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the Dog
<The Power of the Dog>, Jane Campion, 2021
<The Power of the Dog>, Thomas Savage (original)
* 두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문장과 핵심 전개 포함.
* 인용 출처는 전부: [Thomas Savage, <파워 오브 도그>, 민음사, 장성주 옮김]
“필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확인하고 싶게 마련이었다. 남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인지, 아니면 그 생각은 자신만의 착각이고 남들에게는 본모습이 있으며 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 아닌지를.” (p. 106)
원작 소설이 궁금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렇게 찾아 읽은 후, 영화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소설을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싱글 맨이 그랬고, 분노가 그랬다. 파워 오브 도그는….. 고를 수 없었다. 소설과도 사랑에 빠졌고, 영화는 전보다 더 사랑하게 됐다. 분명 이야기는 토마스 새비지의 것이었지만 제인 캠피온이 필름의 언어로 바꾸며 좀..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이미 영화를 두 번 본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도중 몇 번 멈췄다. 몰입도가 굉장했기 때문에 밤을 새서 한번에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너무 두근거렸고, 조금 아까웠다. 사흘에 걸쳐 천천히 읽으며 중간중간 덜 두근거리는 다른 픽션 세계를 돌아다니며 진정했다. 보던 TV쇼 들도 마저 보고, 코디 스밋 맥피가 나온 애매한 SF도 보고, 하우스 오브 구찌(이건 좀 위험했는데 종류가 다른 두근거림이어서 다행이었다.)도 봤다.
영화를 본 후 쓸 말이 생겼지만 쓰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고 싶었다. 왠지 어떻게 완성해도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배우에 관한 글에 슬쩍 감상을 끼워 넣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래서 뭐 이것도, 진지한 글은 아니고 그냥 감탄 모음 같은 거다. 거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원작과 영화 모두에게 감탄했다. 전개를 알고 있는 상태여서 더 굉장한 기분이 들었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사건들의 맞물림을 다 알게 되고, 영화를 보며 짐작하거나 궁금해했던-각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서술을 읽으니, 아 이게 저래서 저렇게- 하고 내내 짜릿했다.
어떤 장면들은 원작 그대로다. 로즈와 피터의 ‘unreachable’에 관한 대화, 피터의 캣워크 씬 같은 건 완전히 그대로. 여기선 배우들이 끌어냈던 미묘함과 깊이를 떠올리고 놀랐다. (원작에서는 자세히 서술된) 복잡한 심리를 눈빛으로 다 말해 주는 커스틴 던스트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피터의 독보적인 느낌을 정확히 입은 코디 스밋 맥피. 요소를 추가해 멋진 장면이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필과 피터가 처음 레드밀에서 만날 때, 필이 꽃에 불을 붙이는 건 원래는 없던 행동이었다. 로즈가 네이티브에게 호의를 베푸는 에피소드와 가죽을 파는 에피소드는 별개의 것이었는데, 하나로 엮으며 로즈에게 장갑을 끼워 상징성까지 부여했다. 로즈&조지 서사가 생략된 건 조금 아쉽긴 했는데(조지가 로즈에 대한 필의 비웃음에서 자신이 이제껏 겪은 비웃음을 겹쳐 봤다는 것도) 몇 장면으로 감정이 설득돼서 그것대로 감탄했다.
초반 화면에 잡혔던 화재 피신용 밧줄이, 조니가 목을 맸던 그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스크린용 각색이란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원작을 존중하는 와중 선택과 집중이 탁월했다. 토마스 새비지는 조니 고든은 물론 에드워드 나포와 그의 아들, 버뱅크 노부부, 심지어는 주지사 부부에게까지 깊이와 입체성을 부여했다. 그 멋진 대화들을 포함 시키고 싶은 유혹이 들었을 텐데, 제인 캠피온은 과감히 쳐냈다. 배우나 연출의 분위기로 대체했다. 짧게 등장하는 버뱅크 부인이 왜 굳이 프랜시스 콘로이여야 했을까- 에 대한 답이 원작에 있다. 조니 고든과 필 버뱅크의 역사도 생략했다. 러닝타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짧은 장면이나 이미지로 함축한 반면, 피터와 필의 장면들은 쪼개 늘이거나 추가했다. 원작에서는 피터가 개의 형상을 봤음을 필에게 말한 후, 그의 아버지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영화에선 각각의 씬이다. 필이 마지막 밧줄을 완성하는 (필름 역사에 길이 남을) 그날 밤의 장면들도, 원작에는 간단한 상황 설명만 있다. 그리하여 전체 대비 피터-필 씬의 비율이 상당히 늘어났다. 그게 다 하나하나 너무 명장면이었다. 세상에, 원작을 읽으며 더 없어? 하고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나 필은 알았다, 뼛속 깊이 잘 알았다. 추방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그는 세상을 혐오했다,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 (p. 348)
[작품은 처음부터 필의 뺨에 진득하게 묻어나는 고독과 불안을 포착했다. 똑똑한 겁쟁이인 그는 약자를 밟고 파워플레이를 하며 그것을 감춰 왔다. 제 몸은 씻지 않으면서 헨리의 안장은 날마다 정성 들여 닦는 그. ‘남들보다 잘났다’는 감각은 브롱코 헨리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겼다는 감각, 결국 자기혐오와 만나는 사랑의 기억이다. 언뜻 피터의 브롱코 헨리가 되려는 듯 보이나, 처음부터, 피터에게서 그의 흔적을 느끼고 끌렸던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You are a lonely, lonely man.”이라던 제이처럼, 피터는 그것을 꿰뚫어본다.]
(코디 스밋 맥피 글에서 옮김)
“피터는 알았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들도 그리고 할아버지들도 일찍이 또 다른 원을 이루고 서서, 누군가 다른 외톨이를, 다른 괴짜를 괴롭혔으리라는 것을.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장차 똑 같은 원을 이루고 서리라는 것을.” (p. 50)
피터의 어린 시절을 생략한 대신, 현재의 모습에 집중해 그의 됨됨이를 드러냈다. 종이꽃 씬이나 훌라후프 씬 등이 생겨났다.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다. (사실 거의 모든 장면이 좋다) 조니를 등장시키지 않은 대신 피터에게 아빠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를 택했고, 배우가 잘 소화했다. 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의 스피리츄얼 사이드를 보고 문신을 한 신부님에 캐스팅했다는 얀 코마사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피터는 동물을 죽여 벗긴 가죽으로 밧줄을 엮지도, 금방 시들어버릴 생화를 꺾어 모으지도 않는다. 종이를 잘라 자기만의 꽃을 만든다. / 동떨어진 곳에 홀로 섰기에,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핵을 꿰뚫었던, 그의 아버지 말대로 “too strong”한, 피터. 그는 “another man”이 되기를 거부하고, “the power of the dog”을 물리쳤다.] (코디 스밋 맥피 글에서 옮김)
“상냥함이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앞길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려고 애쓰는 거란다.” (p. 68, 조니 고든)
“상냥함이란! 그걸 빼면 세상에 남는 게 뭐가 있을까?” (p. 358, 버뱅크 부인)
피터는 그렇게 ‘상냥’해짐으로써, 로즈 앞에 놓인 걸림돌을 치움과 동시에 조니의 빚을 갚았다. 아버지의 의학서에서 얻은 지식으로 필을 죽음으로 인도했고, 필의 장례식 날 홀로 기도문을 읽으며 비로소 아버지를 애도하였다.
토마스 새비지는 원래 알던 작가는 아니었다. 찾아보니 그의 작품 중 한글로 번역된 건 <파워 오브 도그> 하나 뿐인 듯했다.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부족하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도 한글로 번역된 것이 세 권 뿐이어서 원서로 잔뜩 사 놓고 겨우 세 권 째-이해도 완전히 못하면서- 읽고 있다. 토마스 새비지도 원서로 사야 하는 걸까. 영어 공부를 진짜로 해야 되나 보다.
멋진 소설을 읽으면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멋진 영화를 보면 인물의 심리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를 먼저 보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영화를 또 보고 싶어졌다. 이미 극장에서 두 번 봤다. 넷플릭스에도 있는 거 아는데, 아직 스크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면 굳이 또 가서 보고 싶다. 그러고 나면 다시 책을 읽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읽고 나면 다시 영화, 다시 책, 영화, 책….. 그렇게 파워 오브 도그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걸까……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