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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ul 22. 2024

“디지털 목격자”들

에 관한 곡들



하나

Djo - ‘On And On’

Wet Leg - ‘Oh No’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Kinds of Kindness>가 “최근 맞이한 그 자신의 성공에 대한 알러지 반응 같다”[Indiewire]고 표현한 리뷰 헤드라인을 본 적이 있다. Djo의 두 번째 정규 앨범 <DECIDE>를 들으며 그 비유가 떠올랐다가, 곧 가라앉았다. 시니컬하고 차분한 성찰이 매력적인 앨범, ‘거부 반응’보단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관찰하는 태도’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대부분 아티스트와 일치하는 화자는 자주 자신을 돌아본다. 때로 그 시선은 세상으로 뻗는다.


“내 이름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어”라고 말문을 여는 ‘Half Life’에 인터넷 검색창이 열려 있다면, ‘On And On’에는 소셜 미디어 앱이 열려 있다. ‘나’는 “침대에서 핸드폰을 들고” “날마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린”다. 칠한 일렉트로닉-힙합 비트에 로우키 알앤비 팝보컬을 얹어 귀에 착 감기는 질감을 지닌 곡이다. “Scrolling on and on”을 되풀이하는 후렴에는 릴렉스한 분위기마저 있다. 가사가 담고 있는 것은 다수 현대인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행위이기도 하니. 그러나 노이즈와 함께 드럼을 중심으로 고조되는 후반부, 화자는 -아마도 불특정 다수의-상대에게 치명적인 물음표를 던진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그리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 행성을 구하고 싶지 않아?”라더니, “그래, 조종당했다고 탓하려면 해, 우리는 어쨌든 인간이니까.”라고 닫는다. 그 냉소는 리스너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사유의 실마리를 끌어낸다.


https://youtu.be/lbqmWtfb-pM?si=H4Xk-m6wGv8WIkAd

'On And On'


거기 Wet Leg ‘On No’ 겹친다. 데뷔 앨범 <Wet Leg> 수록곡이다. 당시 [리뷰] 적은 묘사를 가져오면, “십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 “옷가지가 널려 있고 땀으로 축축하지만 이상하게 안정을 주는 (딱히 십대의 것은 아닌)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 번갈아 드는 작품이다. ‘Oh No’ “집에 와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 결국 거기 들어가 버린하루에 대한 이야기. 경쾌한 포스트펑크 리듬 위에 문장보단 단어들로 이루어진 가사가 무심한 보컬로 ‘던져진다’. “Suck the life from my eyes / It feels nice / Scrolling, scrolling, Ah!” Djo ‘On And On’처럼 감상에 비판을 얹으며 ‘ 다음까지 바라보는 곡은 아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카드값 문자를 확인하고 “oh no”라고 외치는 ‘ 상태에 초점을 둔다. 어쩌면 그는 다음날 일어나 “오늘은  나가고 싶다”(‘I Don’t Wanna Go Out’​)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일상의 단면과 관계의 파편 사이 애매하게 끈적이는 감정을 다루곤 하는 Wet Leg의 음악. 무게를 덜어내 ‘덜 진지하’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앨범 발매 당시 한 인터뷰에서 메인 송라이터 리안 티즈데일은 “조금의 노력이나 에너지도 요구하지 않는 무언가를 통해 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깨달았다”[Exlaim!]고 말하기도 했다.


https://youtu.be/qXX05S6tiRk?si=wrVuPkg0R7_y2g6T

'Oh No' mv



Arctic Monkeys - ‘She Looks Like Fun’

Bo Burnham - ‘Welcome to the Internet’


이번 두 곡은 송라이터가 화자와 거리를 두고 현상을 풍자하는 쪽이다, 물론 스스로도 현상에 묶여 있음을 인지하는 채로. 5년 만의 정규 앨범을 만들며 (‘우린 이제 더 이상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지 않는다’고 알렉스 터너가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인터뷰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출처를 찾지 못했다.) 하나의 SF 세계를 창조해버린 악틱 몽키즈.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의 배경은 사이버펑크의 냄새가 풍기는 근미래다. ‘She Looks Like Fun’의 화자 역시 그곳의 ‘거주자’이나, 그의 행위는 동시대인의 일상과 흡사하게 들린다. 알렉스 터너가 말했듯 “사이언스 픽션은 우리의 세상을 탐구할 수 있는 다른 세계를 창조”[Pitchfork]하는 법이다.


그는 핸드폰(혹은 근미래의 신제품)을 들여다보며 ‘swipe’과 ‘scrolling’을 계속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록 그룹사운드, 악기 같은 보컬이 “She looks like fun”을 되풀이해 뱉는다. 거기 ‘SNS 피드’가 얹혀 있다. “굿모닝!”, “치즈버거!”, “스노보딩!”, “부코스키!” 그러니까 “She looks like fun”은 화면 속 누군가(실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헌데 여기서 ‘실재’한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를 보고 화자가 떠올린 생각이다. 오프라인 만남은 원치 않는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길거리엔 아무도 없어 / 3월부로 우린 온라인으로 이사했거든”


https://youtu.be/eLYeiimWLoY?si=N4uMZs2atiCbySW0

'She Looks Like Fun'


“There’s no limit to the length of the dickheads we can be”, “Dance as if somebody’s watching, ‘cause they are” : ‘빅브라더’적 존재를 암시하는 ‘She Looks Like Fun’은 듣기에 fun하고도 불편한 트랙이다. ‘Welcome to the Internet’ 또한 그렇다. 보 번햄의 영화 <INSIDE>의 사운드트랙 중 하나인데… 이 영화가 상당히 별거다. 일단은 ‘픽션과 리얼리티를 오가는 구성의 펜데믹 뮤지컬+스탠드업 코미디+다큐멘터리’라고 해두자. 이왕이면 맥락 안에서 ‘시청’하기를 권하지만, 독립된 트랙으로 감상해도 흥미롭다. 보 번햄은 송라이터이기 전에 공연자, ‘Welcome to the Internet’은 뮤지컬극 피스에 가깝다. 마이너 키 피아노와 보컬 위주이며, 가사-언어는 분명하고 드라마틱하게 딜리버리된다.


화자는 인터넷 자체 혹은 친절한 ‘빅브라더’ 류, <Tranquility~>에서 찾는다면, ‘The World’s First Ever Monster Truck Front Flip’ 속, “당신이 버튼을 누르면 우리가 다 해줄게요”라고 노래하는, ‘기계일지도 모르는 화자’와 닮았다. 그가 말을 거는 ‘당신’ 쪽이 ‘She Looks Like Fun’ 속 ‘나’의 위치에 있을 테다.


“Could I interest you in everything all of the time? / A little bit of everything all of the time? / Apathy’s a tragedy, and boredom is a crime / Anything and everything, all of the time”

- ‘Welcome to the Internet’


다크코미디에 어울리게 익살맞고 음흉한 톤으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청자를 “환영”하며 ‘옵션’들을 나열한다.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인종차별적 은어를 트윗하실래요?”, “‘파스타 물을 걸러내는 팁’이 있네요, ‘아홉 살 어린이의 죽음’이 있고요.”, “루머를 퍼트리세요, 빗자루를 사세요, 아니면 베이비 부머에게 살해 협박을 보내시든가요.” 긴 호흡의 가사가 재치있는 운율과 함께 긴박한 리듬으로 이어진다. 상냥하게 ‘가이드’하던 화자는 브릿지에 이르자 “두 살이 채 되기 전에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한” 세대, “unstoppable, watchable”한 이들을 비웃는다. 멜로디가 감미로워 더욱 효과적이다. 딱히 반전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곡 전체에 유혹과 조롱의 기운이 섞여 흐르고 있어서다. 이후 보 번햄은 말그대로 ‘목청을 높여 웃는’데, 최선을 다해 귀를 긁는 그 파동 사이엔 일종의 자조와 자포자기가 자리한다.  


흥과 불쾌를 동시에 유발하는 곡들이다. “이 곡을 쓸 때 내가 약간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Pitchfork]던 알렉스 터너가 그랬듯, 보 번햄은 그 자신을 풍자 대상에 포함한다. 때로 가혹할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유머로 가득한 <INSIDE>를 관람한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k1BneeJTDcU?si=-gZgBkJZ8iyPccDI

'Welcome to the Internet'



그리고

St. Vincent - Digital Witness

 

“Digital witnesses / What’s the point of even sleeping? / If I can’t show it, you can’t see me / What’s the point of doing anything?”

- ‘Digital Witness’


마무리로 세인트 빈센트의 ‘Digital Witness’를 덧붙인다. 실험적 아트 록 마스터피스 <St. Vincent>는 애니 클락이 본격적으로 페르소나 메이킹을 시작한 앨범이다. ‘기계적’인 리프와 보컬 딜리버리, 사회 풍자적인 서사를 지닌 ‘Digital Witness’는 ‘일단’, 세인트 빈센트치고 건조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트랙이다. “TV를 틀면 창문처럼 보이는” 세상, 서로가 서로의 “디지털 목격자”다. 화자는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을 향해 냉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들은 프라이버시도 진실된 공감도 없이, 타인의 디지털 흔적을 늘상 “응시stare”하며, 신경은 쓰지만 마음을 쓰지는 않는(“I care, but I don’t care”) 상태를 유지한다.[brunch] 그러나 거기 (번햄과는 다른 뉘앙스의) 자기파괴적 호소가 숨어있다. 후반부에 후렴은, “내가 런던 브릿지에서 뛰어내리는 걸 봐”로 변주된다.  


최근 인터뷰에서 애니 클락은, “내 suicidal ideation을 어떻게 소셜 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한 곡으로 들리는 ‘Digital Witness’에 넣었는지를 깨닫는 등의 일은 흥미롭다.”[Dork]고 돌이키기도 했다. 곡은 “누군가 날 다시 내게 팔아주지 않을래?”라는 물음으로 끝난다. 이 시기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은 결국 세인트 빈센트의 ‘것’, <All Born Screaming> [리뷰] 도입부에 적었던 ‘송라이터에게로 돌아가는 내러티브’가 여기에도 있다.


https://youtu.be/mVAxUMuhz98?si=PEoOOR0SryeFlAnm

'Digital Witness' mv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소재로 하는 곡은 더 이상 드물지 않다. 그러나 유사한 소재나 주제가 아티스트의 예술적 정체성이나 송라이팅 스타일에 따라 작품 속에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 살피는 일은, 절대 질리는 법이 없다. [대략 20개월쯤 전 완성한 글]에서 저도모르게 빼놓은 실마리를 마침내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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