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인 줄만 알았던] 편집위원 곤지
모두는 살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한다. 만남과 시작, 축적과 지속만큼이나 많은 상실들. 그러나 상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만남과 시작을 마주하는 능숙함과 사뭇 다르다. 때로는 상실의 징후를 눈치채지 못한 채 슬픔의 바다를 부유하기도 하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해 그 빈자리를 막연히 헤집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그 빈 공간이 뿜어내는 암울한 비린내를 막아보려 다른 무언가를 마구 채워 넣기도 하고, 상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방치하기도 한다.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적절히 대처되지 못한 상실들은 깊은 상흔으로 남거나 메우지 못한 공백으로 남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의 삶에도 다양한 상실이 찾아왔다. 타인을 잃기도 했고, 관계를 잃기도 했다. 소중하게 매만지던 감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버리기도 했고, 삶의 한 부분을 지탱하던 희망에 배신당하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완벽히 상실하기도 했고, 일상의 생산성을 모두 잃어버린 채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상실은 성장만큼이나 오래 내 삶과 함께 했다. 그러나 상실은 늘 적절한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 채로 삶의 한구석을 겉돌았다. 나의 상실은, 아니 어쩌면 우리의 상실은 너무 오래 은폐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상실과 슬픔을 고통의 근원으로 미워하거나 숨겨두지 않고, 삶의 필연적인 한 조각으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정직하게 좌절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다시 살아가는 일, 그런 것은 가능할까.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열여섯이던 그 해 봄엔 너무 많은 언니, 오빠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기 며칠 전, 오빠는 같은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 여행에서 돌아온 오빠는 배가 너무 흔들려 잠에서 깼다고 말했다. 뒤척이며 잠에서 깬 저녁, 머리맡에 있던 콜라병이 기울어져 있어 눈을 의심했다고. 며칠 뒤, 배는 침몰했다. 나는 집에서 그들의 죽음을 보고 듣는 것이 이상했다. 어쩐지 나는 팽목항에 있어야 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물속으로 사라져간 그들을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오빠는 나만큼이나 슬펐을 것이다. 어느 분주한 아침, 오빠는 교복을 입다 침대에 주저앉아 말했다. “걔네도 학교에 가고 싶었을 텐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순간의 무게를 설명하기 어렵다. 공기가 질량과 질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경험한 가장 무겁고 쓰라린 공기였다. 그래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가장 일상적인 행위가 버거워지고 도저히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은 명백한 상실이었고 거대한 슬픔의 징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겪어냈다. 무엇을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우리를 짓누른 슬픔을 견뎌냈을 뿐이었다.
어린 나에게 타인의 죽음과 상실의 슬픔은 낯설고 어려웠다. 특히 상실과 애도는 그들의 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자만이 겪어내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가족도, 친구도 아닌 내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했던 시간들은 나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고, 발화되지 못했으며, 적절히 해소되지 못한 채로 매일 밤 축축한 베갯잇만을 만들어냈다. 이제야 나는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총체적인 상실이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세계는 수백의 소중한 삶을 잃어버렸고, 나는 너무 쉽게 그들을 잃어버린 이 세계에 희망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에 신뢰를 잃었고, 내가 이곳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좌절되었다. 아이들의 죽음이라는 물리적 상실과 세계에 대한 신뢰가 소멸된 상징적 상실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 모든 상실이 뒤엉켜 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빈 공간만을 남겼을 뿐이었고, 분노와 허망함, 슬픔과 무기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건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 학교에선 이런 방송이 들렸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사고로 모두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학업에 집중하고 학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이후 시험, 긍지 같은 단어가 들렸다. 위로의 외피를 입고 있었지만 결국 그만 잊자는 이야기.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차올라도 ‘가만히 있으라’고 반복했던 어느 난파선의 공허한 울림이 떠올랐다. 교실이 기울어진 선실처럼 느껴졌다. 속이 매스꺼웠다. 아이들을 죽인 세상의 원리가 태연하게 반복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끔찍한 일 앞에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재촉당하는 것은 분노할 일이다. 분노를 품고도 다시 가만히 있는 존재를 자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언제까지 슬퍼할 건데”라며 슬픔을 묻어둘 것을 종용했다. 세상은 나에게 애도할 권리와 자격을 물었다. 어른들에게 난 유난을 떠는 아이, 마음이 유약한 아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이 상실과 슬픔을 이야기하길 멈추었다. 그러나 애도의 방식과 시간은 모두 다르다. 우리는 이 상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했어야 했고, 충분히 슬퍼했어야 했다.
“상실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그 세계를 재탄생시키고 재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1)
슬픔 속에서 침전하던 나의 손을 잡아준 것은 유가족과의 만남이었다. 작은 영세 극장에서 우리는 영화제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를 함께 보았다. 상영 시간 내내 우리는 자주 훌쩍거렸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자 자연스레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왜 이곳에서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아이들의 죽음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세상에겐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그 공간 속에서 나의 슬픔은 이상하거나 유난스러운 것이 되지 않았다. 나와 그들의 슬픔은 온전히 이해받고 공감받았다. 그 공간은 분명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결연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어찼다. 집에 가는 길에는 유가족들이 직접 만드셨다는 노란 리본을 받아들었다. 반 친구들의 수에 맞춰 리본을 챙겼고,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주었다. 그 후로도 나는 자주 봄날에 스러져간 그들을,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떠올린다. 어김없이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상실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노란 리본의 염원으로 회상된다. 아이들이 보다 나아진 세계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 그 안에 새겨진 연대의 손길과 위로의 포옹. 당시엔 몰랐지만 그때 내가 한 것은 ‘애도’였다. 올바른 애도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상실이 주는 슬픔에 휘청이면서도 그것을 ‘함께’ 마주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우리에게 내일을 살아갈 새로운 희망을 준다. 상실이 연대의 초석이 되고, 커다란 슬픔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말하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타인의 존재만이 아니다. 삶의 안식처를 잃어버리기도 하며, 꿈과 미래,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 자신을 상실하기도 한다. 예컨대, 내가 살아가야 할 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 나의 몸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것은 쉽게 인정하기엔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내 몸이 겪은 도둑맞음의 경험을 외면하거나 몸의 역사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몸으로부터 도망쳤다. 나의 몸은 긍정되지 못한 채로 방치되었으며, 해결되지 못한 상실의 경험은 갖가지 상처와 고통이 엉켜 복잡한 상흔을 남겼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어느 밤들에는 그러한 노력이 무색해지기도 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가장 무력한 나날들이 있었다. 그것을 ‘없던 일’로 치부하며 살아가거나 내 몸이 아우성치는 고통을 모른 척하는 일은 내 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일처럼 나를 더 병들게 했다.
그렇게 고통에 뒤척이며 내 몸과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던 어느 날, 학과의 학칙 개정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성폭력 대책위를 설명하던 조항에는 “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나는 ‘성폭력’ 사건과 ‘해결’이라는 단어의 나열이 영 못마땅했다. 대책위의 행정 조치 몇 개가 과연 사건을 정말 해결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 해결될 수 없는 일에 해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기만적인 행위가 아닐까? 내 물음에 한 친구가 답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언제 일상으로 돌아가?” 그 한마디가 나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래, 맞아. 나는 언제 일상으로 돌아가지? 내가 겪은 성폭력은 언제 해결되지? 나는 언제쯤 내 몸을 정직하게 살아가지?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전에 종결된, 그러나 내 몸 안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이 해결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사건이 온전히 해결되는 순간은 법과 권위가 개입하여 처벌과 사과가 이뤄지는 순간과 동일하지 않다. 진짜 해결은 피해자가 몸이 상실된 경험을 마주하고,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갈 때 이뤄진다. 내 몸이 침범되고, 취약해지고, 때로는 망가지고, 부서지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몸을 통해 타자와 연결되고, 사랑하고, 세계를 감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사건은 해결된다. 우리는 종종 미친 듯이 분노하고, 처참하게 슬퍼하고, 살아있음을 혐오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들의 삶을 연민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부서진 동시에 그 부서짐을 품어낼 수 있는 ‘그 몸’으로 돌아가야만 앞으로의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
성폭력은 명백한 상실의 경험이다. 나의 몸을 잃고, 주체성을 잃고, 의지를 잃고, 기운을 잃는다. 오로지 나의 것으로 부여받은 몸을, 삶의 영원한 토양이자 동반자인 몸을 갈취당하는 경험은 쉽게 회복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수치심과 낙인은 상실을 외면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상실로부터 도망쳐온 끝에 이 상실을 마주하고, 애도할 수 있었다. 애도는 공간도, 사람도, 관계도 늘 양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뒤에야 가능했다. 내 유년 시절을 다정하게 감싸고 있던 동네 놀이터는 친구들이 반겨주던 환대의 공간이었던 동시에 누군가가 주변을 배회하며 피해자를 물색하던 위험한 공간이었다. 때로 가장 믿었던 것이 가장 낯설어지기도 하고, 가장 무해하던 관계가 가장 치명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내 몸이 타자의 몸과 얽힐 때는 사랑을 주고받는 동시에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는 것, 고통을 주고 또 받는다는 것, 나의 몸은 사랑과 충만함을 겪어내는 동시에 상실과 고통을 견뎌내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한없이 유약한 동시에 상실을 견뎌낼 만큼 강인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자 한다. 이제 내가 경험한 상처나 상실은 삶을 재건 불가능하게 파괴하거나 삶을 되찾을 수 없는 곳에 유기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삶 속에 머무르며 또 다른 감정과 관계, 타자, 시간들과 뒤엉켜 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발화는 오랫동안 도망쳐온 몸으로 다시 돌아가는 여정이자, 상실의 경험을 내 삶으로 들여오는 과정이다. 내 것일 수 없었던 몸과 몸이 없던 날들을 애도하고, 앞으로의 삶은 이곳, 나의 몸에서 시작되리라는 희망을 말하는 일이다. 상실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상실의 경험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 그 안에 반드시 당신만의 상실과 고통, 취약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을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는 모든 존재와 공간이 가진 양가성에 몸서리치지 않고, 경멸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상실과 상흔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도려내어 메울 수 없는 공백으로 만들지 않고, 세계를 살아가는 일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부서진 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몸과 그 몸이 가진 상처와 사랑을 이야기하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겪은 상실보다 더 많은 상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 <컨택트>는 삶의 일부가 떼어지며 만들어진 파편들이 모여 다시금 온전한 내일을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영화는 떼어지고 부서진 삶의 일부에 눈물지으면서도, 의연하고 겸허한 태도로 그것을 품어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상실의 슬픔과 파괴력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그 고통과 필연성을 이야기한다. 상실에 대한 이 조용한 증언은 무기력하기보다, 상실조차 온전한 존재와 시간을 만들어내는 삶의 한 축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상실은 희망과 포개지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 루이스는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며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아니, 사실 그것은 능력이라기보다 삶의 태도에 가깝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원형의 문자를 사용하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와 소통하며 점차 자신의 삶을 원형의 순환구조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는다. 이는 주어와 서술어, 문장의 처음과 끝이 명확한 직선적인 인류 언어와 대조되는 것이다. 루이스는 원형적 언어를 흡수하면서 삶을 시간의 전후가 명확한 선형적 사고가 아닌, 연속적인 순간들이 순환적으로 이어지는 원형적 사고로 바라보게 된다. 원형적 사고 속에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장면들을 목격하고, 자신이 살아갈 미래 역시 현재 속으로 섞여 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루이스는 자신이 딸 한나를 낳게 된다는 것, 그러나 한나가 백혈병으로 이른 나이에 죽는 미래를 알게 된다. 지금 자신에게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남편이 이후 자신을 견디지 못해 떠난다는 사실도 미리 보게 된다. 이 모든 상실의 미래를 보게 된 루이스는 그를 잃어버릴 줄 알면서도 사랑을 속삭이는 이안을 따뜻하게 껴안고, 그의 사랑에 응답한다. 아이를 갖겠냐는 이안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딸의 짧은 생애를 소중하게 지켜본다.
루이스만큼 구체적인 미래는 보지 못할지라도 사실 우리 모두는 상실의 미래를 알고 있다. 인간은 단연 ‘잃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모든 존재와 관계에는 반드시 끝이 있음을, 영원히 같은 상태로 서로의 곁에 머무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존재는 성장을 거듭하는 동시에, 늙어감과 시들어감, 윤기를 잃어감과 아름답지 않음, 푸석해짐과 더 이상 자생할 수 없음의 순간을 껴안고 있다. 생로병사를 가진 우리가 어떤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느리든 빠르든 필연적으로 변화함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관계와 생명, 존재의 모습은 변화하고, 그 변화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도 영원할 수 없음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영원히 아름다울 수 없는 존재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들, 죽음을 가진 존재들, 존재 자체에 상실을 내포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한정된 존재의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곁에 잠시 머물러준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돋아남과 피어남, 시듦과 말라감, 생의 시작과 끝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거대한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루이스만큼이나 기꺼이 상실을 받아들인다. 언젠가 그에게 나의 죽음을 주거나, 혹은 그의 죽음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생명을 잉태한다. 끝이 있는 줄 알면서 관계와 감정을 시작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껴안고, 입을 맞춘다. 또다시 기뻐하고 감탄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상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담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Sorrow found me when I was young
내가 어렸을 때 슬픔은 나를 찾았죠
Sorrow waited, sorrow won
슬픔은 기다렸고, 슬픔은 이겼지요”
-The national, <Sorrow> 中-
하지만 상실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실을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가진 거대한 슬픔을 품어내는 것과도 같다. 어떤 상실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깊고 적막한 슬픔의 바다에 온몸을 내던져 투신할 수도, 그렇다고 밀려오는 파도를 피할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슬픔은 세상과 나를 유리시키고, 사소하고 소중한 일상의 감정들을 빼앗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렇다면 슬픔을 마주하는 우리의 최선은 무엇일까. 슬픔에게 삶의 핸들을 완전히 내어주지 않으면서 성숙하고 정직하게 그것을 겪어낸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The national의 노래 <Sorrow>는 시종일관 슬픔을 말한다. ‘슬픔은 파도 위에 있는 내 몸’이라며 파도에 휩쓸리는 듯 무력하게 슬픔에 휘둘리는 자신을 은유하기도 하고, ‘나는 슬픔이 만든 도시 속에 산다’며 슬픔에 잠식된 일상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노래는 2013년 아이슬란드 예술가 Ragnar Kjartansson과 The national이 협력하여 6시간 동안 반복 연주한 비디오아트 <A lot of sorrow>로 재창작된다. 6시간 동안 <Sorrow> 오직 한 곡만을 노래하면서도 밴드는 매번 미묘하게 다른 리듬과 분위기로 공연을 이끈다. 밴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슬픔에 관객들을 초대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보컬의 목은 쉬어가고, 관객의 환호성은 점차 줄어든다. 관객과 밴드 모두 피곤하고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밴드는 슬픔을 노래하길 멈추지 않고, 관객들도 지칠지언정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 모습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말하고, 슬픔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함께 애도하는 과정과 같다.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것을 외면하거나 떠나지 말고 충분히 슬퍼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슬퍼한 뒤에는 상실을 가진 몸으로 기꺼이 살아가는 것. 또한, 상대의 슬픔을 성급하게 재단하거나 때이른 정리를 강요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 슬픔이 다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 밴드는 자신의 슬픔을 그렇게 오래도록 들어주는 관객들이 없었더라면, 6시간의 라이브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밴드가 자신들과 눈을 맞추며 매번 슬픔의 다른 모습을 변주하지 않았더라면, 관객들은 그들과 6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슬픔이 반복되는 공연 속에서 역설적으로 슬픔이 아닌 것들을 발견해낸다. 슬픔의 변주 속에는 밴드의 유머, 미소, 눈 맞춤, 교감이 있다.
혼자서 결코 슬픔을 견뎌낼 수 없을 때, 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슬픔의 순간들은 그 안으로 타인을 초대한다. 우리는 슬픔의 물결을 뚫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타인이 나의 슬픔에 들어와 따뜻한 포옹을 건넬 때, 상실은 비로소 견딜만한 것이 된다. 슬픔은 때로 슬픔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있고,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성이 있으며, 사랑의 씨앗이 움트기도 한다. 예컨대, 내가 가진 슬픔은 타인의 슬픔과 상처를 예민하게 포착하게 하는 어떤 것, 세상의 가장자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슬픔의 고통과 혼란스러움은 나를 소진시키는 동시에 특별하고 아름다운 존재의 감각들을 만들어냈다. 타인에게 손을 건네게 하고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의 세계를 의지하게 했다. 그러니 우리는 슬픈 오늘을 함께 살아내고, 내일로 나아가자. 지금 당신의 슬픔이 내일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당신에게도 내일은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편집위원 곤지(yonzgonz@gmail.com)
참고문헌
고선규, 「여섯 밤의 애도」, 한겨레출판, 2021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 마음산책, 2021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현암사, 2019
베레나 카스트, 「애도: 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 궁리, 2015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상실 수업」, 인빅투스, 2014
각주
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상실 수업」, 인빅투스, 2014
2)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2020