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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an 15. 2020

You didn’t see that coming?(1)

아론 테일러 존슨(Aaron Taylor-Johnson)(1)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2016, 감독: 톰 포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감독: 조스 웨던)
<앨버트놉스(Albert Nobbs)>(2011,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뒤늦게 <싱글 맨>(2009)을 본 후, 톰 포드의 우아하고 절제된, 왠지 처절한 연출에 반해있던 시기가 있었다. (TMI: 결국 지금은 감독보단 원작자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팬이 됐다) 대충 그런 경로로, 제이크 질렌할과 톰 포드의 만남을 기대하며 본 것이 <녹터널 애니멀스>(2016)였다. 그 예술적으로 불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시나 폭발적이었던 제이크 질렌할과 섬세하게 조여드는 에이미 아담스 외에, 예상치 못했던 종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대놓고 악당으로 설정했더라도, 매력이 있는 인물도, 어느 정도 공감 가능한 인물도 있다. 헌데 이 레이라는 인간에겐, 반반한 외모마저 비호감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매너 없고 지저분하다. 사람들을 괴롭히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실실 웃는 모습도 위협적이다. 나오는 모든 순간 어디로 튈 지 몰라 공포스럽다. 헌데 너무나 자연스러워 말려들게 되고, 말려드는 스스로를 혐오하며 그를 더욱더 혐오하게 된다.


<녹터널 애니멀스>(2016). IMDB


다시 견딜 자신이 없어, 개봉 당시 한 번 보고 다시 찾지는 않았다. 헌데 몇 해가 흘러도 레이가 자신의 행동에 덧붙이던 궤변 만은 기억난다. 빙글빙글 웃으며 발음을 흐리던 그 뉘앙스도. “내 여자가 내가 바람을 핀다고 하면, 난 진짜 바람을 펴. 누가 날 강간범이라고 여기면, 난 진짜 강간을 해.” 그 순간의 레이에겐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일단 무서웠다. 다음 순간 소름이 돋으며, 레이의 옷을 입고 있는 이 배우가 궁금해졌다. 상투적인 은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팔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연기. 잘 하고 말고 와는 상관 없이, 그 배우, 그 인물에게만 있는 종류의 표현으로 만들어내는, 예측을 깨는 연기였다.


<녹터널 애니멀스>(2016). IMDB


레이 마커스 아니, 아론 테일러 존슨의 다른 얼굴들을 알게 된 지금, 그 연기를 이 시점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크나, 두렵고, 본다 해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녹터널 애니멀스>를 같이 본 지인이, ‘쟤 어벤져스 퀵실버잖아’, 라는 정보를 전달해 줬을 때, 나는 경악이란 것을 해 버리고 말았다. 경악은 당연히, 입덕의 신호였다. 누가 그가 한때 킥애스였다고 생각하겠는가. (물론 킥애스도 사랑함)  


<녹터널 애니멀스>(2016). IMDB


 
그리하여 나는 마블 시리즈 중 그다지 취향은 아니었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을, 오로지 아론 테일러 존슨(+폴 베타니 얼굴 첫 등장)을 보기 위해 몇 번을 돌렸던 것이다. 퀵 실버는, 전개에서 하는 역할을 기준으로 입체적이라고 분류할 수는 있으나, 그다지 서사가 깊지는 않은 인물이다. 스칼렛 위치를 쌓기 위한 장치인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아론 테일러 존슨의 연기가 인물에도 작품에도 매력을 불어넣었다. 핵심은 깔끔함이다. 스칼렛 위치의 넘치는 감정과 균형을 이루는 담담한 섬세함. 빠른 속도만큼, 결정도 판단도 유머 감각도 빠른 퀵 실버를, 툭툭 끊어지는 발음과 함께 엑스트라 챠밍으로 표현해줬다.

그리고, 퀵 실버의 속도에 지나쳤던 피에트로 막시모프를 화면으로 불러냈다. “I don’t see the big picture, I only have little picture.” 라는 슬프게 재치 있는 대사와 함께, 울트론에게 부모님이 죽고 동생과 살아남은 과거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약간 도발적으로 분명한 눈길을 보내며 시작하지만, 곧 이야기 자체에 스며드는 듯 누그러들며 눈을 내리깐다. 어조는 차분하다. 힘을 주거나 화로 부들부들 떨지 않고, 오히려 픽 웃기도 하는 그 담담함이, 집중을 불러일으키고, 인물의 감정과 동기를 설득 시킨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IMDB



대피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해하며 어디선가 총을 가져와 허공에 쏘는, 효율적인 성급함. ‘소코비아 사람들은 다쳐선 안 돼’라는 스티브의 말에 눈을 확 치켜뜰 때, 죽기 직전 총알이 날아듦을 감지하던 때와 같이, 평소엔 힘을 빼고 있다가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순간 빠르게 치켜뜨는 눈. 투박하고 시니컬한 말투와 조화를 이루는, 손바닥을 펴고 몸을 뒤로 건들거리도록 재끼며 어깨를 으쓱 하는 몸짓. 울먹이는 완다를 옆에서 안고 진정하라는 듯 머리에 입을 맞춰 주거나, 재킷을 휙 던져 주거나, 생사가 갈리는 전투 도중, “You know, I’m 12 minutes older than you..”라며, 짐짓 시니컬함을 묻혀 장난으로 긴장을 풀어 주는 등 -아무튼 끈적거리지 않게 스윗한 (12분)빅 브라더의 제스처. 연기를 살필 겨를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이 모습들이 바로, 퀵 실버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치고 들어오는, 정확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게 되는, 아론 테일러 존슨의 연기다.

죽음마저 피에트로답다. 붙잡고 늘어지지 않고 유머로 삶을 마무리해 버린다. 아이를 보호하는 클린트에게 날아가는 총알을 몸으로 막는다. 달려온 자세로 멈춰, 눈이 확장된 채, 끊어지는 숨을 버티며, “You didn’t see that coming?”을 짜내 돌려준다. 의문문이지만 내려가는 말끝과 함께, 그대로 쿵 쓰러진다. 감독은 완다가 힘을 폭발시키며 절규 하는 다소 뻔한 슬로우 모션에 더 비중을 뒀으나, 내가 모조리 슬펐던 것은 그 미련도 못 남긴 군더더기 없음 때문이었다. 이렇게 끝낸 덕에, 아론 테일러 존슨이 <녹터널 애니멀스>를 비롯해 더 다양한 작품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쁘지만, 피에트로 막시모프라는 캐릭터 또한 아쉽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IMDB



그러고 보니 그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을 꽤 맡아 왔다. 죄다 ‘악당’으로 분류하긴 힘들다. 피에트로처럼 까닭 있는 안타고니스트에서 조력자로 바뀌는 인물도, 레이와 같은 까닭 없는 본투비 악당도 있었으나, ‘악당까지도 못 되는 나쁜 놈’도 있었다.


<앨버트놉스>(2011)


<앨버트놉스>(2011) 속 조 맥킨스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허우대만 멀쩡하다. 어리숙하고 허술하다. 멍하게 짐을 잔뜩 들고 걷다 눈길에 미끄러진다. 사과는 하지만, 딱히 빌지는 않는다. 신발을 닦으라는 둥 해고하라는 둥 난리 치는 귀족을, 뚫어져라 본다. 화내던 귀족이 주춤 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지만, 깊지는 않다. 그래야만 하므로.

가진 것도 없는 조 맥킨스는 자존심 세고 다혈질이기까지 하다. 일자리를 구하다 거절당하면 발로 닫힌 문을 쾅쾅 찬다. 그에게도 능력이 있다. 뻔뻔력. 보일러 맨을 사칭하며 놉스가 일하는 호텔에 들어온다. 괜히 인상을 쓰고 보일러를 살피는 시늉을 한 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씩 올리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정말 보일러를 고칠 능력이 있으리란 착각마저 든다. 그 뻔뻔함에 보일러도 속아 고쳐 진 것이 아닐까.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듯 있는 힘껏 뜬 눈알을 굴리며 팔자 눈썹을 만든다. 참았던 숨과 함께 “Bloody hell!”을 내뱉고는, 감격에 주저앉으며 두 손을 내밀고 미친 듯 웃어재낀다. 아, 바로 그 ‘블러디 헬’ 이다. 아론 테일러 존슨은 억양을 정말 탁월하게 바꾼다. 물론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의 국적에 따라 같은 언어의 억양을 바꾸지만, 아론 테일러 존슨은, 엑스트라로 자유자재다. 다른 글에도 종종 쓰는 말인데, 나는 배우가 ‘언어와 소리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좋아진다.


<앨버트놉스>(2011). 세상에 아니고 Bloody hell.


호텔 직원들과 처음 만나는 그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눈알을 굴린다. 무표정으로 노려보듯 보는데, 불만이 있거나 센 척을 하는 건 아니다. 일상적인 경계다. 보호막을 말없이 두르기보단, 핑퐁식 대화로 치며 풀어낸다.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아, 한쪽 입꼬리와 눈썹을 올린 그대로 말을 주고받는다. 아니, 익살맞게 눈을 크게 뜨며 수프를 떠먹는 걸 보니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 같다. 뒤에 설명할 브론스키와 정 반대에 있는 조 맥킨스만의 매력이다. 매너 없음, 생각 없음, 신분 없음, 돈 없음, 예의 없음. 그러나 미워할 수 없음.


<앨버트놉스>(2011)


떠나는 페이지를 바라보는 앨버트 뒤, 엑스트라처럼 그가 잡힌다. 한껏 어깨와 다리를 벌리고 담배를 피운다. 폼을 잡으려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 폼 잡은 것처럼 보이는 와중 폼이 없다. 그 폼 나는 비주얼로 그리 없어 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인상을 쓰고 의미심장하게 앨버트를 훑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헌데 비슷한 눈길이 잊을 만 할 때 다시 발생한다. 사다리에 올라가 일을 하다, 마차 문을 열어주고 팁을 받는 앨버트를 슬쩍 내려다본다. 이번엔 불안하다. 같은 공간에서 헬렌과 함께 다른 서사를 이루는 이 별 볼일 없는 놈이, 왠지 변수가 될 거 같다.

짐작은 맞았다. 그는 헬렌을 통해 앨버트를 이용해 먹는다. 이름 쓰는 법을 열중해 연습하다, 헬렌이 들어오자 황급히 집어넣는다. 못 배우고 못 가진 열등감이 잠깐 엿보인다. 질투심을 감추고 애써 가볍게 비꼬며 초콜릿을 받아먹는다. 양껏 입에 넣고 씹으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야비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여긴 희망이 없으니 미국으로 가자’며 간절하게 눈을 치켜뜰 땐, 진심이 보인다. 사랑한다면서 이용해 먹으려다가, 애원하며 붙잡기를 반복한다. 그가 터득한 방식은 그런 것 따위 뿐이나, 또한 스스로의 선택이기도 하다. 어쩌겠나, 그렇게 살아왔다는 게, 그의 잘못이다.


<앨버트놉스>(2011)


헬렌이 임신했다고 하자 조 맥킨스는, 화낸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며 의자를 걷어찼다가 다시 퍽 세워놓는다. 연인의 상태는 신경 쓰지 않고 두려움으로 인한 분노를 숨기지 못할 만큼, 그는 사람이 못 됐다. 허나 헬렌을 보지 않은 채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가, 움찔거리던 몸을 서서히 진정시킨다. 창백한 얼굴로 애써 미소 지으며 여린 목소리로, ‘내가 책임질게, 걱정하지 마, 이리 와’라며, 고개와 함께 팔을 휙 저어 끌어당겨 안는다. 연인보단 친구나 동생을 끌어안는 느낌이다. 눈이 멍하게 허공을 향한다. 헬렌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얼굴이 겁먹은 듯 일그러진다. 미국으로 갈 수 없게 돼서 만은 아니다.


<앨버트놉스>(2011)


마침내 겁쟁이 조 맥킨스는 헬렌을 내팽개친다.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변명을 늘어놓다가 마침내, 진심의 문장과 함께 침과 울음을 뱉는다. “I don’t wanna be my fuckin’ dad.난 빌어먹을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 그거였다. 내내 그를 괴롭히고 있던 생각. 앨버트와 헬렌에게 난리난리 소리소리를 치다가, “I don’t want you.널 원하지 않아.”라는 헬렌의 말에, 충격 받은 듯 정지했다가, ‘그래 나 같은 놈 만나서 뭐해’라는 뜻으로 입을 씩 올려 보이고는, 기다렸다는 듯 홀가분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도망치는 거다.  


<앨버트놉스>(2011)


사람들의 말처럼 조 맥킨스는 쓸모 없는 놈, 쓰레기다. 그러나 현실에 있을 법한, 나름의 서사가 있고 까닭이 있는 쓰레기다. 순간순간은 아마 진심이었을 거다. 그렇게 계획적인 나쁜 놈은 못 된다. 그냥 어리고, 자신도 책임질 수 없으면서 남을 책임진다는 소리를 하는, 그리고 결국 포기하는 놈. 악당까지도 못 되는 놈.

정은 안가지만, 공감은 할 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허나 조 맥킨스의(꼭 성도 붙여 언급해야 한다.) 서사는 중요치 않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시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여성들이고, 그는 생각 없이 자신의 고통에만 충실했던 나머지, 주인공들을 고통에 빠트린 보잘것없고 멍청한 놈이다. 그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배당하며, 어려운 일은 피해 도망치려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 아론 테일러 존슨도 그 정도의 무게로 연기한다. 흔하고 가벼운 매력을 흘리고, 자신만이 전부인 듯 내세우다 꼬리를 내리고 사라진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던 조 맥킨스는 아빠와는 다른 종류의 나쁜 놈이 됐다.

이 시기 아론 테일러 존슨에겐 소년과 어른의 얼굴이 둘 다 있다. 건장한 몸에 비해 목소리는 가늘고 여린 편이다. 그 묘한 부조화, 그리고 종종 나오는 내면의 얼굴이, 조 맥킨스를 아주 혐오하지는 않을 수 있게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헬렌에게 아버지 얘길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웃음기는 없으나, 딱히 아주 힘들어하거나 어두운 빛을 내뿜지는 않는다. 그게 일상이었으니까. 가난과 폭력을 참고 참다 담담해져 버렸으니까. 아론 테일러 존슨은 알고 있는 게다. 피에트로가 울트론에게 과거를 들려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마무리도 적절하다. 금방 헬렌을 잡아끌며 장난으로 가볍게 넘기며, 조 맥킨스의 역할에 맞게 감정을 끊어버린다. 개인의 서사를 설득하는 것도,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다.  


<앨버트놉스>(2011)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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