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트하우스>, <라이프>, <하이 라이프>
로버트 패틴슨을 쓰며 적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것이 아닌, 대강만 정리된, 메모들.
이 배우가 너무 작품을 잘 고르는 탓에 생겼다.
* <하이 라이프>(2018) 핵심 서사 포함.
<더 라이트하우스>
: 흑백화면의 역할에 대해
<프란츠>의 경우, 무채색은 깔끔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주며, 인물과 감정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종종 색이 쓰이는 부분에서 의도가 더욱 드러난다. 이와 달리, 이 작품에서의 흑백은, 배경의 칙칙하고 축축하고 지저분한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현실감을 낮추고, 영화 속 인물들과의 거리감을 부여해 냉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갈수록 극한으로 휘몰아치는 상황과 감정의 톤을 정리해, 관객이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해 준다. <기생충> 흑백판이 아주 약간 겹쳤다.
<라이프>
: 데니스 스톡 캐릭터의 어떤 태도에 대해
나는 그 데니스의 애매한 예의바름이 좋아. 끈질기게 부탁하면서도 아주 염치없거나 뻔뻔하진 않은 거. 집 주소로 찾아와서는 쭈뼛거리며 집 주소를 알게 된 경로를 간단히 언급하거나, 숨어 있다가 뒤쫓아와서도 겸사겸사라고 얼버무리거나 하는 거. 지미도 그걸 느꼈기에 데니스를 편하게 대하고, 고향까지 따라오게 뒀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를 이용만 해 먹으려는 느낌이 아니라, 뭐 이것저것 태도나 종류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예술가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진지한 존중이 묻어나는 걸 직감해서.
데니스는 지미와도, 미스터 워너와도 다르다. 생활을 하다 재능을 발견하고, 재능이 열정으로 이어진 케이스랄까. 그러나, 자신이 뭘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안다. 그게 굳이 하고싶은, 게 아니어도 뭐. 넥스트 무브를 이야기하는 데니스는, 딱히 우쭐해 보이거나 하진 않지만, 보다 안정되고 여유로워 보인다.
<하이 라이프>
: 어떤 장면들에 대해
클레르 드니 감독은 닳고 닳은 플롯을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어 괴상하고 생소한 무언갈 창조했다. 박사의 긴 머리는 창세기의 뱀을 암시하는 듯한데, 그녀는 약을 이용해 신, 창조주로 군림한다. 죄를 지었기에 디스토피아 에덴에 들어올 수 있었던 아담과 이브 후보들. 체르니는 사람이 아니라 흙과 식물에 의지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브, 보이즈는, ‘잠들지 않는’ 비행사 난센을 죽이고 블랙홀로 들어가 자살한다. 몬테는, 성폭행을 당해 아버지가 된 아담이다. 현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픽션에서 성폭행을 당해 낳은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서사는 드물지 않다. 몬테와 같은 케이스는 정말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로 욕망의 주체는 남성, 대상은 여성이었다. 몬테는 박사에 의해 욕망의 대상이 될 뿐, 아무도 그누구도 욕망하지 않는다. 냉동된 몸들을 꺼내며 몬테는, 난센의 얼굴을 아련하게 보고, 밍크를 들며 ‘너무 가볍네’라고 중얼거린다. 저이들과 무언가 욕망이나 애정으로 얽힌 클리셰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틀렸다. ‘개 때문에 친구를 죽였던’ 몬테는, 어쩌면 애초에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욕망과 기대가 꺼진 채여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이를 해하는 것을 참지 못해서일까, 보이즈를 강간하려 했던 남자를 거의 반 죽여놓는다.
몬테는 자기 침대로 기어들어 온 윌로우의 머리카락을 무심결에 쓰다듬다가, 의식하는 순간 질색하며 밀어낸다. 딸이 생리중임을 알아채는 시선을 굳이 카메라에 담은 의도는, 근친상간을 통해 인간의 ‘본능’, 종 유지의 ‘의무’를 따르는 크리피한 클리셰가 일어날 ‘전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블랙홀로 향한다. 형식적으로는 때마침 블랙홀이 등장해, 몬테가 원래 우주선에 태워지며 배정 받은 ‘임무’에 순응하는 것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의무’ 혹은 ‘본능’을 저버리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걸 영화 감상으로 좀 발전시키고 싶었으나 실패하여 이렇게 대강 올린다.
볼 때는 대체 쟤는 왜저러고 쟨 또 왜저래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데, 자극이 되게 고요하게 온다. 장면들을 계속 곱씹었다. 뭘 봤을 때 또 이런 기분이 들었더라, 곰곰 생각했다. 언더더스킨? 멜랑콜리아? 음 어쩐지 왓챠에 검색했더니 ‘재밌게 보신 <멜랑콜리아>와 비슷해요’ 라고 알려주더라. 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기분. <멜랑콜리아>는 잊을 만 하면 다시 보고 싶던데, 이건 어떨지 잘 모르겠다. 영화관에서 볼 것을- 하는 후회는 들었다. 물론,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하여 영화가 별로라는 뜻은 아니고, 지금은 그렇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로우>도, 처음 본 직후엔 절대 재관람이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으나, 요새 약간 땡겨서 스스로 놀라고 있다. 아무튼 클레르 드니 감독 영화를 쭉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몬테의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하고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도 로버트 패틴슨 캐스팅 해 줬으면 좋겠다.
+ 그리고 여기까지, 로버트 패틴슨 관련 글에 언급한 작품들. 유독 쓸데없이 많았다. 짐 자무쉬 <온리 러버즈 레프트 얼라이브>, 프랑수아 오종 <프란츠>, 테리 길리엄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봉준호 <기생충>, 조나단 글레이저 <언더 더 스킨>, 라스 폰 트리에 <멜랑콜리아>, 줄리아 뒤콜뉴 <로우>, 미하엘 엔데 <모모>,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굿바이 베를린>. 영원히 언급되는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어쩌면 나는, 마이 아이돌 C.I.를 아무데나 언급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아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