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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an 27. 2019

킹프린세스, 클리셰를 클리어시키다.

King Princess



-뮤지션: 킹프린세스(King Princess)


공주princess는 왕king이 될 수 없다. 왕자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석의 내러티브다. 왕이 된 왕자의 옆에서 아름다운 왕‘비’로 인형처럼 서 있는 것이 공주의 운명이자 가능한 행복이다. 1998년에 태어나 2018년에 첫 EP앨범을 낸 뮤지션 ‘KIng Princess킹프린세스’는 이 모든 클리셰를 무너뜨린다. 단순히 비트는 것만이 아니라 뿌리부터 뽑아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단어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있다면, 지금이 21세기 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프린세스는 킹이 될 수도, 프린세스라는 이름을 버릴 수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킹프린세스’라는 이름은 공주가 ‘여’왕 이나 ‘여’신이 아니라 그냥 ‘최고’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허면 그의 음악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가 말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Make My Bed’ EP앨범 커버.

 

I hate it when dudes try to chase me

남자애들이 날 따라오는 게 싫어
But I love it when you try to save me
그치만 네가 날 구해주는 건 좋아
'Cause I'm just a lady
난 그냥 여자일 뿐이거든

-‘1950’('Make My Bed' EP 수록곡) 중.

‘너’는 여성이고, ‘나’도 여성이다. 이 전제를 깐 상태에서 가사를 읽고 느껴지는 불편하거나 이상한 감정의 농도는, 당신이 편견에 휩싸여있는 정도다. 여성인 킹프린세스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배우 아멘들라 스텐버그Amandla Stenberg와 공개연애중인 그는 미디어가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를 쓸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데뷔 컨셉 자체가 본인의 성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음악으로 솔직하게 삶을 표현하고 있으니, ‘컨셉’이라고 할 것도 없겠다. 앞에서 말했듯 21세기 말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 수도 있겠으나, 놀랍게도 21세기 말 현재에 여전히 파시스트와 호모포비아들이 떳떳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까닭이다.
 

레인보우 깃발을 두르고 공연하는 킹프린세스.


그는 차별과 편견에 대응한다기보다는 그 자체를 ‘클리어’시킨다. 뮤직비디오나 공연장에서의 모습을 보면 미디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소년’을 떠오르게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컨셉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깨트린다. 공연장에서 “Is gay folks are here?여기 게이 친구들 있나?" 라고 묻기도 하며, 관객을 향해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기도 한다. 스무 살 남짓 먹은 뮤지션의 행동이라기엔 ‘당돌한가’? ‘도발적인가’? 그의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그러한 상투적인 평가조차 부끄럽게 만든다.


다섯 곡이 담긴 EP앨범과 싱글 한 곡을 냈을 뿐이지만,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노래하는 그의 음악에는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EP앨범에 담긴 곡 'Talia'를 예로 들어보자. 곡을 만든 아티스트의 성 정체성과 음악적 특성으로 미루어 볼 때 Talia탈리아는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Talia'가 평균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쓰이는 이름이라는 까닭만으로 여성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I can taste your lipstick’이라는 구절을 듣고 탈리아의 젠더를 예측할 수도 있겠으나, 립스틱이 여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며 모든 여성이 립스틱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킹프린세스 자신도 립스틱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들을 때는 곡이 노래하는 대상을 전형적인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더라도, 가사를 곱씹다보면 점점 규정할 수 없어진다. 탈리아를 지칭하는 말이 ‘she그녀’ 가 아닌 ‘you너’ 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Talia’ 싱글앨범 커버.


사실 킹프린세스가 곡을 쓰며 설정한 Talia의 젠더는 예상대로 여성이 맞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녀’는 ‘섹스 돌’이다.


https://youtu.be/43n1wghXRGM

‘Talia’ 뮤직비디오.


“성적으로 대상화된 활기 없는 백인 여성에 대한 서구적 집착이 존재하며, 이성애자 남성들은 이들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원하는 대로 다루도록 허용된다고 느꼈다. 그걸 (여성 신체를 지닌) 퀴어 섹스 돌(과 여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Rolling Stones 인터뷰]


해석을 보고 듣기 전에 곡 자체로만 들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킹프린세스가 노래하는 대상은 소비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는 점은 게이 여성인 그의 음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뮤직비디오나 인터뷰에서 아티스트의 시각적, 언어적인 설명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두 측면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50’ 싱글앨범 커버.


Tell me why my gods look like you

왜 내가 믿는 신들이 너처럼 보이는지 말해줘
and tell me why it's wrong
그리고 왜 그게 틀린 건지도

-‘1950’('Make My Bed' EP 수록곡) 중.

스무 해 정도 살아 온 이 아티스트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보통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대상에 대해 쓰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개인적인 사랑의 경험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Upper West Side'('Upper West Side'-'Make My Bed' EP 수록곡)에서 킹프린세스가 만났던 이는, 부와 사치에 파묻혀 멋져 보이지만, 사실 남들의 시선 밖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너’다. ‘너무 부유해서 다이아몬드 체인을 사고, 친구들에게 가짜라고 거짓말할 때 멋져 보이는’, 그러나 ‘망가진 마음으로 춤추는’-킹프린세스는 ‘너’에 대한 느낌을 말함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다. “I can't stop judging everything you do네가 하는 모든 것을 평가하게 돼, 멈출 수가 없어.” 라는 구절은, 이 말들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솔직한 느낌과 생각을 담고 있음을 드러낸다.


https://youtu.be/62fsOE7rZx8

‘Upper West Side’ 뮤직비디오.



“나 자신보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게이 피플에게만이 아니라 음악 산업에서 활발한 목소리를 내고 싶다. 우리는 르네상스에 있고,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 예술에 메시지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
[Rolling Stones 인터뷰]


가장 최근에 낸 싱글 ‘Pussy is God’은 농담으로 느껴질 정도로 솔직하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메세지를 담은 예술 작품’이다. 수많은 남성 뮤지션들이 그랬듯 한 여성을 성적인 방향으로 묘사하지만, 화자는 여성이며 그 자신이다. 여성 전체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여성을 (긍정적으로) 대상화한다.

뮤직비디오는 또 어떤가. 검열에 엿을 날린다. 검열로 인한 모자이크는 보통 화면에 나오기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신체 부위나 약물 등의 위에 덮이는데, 그 자체로 보는 사람에게 묘하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Pussy is God’의 뮤직비디오에는 ‘민감한’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부분만이 아니라 오만 군데에 의미 없는 모자이크 처리가 남발되어 있다. 왜 우리는 신체부위를 부끄러워하는가? 왜 여성 동성애자는 비가시화 되는가? 킹프린세스는 가장 유쾌하고 그다운 방법으로 질문을 던진다. ‘Pussy is God’은 한 여성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아직도 변화가 필요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다.

https://youtu.be/ZGIkGbs1VEc

‘Pussy is God’ 뮤직비디오.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순수하게 ‘음악’적인 면에서만 살펴봐도 그는 엄청나다.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은 독특한 목소리는 있는 그대로 매력적이며, 기타를 치며 공연하는 모습에서는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가 발매한 곡들은 모두 스스로 쓴 ‘자신의 곡’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고 소화하는 재능이 있는 뮤지션이라는 말이다.


그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자녀의 보컬 능력을 자유롭게 키워줄 안목을 지녔고, 어린 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음악 산업 관련자들을 막아주기도 했던 아버지를 두었다. 허나 음악적 재능이나 배경이 모든 것을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고민, 그것을 음악으로 구성할 의지와 용기가 미카엘라(Mikaela Straus: 킹프린세스의 본명)에게 없었더라면, ‘킹프린세스’도 없었을 것이다.



* 참고 인터뷰:

https://www.google.co.kr/am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king-princess-interview-profile-714458/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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