는 건 아니다. 허나 이런 연기, 감정을 삼키는 정도도 아니고 절제해 가둬 버리는 연기- 아예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고, 갇혀 있는 감정을 관객이 알 수 있게도 하는(,그게 대사의 내용 때문이 아닌), 그런 연기를, 마츠 다카코는 한다.


<온다>(2018).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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