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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6호 01화

015B 16호 여는 글 및 목차

편집장 빙봉, 아리

by 연희관 공일오비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코로나 19 이야기로 인사를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19’라는 단어 없이는 우리의 지난 일상을 설명하기 어렵네요. 백신 개발과 함께 종결될 것 같았던 팬데믹은 한국의 백신 접종률이 85.6%(2차 접종 기준)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나긴 팬데믹 속에서 무력해져만 가는데, 코로나 19는 계속해서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델타, 오미크론, ... 이제는 지겹다는 생각만 듭니다. 지난 14호에서 백신만 맞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구는 사회의 분위기를 꼬집었던 물결의 글, ‘희생과 적대를 넘어’가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다가오는 학기부터는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열리는 많은 수업이 대면 강의로 전환한다는 소식이 다행스럽고 반갑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만남이 제한되었던 시간이지만, <연희관 015B> 16호의 편집위원들은 방역 수칙이 허락하는 한에서 열심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아주 가끔은 인원 제한이 풀리기가 무섭게 신촌의 한 카페에 모여들어,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어요. 책을 읽은 감상을 나누기에, 서로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기에 대면 만남만큼 가뿐하고 따뜻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곧 끝날 것 같다'는 공허한 희망이 여러 차례 흩어져버리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완전한 끝'을 고대하기보다는 갖가지 모습의 '끝'을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는 여러 가지 ‘끝’을 상상한 글로 가득합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 ‘끝인 줄만 알았던’은 각자가 마주한 끝을 묵묵히 지켜보며 써 내려간 간 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로는 부산 책방 거리의 소멸에 덧입혀진 이야기들을 통해 그 풍경을 묘사합니다. 지난여름, 서로가 직접 그 책방 거리로 여행을다녀왔기 때문일까요? 서로의 글은 여행지의 종말 앞에 자꾸만 희미한 설렘을 더해놓으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서 빙봉은 짙은 애정을 품고 있던 만화와 소설에 녹아있는 '사랑의 종말'들을 곱씹으면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골똘히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곤지는 살아오며 목격했던 갖가지 종말 앞에서 느껴온 자신의 슬픔을 직시하고, 곳곳에 스민 상실을 애도하는 법을 고민해봅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 ‘끝없이 흘러가는’에서는 영원한 끝을 상정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가장 먼저 모자는 '무성애'라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성애적 관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의소중함을 모른다'며 고리타분한 언설을 늘어놓는 이들에게 유쾌한 반격을 날립니다. 모자의 무성애는 사랑의 무감각, 애정의 종말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애정을 뻗어내며 계속해서 이어지고 흘러갈 그의 삶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퓨는 '디지털'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이상화하거나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것으로 폄하하는 양극단의 시선을 거부하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디지털-걷기'에 대해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자는 서울로 상경한 대 학생 다수가 경험했을 법한, 서울에서의 주거 경험을 공유하면서 '최저'가 아닌 '인간다운' 주거를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질문을 던져봅니다.


마지막 카테고리에서는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겨두고, 아리는 청년 세대를 ‘이대녀’과 ‘이대남’으로 간편하게 구분해버린 정치권에 마음껏 쓴소리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모자, 빙봉, 아리, 퓨는 좌담을 통해 '이대녀'와 '이대남'이라는 칭호가 가진 의미를 토로하며 여성 청년으로서 지켜본 이번 대선 국면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합니다. 곤지는 소설 ‘지구 끝의 온실’과 영화 ‘돈룩업’에서 지구의 종말이 재현되는 유심히 살펴보다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염병 재난을 종말이라 칭하는 이들에게 뾰족한 질문을 던집니다. 카테고리의 마지막 글이자, 연희관 공일오비 16호의 마지막 글은 ‘종말’을 주제어로 한 공동기획입니다. 각자가 생각한 종말에 대해 써보기로 약속한 6명의 편집위원은, 서로의 글을 읽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의 ‘종말’을 맞이했는지, '종말'이라는 흔한 단어에서 얼마나 다른 생각을 뻗어냈는지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입니다. 공일오비의 독자분들께도 그런 재미가 전해지기를, 그리고 그 끝에서 독자분들 각자가 고민하고 탐구해 온 '종말'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호 표지에는 큼지막한 모래시계가 등장합니다. 모래시계는 자꾸만 모래를 아래로 흘려보내며 무언가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을 알립니다. 우리는 모래시계의 아랫부분으로 쏟아지는 모래들이, 실은 끝을 알리는 징표나 표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아래에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16호에는 끝인 줄만 알았지만, 실은 끝없이 흘러가야 하는, 그렇게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담았습니다. 끝나가는 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되, 바로 그곳에서 시작될 또 다른 세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수많은 '끝'과 '종말' 앞에 놓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편집장 빙봉(joliebin98@naver.com), 아리(ououpp@naver.com)




[연희관 015B 16호 목차]


끝인 줄만 알았던

겹쳐지는 이야기, 보수동 책방골목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말할 때


끝 없이 흘러가는

무성애자인 내가 초-성애적 사회에 던져진 건에 관하여

가로지르며 걷기: 0과 1 사이에서

최악 말고 최저 말고 그냥, 집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우리를 이대녀라고 부를 때

더 나은 세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니

종말은 종말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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